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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은구름 May 31. 2019

기생충, 어딘지 낯선 봉준호

column review

Intro

봉준호가 만든 영화에서 봉준호다움을 기대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기생충>또한 우리가 기대하는 '봉준호다움'이 깊게 배어있는 영화다. 하지만 어딘가 낯선 봉준호의 냄새도 함께 풍긴다.


낯선 이야기

봉준호가 서사를 아주 치밀하게 풀어나가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적어도 그의 이야기에는 점성이 있었다. 개인적으로 정의하는 점성이란 서사의 다양한 요소들이 서로를 끌어주고 당겨주며 서로가 연결되어 있다는 강한 신뢰를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기생충>의 서사는 '우연'이라는 요소가 너무 자주, 가끔은 불편할 정도로 많이 등장한다. 그렇다 보니 서사는 연결성보단 독립성을 가진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우연에 의해 억지로 엮여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봉준호의 18번인 '양극화'소재에 봉준호의 페르소나인 '송강호'까지 가장 봉준호 다운 것들이 모여있는 <기생충>에서 개인적으로 봉준호는 너무 쉽게 가려고 한 것 같아 낯설다. 물론 그럼에도 <기생충>은 재밌다. 분명히 서사에는 씹을 거리가 있고 맛볼 거리가 있다. 어쩌면 그게 봉준호가 이번 영화에서 대중성을 발현한 방식인지도 모르겠다.

이야기


낯선 캐릭터

사실 <기생충>의 이야기가 다소 낯설다면 캐릭터는 조금 아쉽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 분명히 영화에 등장하는 배우들은 각자의 몫을 충분히 해낸다. 연기가 딱히 부족하다고 느낀 역할은 없었으며 극의 중심을 잡아줘야 할 송강호와 조여정의 연기는 대단히 준수했다. 그럼에도 <기생충>에 등장하는 모든 배역들은 영화가 시작해서 끝날 때까지 마음에 붙지를 않는다. 여기서부터 캐릭터에 대한 낯섬이 발생한다. 분명히 봉준호 다운 캐릭터들이 한가득 모여있는 것은 확실한데, 봉준호는 왜 때문인지 이번 영화에서 대부분의 캐릭터를 다른 캐릭터의 입을 빌려 설명하는 방식으로 만들어낸다. 개인적으로는 여기서 또 한 번 봉준호가 편하게 가려고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떨쳐낼 수 없다. 설명적이고 정의된 방식의 캐릭터라이징, 캐릭터도 봉준호도 모두가 낯설다.

캐릭터


낯선 이미지

봉준호의 장편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부터 봉준호가 가장 잘하는 일 중 하나는 '공간'을 완벽하게 스토리텔링의 도구로서 쓰는 일이었다. 그리고 봉준호의 영화들은 한결같이 미술팀의 눈물겨운 노력의 결과물들이 영화 곳곳에서 빛난다. 이번 <기생충>역시 이런 봉준호의 능력이 십분 발휘된다. 최상위의 삶을 살아가는 박사장의 대궐 같은 집과 완전히 그 반대의 삶을 살아가는 기택의 반지하 집, 봉준호는 어쩌면 대중들에게는 양쪽 다 낯선 이 두 공간의 이미지를 완벽하게 설계해낸다. 낯설지만 아름답게 창조된 영화 속 모든 공간들은 서사와 배우들의 부족한 부분들에 보호색을 입혀주듯 자잘한 단점들은 녹여버리는 오묘한 기능을 발휘한다.

이미지


낯선 봉준호

결과적으로 <기생충>은 분명히 봉준호의 인장이 찍혀있지만 어딘지 낯선 봉준호가 엿보이는 영화다. 개인적으로 <살인의 추억>과 <마더>의 봉준호를 기대했던 나에게 <기생충>은 만족감보다는 아쉬움이 큰 영화였던 것 같다. 하지만 낯설다는 건 그것 자체로 긍정이나 부정의 의미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 봉준호가 자신의 전작들과 같은 방식의 연출이나 캐릭터라이징을 고수해야 한다는 법도 없다. 그리고 봉준호는 황금종려상을 받았고 영화는 분명히 재미있다. 하지만 적어도 나에겐 낯선 봉준호의 <기생충>이 그의 최고작이었다고 생각되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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