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review
명성 있는 감독이 차기작을 냈을 때 관객들은 그 영화에서 보고 싶은 것들이 있기 마련이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테넷>에 자신의 팬들이 보고 싶어 하는 것들을 아낌없이 눌러 담았다.
유려하다고 해야 할까 사실적이라고 해야 할까, 놀란 감독의 연출은 어딘지 모르게 현실과 스크린의 경계를 흐리는 힘이 있다. 예고편에서도 볼 수 있듯 <테넷>이 보여주는 화면은 매우 비현실적이고 부자연스럽다. 기본적으로 '부자연'스럽다는 형용사가 긍정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지는 않지만 이번 경우에 이 단어는 그저 팩트일 뿐이다. 그리고 놀란은 그 지점부터 자신만의 연출을 펼쳐나간다. 1회차 관람만에 놀란이 화면에 숨겨둔 모든 요소들을 찾는 일은 애당초에 불가능하지만 적어도 영화적으로 신선하고 흡인력 높은 화면을 만나게 되는 것은 확실하다. 단지 개인적인 아쉬움이라면 화면이 서사의 복잡함을 충분히 설명해 주지는 못한다는 점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연출은 처음부터 서사를 설명할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인다. 그저 유려하게 표현할 뿐이다. 덕분에 해석은 온전히 관객의 몫이다.
<메멘토>의 서사를 생각했다면 <테넷>은 조금 다르다. '시간여행'을 소재로 삼은 영화답게 <테넷>의 서사는 일방향으로 흐르지 않는다. 그렇다고 <인셉션>을 생각한다면 그것도 틀렸다. <테넷>은 전반부에서 이해한 것으로 후반부를 이해할 수 없다. 그리고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이 시간적으로도 물리적으로도 서사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한마디로 설명하자면 심각하게 복잡하다. 리뷰의 제목처럼 놀란과 <테넷>에 대한 석박사가 되지 않고서는 이 영화의 서사를 충분히 이해하기 벅차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그리고 이런 서사는 놀란의 팬들에게는 매력적인 '허들'로 보이겠지만 일반적인 관객들에게는 부담스러운 '벽'으로 다가온다. 오해하지는 말기 바란다. <테넷>의 서사는 꽤나 치밀하고 흥미로운 구석들을 촘촘히 가지고 있다. 놀란에게 기대했던 서사인 것은 분명하지만 내 질문은 어떤 관객이 150분 동안 두뇌를 풀가동하고도 결국은 영화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싶은가에 대한 질문이다.
놀란의 영화를 떠올릴 때 빠질 수 없는 것이 음악이다. 놀라운 점은 <테넷>의 음악 감독은 놀란과 10년 가까이 작업해왔던 한스 짐머가 아니라는 점이다. 다른 영화 일정으로 이번 영화에 참여하지 못한 한스 짐머는 루드비히 고란손을 직접 추천했다고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한스 짐머의 빈자리, 혹은 아쉬움을 느낄 수 없는 훌륭한 음악들을 들을 수 있어 만족스러웠다. 놀란 영화답게 중저음이 강조된 웅장한 음악과 배경음들은 영화의 무거운 분위기와 잘 어울려 서사와 연출에까지 무게감을 더해주는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결론적으로 <테넷>은 놀란의 영화를 생각할 때 기대할만한 요소들이 충실히 들어있는 영화다. 주연으로 열연을 펼친 존 데이비드 워싱턴과 로버트 패틴슨의 연기도 준수했다. 연출과 서사의 완성도는 높으며 시각적으로도 청각적으로도 만족할만한 수준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한 가지 의문을 말끔히 지울 수 없다. 내가 이 영화를 누군가에게 추천했을 때 그 관객이 이 어렵고 복잡한 영화를 즐기며 볼 수 있을까? 글쎄, 크리스토퍼 놀란에 관한한 자신이 석박사급이라고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테넷>을 즐기며 보기엔 어려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