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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까지 천만 영화 타이틀을 보유한 한국감독은 총 14명이다. 그중 두 편의 천만 영화를 보유한 감독은 5명, 그중에서도 시리즈물이 아닌 단독 영화로 각각 천만을 달성한 감독은 윤제균, 봉준호, 최동훈뿐이다.
앞서 언급한 세 명중 두 명이 다양한 장르를 오가다가 첫 천만영화에 도달한 반면 최동훈의 행보는 처음부터 장르적 방향성이 확고했다. 이렇다 할 단편 연출작도 없이 116분짜리 장편영화로 데뷔한 최동훈은 1고부터 19고까지 시나리오를 직접 쓰고 연출까지 해낸 <범죄의 재구성>으로 2004년 충무로에 등장했다. 당시만 해도 '케이퍼 무비'라는 수식어를 붙일만한 한국 영화는 많지 않았다. 최동훈은 주조연의 경계가 흐린 여러 명의 캐릭터에 한국적인 인간군상들을 배치하고 그들이 어우러지며 일어나는 이야기에서도 서울 뒷골목 어디쯤에서 날법한 냄새를 가득 담았다. 관객들의 반응은 즉각적이고 강력했다. <범죄의 재구성>은 2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했고 최동훈은 그 해 대한민국 영화대상, 청룡영화제, 대종영화제에서 신인감독상을 휩쓸었다. 한국형 케이퍼 무비 창시자의 등장이었다.
성공적인 데뷔작을 가진 감독들은 두 번째 작품에 큰 부담을 느껴 흥행에 실패하는 일이 일어나곤 한다. 하지만 최동훈에게는 해당사항이 없었다. 2006년 개봉한 최동훈의 두 번째 장편영화, <타짜>는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이라는 제약과 도박이라는 어두운 주제에도 불구하고 600만이 넘는 관객을 동원하며 충무로에 하나의 이정표를 세웠다.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대사, 강물처럼 내달리는 드라마, 색깔이 뚜렷하고 매력적인 캐릭터들은 관객들을 열광시키기에 충분했다. 뒤이어 <전우치>에서도 600만 관객을 사로잡은 최동훈은 <도둑들>과 <암살>로 연속 1,200만 관객을 달성하며 명실상부한 충무로의 흥행보증수표로 자리 잡았다. 그의 장르영화 필모그래피는 오점도 빈틈도 없이 관객들의 마음을 훔쳤고 한때 그는 한국영화감독 흥행 1위 자리를 차지하는 영광도 당연하게 누릴 만큼 무섭게 진화했다.
최동훈의 영화 중 <전우치> 정도를 제외하면 한 두 명의 주연을 특정하기 힘든 경우가 많다. 특히 최동훈을 처음으로 천만 영화 고지에 오르게 만든 <도둑들>은 이미 당시에도 네임밸류가 상당했던 배우들이 대거 주연으로 등장한다. 김윤석, 이정재, 전지현, 김혜수, 김수현 등 한 영화에 단독주연으로 나와도 충분한 배우들이 수두룩하게 등장하는 <도둑들>은 그럼에도 캐릭터 간에 팽팽한 밸런스를 유지한다. 그리고 이 지점이 최동훈의 캐릭터버스터 설계자로서의 능력이 발현되는 부분이다. 주연급의 등장인물이 많다는 것은 한정된 시간 안에 더 많은 캐릭터에게 캐릭터성을 부여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러면서도 이야기가 흘러야 하고 당연히 재미도 잡아야 한다. 서강대 국어국문학과 출신인 최동훈은 대사에서 이 부분을 탁월하게 해결한다. 최동훈 영화에 출연하는 배우들은 대부분 많은 대사를 빠른 시간 안에 처리해야 한다. 이 대사들은 치밀하게 캐릭터성을 반영하고 있고 최동훈의 촬영 현장에는 생각 외로 애드립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만큼 최동훈은 이미 대사를 쓰는 단계에서 어떻게 하면 짧고 굵게 캐릭터를 관객들에게 인지시킬지 설계한다는 의미다. <타짜>부터 <암살>까지 영화마다 유독 명대사가 많은 것도 이런 최동훈의 능력과 절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승승장구하던 최동훈은 순제작비 330억 원의 대작을 연출하게 된다. 2022년 개봉한 <외계+인> 1부는 지금껏 최동훈이 해왔던 장르영화의 틀을 다소 벗어나는 SF+판타지+무협 장르물로 화제를 모았다. 하지만 결과는 모두가 알고 있듯 역대 최악의 흥행참패. <외계+인> 1부는 150만 관객이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 들어야만 했고 함께 제작된 <외계+인> 2부는 영화가 완성되어 있음에도 개봉하는 것 자체로 적자를 면치 못하는 신세로 전락했다. 최동훈은 영화 개봉 직후 인터뷰에서 한국영화의 장르와 상상력을 넓히고 싶다고 말했다. <범죄의 재구성>으로 한국 케이퍼무비의 장르적 다양성을 넓힌 그가 <암살> 이후 7년 만에 또다시 충무로에 새로운 장르를 이식하고 싶었다는 것만은 진심인 것 같다. 하지만 4천만이 넘는 관객의 마음을 훔쳤던 최동훈도 따지 못하는 자물쇠가 있다는 사실이 최동훈의 진심에 대해 관객들이 내놓은 답이라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투자자의 돈으로 영화를 만드는 상업영화감독의 특성상 <외계+인> 정도의 실패를 '그럴 수도 있지!'정도로 퉁치고 넘어갈 순 없는 일이다. 하지만 최동훈이 한 번의 실패를 했다고 해서 그의 능력이 녹슬거나 없어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다'는 말처럼 아무리 능력 있는 감독이라도 실패의 순간은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순간이 안일하고 안전하게 투자비를 회수하기 위한 공장식 영화를 만들다 나온 것이 아니라 관객들의 마음을 훔쳐보겠다는 대담하고 도전적인 대도의 한걸음에서 나온 것이라면 나는 한 번 더 기회를 주고 싶다. 우리의 마음을 훔칠 수 있는 기회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