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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극적인 소재와 화면이 당연해져버린 영화관에서 진심이나 순수함 같은 단어는 설자리가 많지 않다. 하지만 여기 조금은 촌스럽다고까지 여겨질 만큼 투명한 화면과 이야기로 승부를 거는 영화가 있다.
동명의 대만 영화와 마찬가지로 <청설>의 첫 번째 장점은 서사에 찰떡으로 어울리는 배우들의 캐스팅이다. 주연인 홍경과 노윤서는 너무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신선하고 풋풋한 비주얼로 관객들의 눈을 즐겁게 만든다. 또한 영화의 특성상 대사는 적고 표정과 수어같이 비언어적 표현이 영화의 분위기에 미치는 영향이 컸는데 두 배우의 준수한 연기 덕분에 영화의 톤 앤 매너가 잘 유지됐던 것 같다. 극 중 비중이 지 않은 서여름의 동생, 서가을 역의 김민주나 이용준의 부모님을 연기하는 현봉식, 정혜영도 본인들의 몫을 다하며 관객들이 영화에 몰입하는 데 도움을 준다.
무엇보다 <청설>의 특징은 지금 시대에는 보기 어려울 만큼 순박한 로맨스 서사에 있다. 두 남녀가 가까워지는 속도, 방법,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에피소드까지 '클래식' 그 자체다. 과거 충무로가 로맨스 영화 전성기를 누렸을 때 개봉한 영화들이 가지고 있던 감성이 <청설>에도 한 스푼 들어가 있다. 모든 것이 삼삼할 때는 자극적인 맛이 끌리지만 반대로 모든 것이 자극적일 때는 오히려 삼삼한 것이 끌릴 수 있지 않을까? 한편으로는 남녀 간의 사랑 얘기만큼 고전적이지만 그 자체로 자극적인 소재가 있나 싶기도 하다. 그래서 그런지 전체관람가인 <청설>의 108분은 러닝타임 내내 삼삼하지만 맛있다.
결론적으로 <청설>은 바닥이 보이는 호수처럼 차분하고 투명한 영화다. 영화관에서 볼 가치가 있는 웰메이드 로맨스 영화이기도 하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서사와 캐릭터 양면으로 너무 정직하고 무난하다 보니 딱히 기억에 남을 것 같지는 않다는 점이다. 여름에 잘 어울리는 영화지만 다음 여름에 <청설>을 찾을 것 같진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