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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
'초심'을 찾는다는 말은 보통 긍정적인 의미로 쓰인다. 하지만 DC 확장 유니버스에게는 해당사항이 없다. 2017년 혜성처럼 등장해 암흑기에 빠져있던 DC에 희망을 선사했던 원더 우먼은 2020년 <원더 우먼 1984>를 통해 DC의 수준을 다시 원점으로 돌려버렸다.
<원더 우먼 1984>의 미덕부터 꼽자면 역시 갤 가돗, 갤 가돗 정도가 있고 갤 가돗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좀 심하게 말해서 <원더 우먼 1984>에서 볼 만한 건 '원더 우먼' 그 자체인 자체발광 갤 가돗이 전부다. 여기에 조금 인심을 쓴다면 1984년 미국을 옮겨놓은 듯한 미술팀의 작업, 상태가 영 좋지 않은 각본을 어떻게든 무마해본 페드로 파스칼의 연기 정도가 장점이라 할 수 있겠다.
반면 <원더 우먼 1984>를 점령한 아쉬움은 다양하다. 무엇보다 가장 많은 관객들의 기대 포인트였을 액션은 규모와 화려함은 물론 속도감이나 창의성 등 모든 면에서 1편인 <원더 우먼>에 미치지 못한다. 명색이 '히어로'물이라면 영웅의 능력을 최대치로 끌어내 환상적인 장면을 선사한다던가, 그렇지 않으면 진부한 장면이더라도 그럴듯하게 표현되어야 할 텐데 DC는 이 둘 중 어느 하나도 잡지 못하고 이도 저도 아닌 김빠진 액션 장면들을 나열하는 것도 모자라 최소한의 개연성과 맥락마저 스스로 집어던지며 헛웃음을 유발한다. 우선 액션의 절대량과 퀄리티가 전작에 미치지 못한 점을 뺀다면 나머지는 어떨까? 안타깝게도 <원더 우먼 1984>는 초반부에 꽤나 구구절절 새로운 빌런을 캐릭터라이징 하기 위한 시간을 가지고 있음에도 그다지 매력적인 빌런을 만들지도, 대단히 의미 있는 얘기를 하고자 하지만 울림 있게 전달하지도 못한다. 특히 후자에 지적한 부분은 DC가 단단히 착각하고 있는 부분인 것 같다. 마블의 시네마틱 유니버스가 그토록 사랑받는 이유는 진부하리만치 당연한 가치를 얘기하기 때문이 아니라, 관객들이 원하는 '히어로'물의 필수조건을 넘치도록 만족한 상태에서 충분조건으로서의 메시지가 첨가되었기 때문이다. DC는 관객들이 범국가적 잔소리를 들으려고 히어로물을 보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결론적으로 <원더 우먼 1984>는 2020년을 마무리하는 거의 유일한 블록버스터급 영화임에도 누군가에게 추천해 줄 수 없는 영화다. 현시대 히어로물에 등장하는 어떤 히어로 못지않게 배역과 찰떡으로 어울리는 배우를 캐스팅하고도 재미와 의미, 두 마리 토끼를 다 놓치고 있는 DC를 보며 'DC가 돌아왔구나!'라는 탄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