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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은구름 Mar 23. 2017

미스 슬로운, 세차게 흐르는 강물처럼

column review

Intro

내가 좋아하는 형태의 영화를 본 지가 너무 오래되어서 개인의 취향을 까먹고 있었던 것 같다. 스케일 없이 일어나는 카타르시스, CG 없이 생겨나는 감탄 같은 것들 말이다.


대화를 통한 캐릭터라이징

영화는 전반부에서 인물들을 소개하기 위해 지지부진한 시간을 들이지 않는다. 아주 빠르게 소재의 핵심인 사건을 붐업시키고 서사의 흐름 속에서 인물들의 캐릭터를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존 매든 감독이 선택한 캐릭터라이징의 방식은 '대화'였다. 빠르고 많은 대화, 개인적으로 이 결정은 영화의 특성과 맞물리며 긍정적인 결론을 도출했다고 생각하지만 자막을 통해 미국식 대화법으로 가장 미국적인 주제에 대해서 얘기하는 인물들을 100% 따라가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하지만 존 매든 감독이 조금 더 치밀했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영화가 이토록 인물 간의 대화에 큰 비중을 두고 있음에도 하나의 단어, 혹은 문장을 놓친다고 해서 치명적인 감동의 손실을 가져오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대화


물줄기의 중심에 선 제시카 차스테인

<미스 슬로운>이 흘러가는 하나의 강물이라면 제시카 차스테인은 단연 그 중심에 서있다. 철저히 절제하면서도 끝을 가늠할 수 없이 뿜어내는 제시카 차스테인의 카리스마와 열정은 관객들을 영화에 빠져들게 하는 가장 강력한 요인이다. 로비스트, 특히 미국의 로비스트를 만나본 적은커녕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 몰라도 영화를 감상하는 것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 제시카 차스테인의 행동과 대사가 로비스트란 이런 것이라고 관객들을 설득해버리기 때문이다. 132분 내내 승리를 향한 야망과 팀원들을 압도하는 리더십을 선보이는 제시카 차스테인은 필요한 순간에는 정 반대의 모습 또한 선보이며 자신이 74회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에 충분히 어울리는 후보였음을 증명해낸다.

제시카 차스테인


관객들의 예측을 예측하는 서사

전반부에서 이미 사건을 터뜨린 영화는 빠르고 감각적으로 서사를 진행한다. 1분도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 영화는 속도감과 간결함을 두루 겸비하고 관객들보다 한 발 앞서 나간다. 이 과정에서 캐릭터를 이해하는 동시에 사건과 상황들을 이해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관객들은 번번이 영화가 예측하는 그 지점에서 허를 찔린다. 관객들의 예측을 예측하는 서사, 그렇기에 영화는 뻔하지 않은 놀라움을 선사한다. 그 과정에서 배우들의 연기와 빠른 화면전환, 군더더기 없는 연출과 시의 적절한 OST는 모두 제 몫을 충실히 해낸다. 

예측


세차게 흐르는 강물처럼

시종일관 관객들을 몰아붙이는 영화는 빠르고 강하게 흐르는 강물처럼 마지막을 향해 내달린다. 그리고 영화는 어쩌면 가장 진부하지만 가장 효율적인 결말을 선택하며 숨 가쁜 흐름의 종지부를 찍는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미스 슬로운>이 선택한 결말에서 충분한 카타르시스를 얻을 수 있었다. 존 매든 감독은 '총기규제법'이라는 미국 내에서도 가장 민감하고 거대한 이슈를 다양한 캐릭터와 준수한 연출로 훌륭하게 변주해냈다. 소재가 작지 않고 등장하는 인물 또한 적지 않기에 <미스 슬로운>은 바다처럼 퍼질 수도 있었지만 감독은 그럴수록 영화가 강물처럼 흘러야 한다는 것을 알았고 모든 요소는 적절하게 한 방향을 향해 흘러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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