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속에는 낯선 남자가 서 있었다. 피곤에 절어 있는 눈꺼풀과 무표정만 봐도 상당히 지쳐 있는 거 같았다. 안쓰러웠고, 불쌍했는데 자세히 보니 무섭기까지 했다. 예전의 내가 아닌 거 같았다.
캘린더를 보는 일이 잦아졌다. 1월의 휴가를 바라보는 나를 발견했다. 지푸라기라도 잡아보며 어떻게든 버텨보자는 마음과 또 그렇다고 현재의 시간을 허송세월 날려버리고 싶지 않는 양가의 감정이 나를 괴롭혔다.
부쩍 출근하기 싫을 때가 많아졌다. 선배들이 말하길, 교직 생활에서 슬럼프는 한 번쯤 찾아온다고 한 말이 떠 올랐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슬럼프인 건가.
"아무도 그 학부모를 막을 수 없다"
한 언론사 다큐멘터리에 등장했던 헤드라인이었다. 학부모의 악성 민원에 견디다 못해 담임이 그만두게 되었고, 그 사건이 반복되어 벌써 담임 교체가 여섯 번째 이루지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렇지 않게 고개만 끄덕이고 있는 나를 보며 소름 돋았다. 이제 이런 일들이 익숙해져 버렸다. 동료 선생님들 사례로만 유사한 일이 상당했다.
올해 처음으로 아이들을 만났을 때, 정말 운이 좋았다고 생각했다. 정말 좋은 아이들을 만났다고 생각했다. 어떤 수업 활동에도 아이들은 군말 없이 잘 따랐고, 그들은 조금 부족해도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 모습이 너무 기특해, 애정을 갖고 좋은 수업과 꼼꼼한 지도로 보답하려고 했다. 아이들과 교사가 함께 웃을 수 있는 교실을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희망의 깨진 건 한 학생의 메시지로 시작되었다. 하나의 장문 메시지를 보며, 아이가 보낸 게 맞는지 몇 번이고 확인했다. 하지만 논리적인 문장 구조를 보며, 그 아이가 맞다는 확신을 했다. 메시지를 요약하자면 아이는 나를 다른 담임으로 교체하고 싶다고 했으며, 나를 두며 배려와 존중이 전혀 없는 사람이라고 했다. 혼낼 때 이유를 하나씩 묻지 않는 매정한 사람이라고 했다. 심지어 대부분 학생도 본인과 같이 생각을 한다고 했다.
대부분이 나를 비난하는 내용이었다.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단 한 번도 전에 아이와 이런 기류를 느끼지 못했다. 배신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으며 당황스러웠고, 언짢았다. 오히려 아이는 우리 학급에서 모범적인 학생에 속했으며, 적극적으로 공부하고 발표하는 모습이 기특했다. 우리 반의 학업 분위기를 만들어주어 고마웠고 때로는 의지가 되기도 했다.
긴 시간 상담 끝 알게 된 사실이지만, 진짜 이유를 듣고서는 터무니없었다. 아이는 1학기에 했던 체육 게임에서의 나의 오판이기분을 상하게 했다고 했다. 또 장문의 메시지를 보낸 그 당일, 준비물을 들고 와야 한다고 핀잔을 주었다고 했다. 그리고 아이는 내게 사과를 원했다.
나의 사과 끝에 어찌어찌 사건이 일달락되었지만, 이후 아이를 대할 때의 나는 더 이상 예전의 내가 아니었다. 눈치를 보게 되었고, 혹시나 나의 어떤 행동이 심기를 거스르지는 않았는지 노심초사하게 되었다. '아동학대'라는 틀은 끊임없이 스스로를 자기검열하게 했고, 그 두려움이 교육철학을 점차 잃게 했다.
허탈감을 느꼈다.교사가 지도할 수 있는 건 어디까지인가.
반에 애정을 가지고 있었던 내 마음은 조금씩 사라지는 거 같다. 무사히 하루가 끝나는 것에만 감사함이 생긴다. 인터넷에 늘어나고 있는 교대 자퇴생 관련 기사가 눈에 띄었다. 관련 기사의 댓글 하나가 마음을 쓰라리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