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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
훌륭한 데뷔작으로 평단의 극찬을 받았던 감독들이 두 번째 장편영화에서 기대에 못 미치는 영화를 내놓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하지만 홍원찬 감독은 나름의 스타일을 보여주었던 데뷔작의 장점은 그대로 간직하고 완전히 새로운 장르에서 또 다른 장점을 쌓아 올렸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한국적이면서도 이국적이다. 서사를 끌고 가는 방식이나 배우들의 연기에서는 한국느낌이 물씬 풍기지만 100%에 가까운 해외 로케이션 촬영지나 속도감 있고 역동적인 액션 장면에선 이국적인 향기가 난다. 보통 이 두 가지를 엮어내는 과정에서 배탈이 나기 쉬운데 홍원찬 감독은 사무실이라는 좁은 공간을 배경으로 한 데뷔작을 가진 감독답지 않게 이런 요소들을 잘 소화해냈다. 그중에서도 특별히 칭찬하고 싶은 점은 리듬감을 깎아먹지 않는 액션과 전개다. 많은 한국영화들이 액션과 액션 사이의 간격이나 길이를 조절하는 것에 실패하는 것과 달리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108분 동안 치고 빠지는 씬별 묶음으로 긴장감을 유지하는데 성공한다. 또한 잔인한 장면들을 소리나 간접 화면으로 연출해 15세 관람가임에도 19세 관람가에 맞먹는 잔인함을 부여한 점도 훌륭하다.
황정민과 이정재의 만남은 마케팅 문구로 지겹게 사용된 것처럼 <신세계>때 만큼의 묵직함은 없었지만 충분히 합격점을 줄만한 케미를 뿜어냈다. 특히 두 남자가 1:1로 육탄전을 벌이는 장면은 영화관에서가 아니더라도 꼭 한 번쯤은 찾아서 볼만한 잘 빠진 액션씬이다. 하지만 이 영화를 책임지는 인물은 따로 있는데 바로 유이역의 박정민이다. 박정민의 역할은 말하는 순간 스포일러가 되는 수준이어서 마케팅에도 거의 사용되지 않았지만 영화를 관람한다면 박정민이 얼마나 재능 있는 배우인지, 그리고 화면 안에서 얼마나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지 여실히 느낄 수 있다. 이번 영화에서 제 몫 이상을 해낸 배우를 한 명만 꼽으라면 나는 주저 없이 박정민을 꼽겠다.
결론적으로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액션과 긴장감, 배우들의 열연이 합쳐진 잘 빠진 액션스릴러 영화다. 하지만 너무 직진성이 강한 서사를 가지다 보니 배경에 대한 설명이나 인물들의 깊이감이 부족하다는 점, 조연들이 서사에 참여하기보단 주변자로 머문다는 점, 중반까지 잘 끌고 오던 서사와 인물의 개연성이 후반부에 다소 무너진다는 점은 아쉬운 점이다. 이렇게 다양한 아쉬움이 있음에도 이 영화를 추천할 수 있는 이유는 영화의 장점들이 단점들을 적절히 커버해 주기 때문이다. 영화가 끝나고 나면 자신이 보여주었던 장점을 잃지 않고 또 다른 장점을 추가해내는 홍원찬 감독의 다음 작품이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