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대 입학 후 알게 된 사실이지만, 초등학교 선생님들 사이에서는 '배구' 종목이 인기를 끌고 있었다. 그 어떤 집단에도 인기 있는 스포츠가 존재하기에, 초교에서는 배구가 그중 하나이구나라고만 생각했다. 예전 의무소방으로 군복무를 할 때는 소방관들 대부분 족구를 즐겨했기에, 크게 놀랍지는 않았다.
본격적인 배구의 열기를 느꼈던 건 아마 첫 교생 실습 때부터였던 거 같다. 교생 실습 시간표에 들어있는 '배구 연수' 시간표를 보며, '왜 하필 일과 시간에 배구 연수가 꼭 포함되어야 할까' '교생이 꼭 봐야 하는 게 있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교생이었던 우리에게 그 어떤 힘이 있었겠는가. 우리는 강당으로 몸을 향할 뿐이었다.
선생님들의 표정은 교실에서와 사뭇 달라 보였다. 온화했던 그들의 표정은 온데간데없고 무표정으로 경기장으로 들어섰다. 게임 시작 전 두 팀으로 나누어 구호와 기합 소리는 움찔하게 했다. 서브받는 팀은 낮은 자세로 자리를 잡고 수비 자세를 취했다. 휘슬이 울리고 상대팀에서 공이 날아왔다. 공을 안정적으로 받고, 세터가 공을 올려준 뒤 좌측의 공격 선수가 네트를 넘겼다. 하지만, 반대 팀에서 또한 공을 받았고 아주 강한 스파이크로 공을 때렸다. 누가 1점을 가져갈지 모르겠는 상황 속 두근거리는 긴장감이 넘쳐났다. 결국 한 팀의 실수로 득점을 내주게 되었다.
배구에 열성 있는 모습은 누가 봐도 진심이었다. 반짝이는 눈을 가지고 땀을 흘리며 진심으로 즐기고 있는 표정이 모든 걸 말해주고 있었다. 우리는 박수를 치며 놀라워하고, 최선을 다 해 응원했다. 누가 이길지 모르겠는 상황 속 3라운드가 끝이 났다. 그렇게 끝나는 줄 알았던 배구가 곧이어 '교사 VS 교생' 타이틀로 게임을 진행한다고 했다. 우리는 배구 경기장 안으로 동원되었다.
단 한 번이라도 리시브와 서브조차 배워 본 적 없었지만, 열심히 하려고 애썼다. 엉거주춤한 자세로 앉아가며 두 손을 모아 공이 다가올 때 손을 갖다 대었다. 하지만, 그 결과 전부 어디론가 공이 다 튕겨져 나가고 말았고 그 어떤 공도 제대로 받지 못헀다. 우리들의 그런 실수에도 교사팀은 절대 봐주는 법이 없었다. 당시 우리에게 상대 선생님들은 눈에 불을 켜고 경기에 임하는 거처럼 보였다. 그렇게 허무하게 끝나자 네트 너머 어디에선가 희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참. 요즘은 대학교에서 배구도 안 배우나 보네."
"연습 좀 해야겠다.."
하지만 확실했던 건 조롱과 짜증이 섞인 말투였다. 순식간에 강당 안의 분위기는 얼음장처럼 꽁꽁 얼어붙어 버렸다. 몇 마디로 이 공기를 바꿀 수 있다는 건 참 신기한 노릇이었다. 배구공을 못 받는 우리들은 순식간에 죄인이 되어 있었다. 사실 단 한 번도 배운 적 없으니 못 받는 건 당연했다. 그리고, 배웠다 하더라도 못할 수 있다. 하지만 못하더라도 우리의 열성에 대해서는 위로해 주는 이는 없었다. 결과보다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하라는 교실 속 담화는 한순간에 무너졌다. 말도 안 되는 공 하나에서 그 아름다웠던 말들은 무너졌다.
대표 교생이 그 분위기에서 죄송하다며 웃는 얼굴로 사과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그 순간들은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기분이 더 나빠왔다. 제일 중요한 '배구를 좋아하는지', '배구할 의향이 있는지'를 묻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생각하기에 교생에게 필요했던 건 수업, 아이들을 가르칠 능력보다 배구를 잘하는 능력이었을까. 그리고 왜 그때 우리가 사과해야 했을까.
배구가 싫어졌다. 좋아하고 말고 없었는데, 그냥 싫어졌다. 내가 교사가 된다면 매주 이런 걸 해야 하는 걸까. 그렇다면 어떻게 이 배구를 피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