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발령 때나 지금이나 피곤한 건 여전했다. 아니, 오히려 아침에 피곤함이 더해져 일어나기 몸이 더 무거워졌고, 어찌어찌 출근해서 일할 때면 졸음이 밀려오곤 했다. 출근해도 피로가 사라지지 않을 때면, 생존을 위해 커피를 들이킬 뿐이었다.
정말 가끔, 아침에 피곤함을 넘어 몸의 무언가 고갈됨을 느꼈고, 이대로 운전하다간 위험할 거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냉장고를 열어 카페인 음료를 찾아보니, '핫식스'가 있었다.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도 모르는 채로 들이키기 시작했다.
심각한 건, 전에는 한 달에 한 번 정도였는데, 지금은 일주일 중 한 번 꼴로 주기가 줄어들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공휴일, 연휴에도 약속을 잡지 않게 되어버렸다. 약속 없이 늦잠을 자야, 피로가 풀린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연휴가 다가오면 '여행, 모임, 약속' 다 필요 없고, 미치듯이 푹 자고 상쾌해지고 싶었다.
만성 피로라는 게 이런 거구나 싶었다. '왜 우리나라엔 남유럽처럼 시에스타가 없는 거야' 하고 한숨만 내쉬었다.
대체 내 생활 습관에 뭐가 문제가 있는지 궁금해졌다. 내 몸이 고장 난 원인을 찾아야 했다.
퇴근 후의 내 삶을 일주일간 관찰해 보기로 했다. 우선 5일 중 3일을 정시 퇴근하지 않았다. 이 놈의 계획적 성격 J 때문인데, 계획한 학교 업무를 끝내기 전까지는 퇴근하지 않은 이상한 버릇이 있었다. 그 누구도 초과 근무하라고 하진 않았지만, 그 상태로 집에 간다면 업무 생각으로 가득해 스트레스받을 게 뻔했기 때문이다.
또 보아하니 퇴근 후엔 지친 몸을 이끌고, 카페로 향할 때가 많았다. 휴대폰 앱으로 영어 공부를 하고, 유튜브로 재테크 공부도 한단다. 그뿐인가. 일주일에 몇 번은 필라테스나 배구를 또 가야 한단다. 심지어, 요즘은 교원대학교 파견 가보겠다며 공부도 끄적댄다. 그렇게 집에 들어와 보니, 빨랫감과 설거지 거리가 놓여 있었고, 집안일을 하기 시작했다. 샤워 마치고 난 후의 시계를 보니, 벌써 11시.
과연 이대로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었을까? 역시였다. 휴대폰을 꺼내 들어 유튜브를 누르고 있었다. 혼자 웃고 즐기고 시계를 슬쩍 보니 벌써 12시는 넘었고, 짧은바늘이 1을 가르칠 때였다. 슬슬 내일이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억지로 눈을 감아 봤다. 그런데, 아무리 시간이 흘러 잠이 오지 않았다. 이대로는 진짜 안 되겠다 싶어 유튜브에 'AMSR, 잠 오는 영상' 등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다음 날 알람이 울렸다. 오전 7시. 그러고 또 하루가 시작되었다.
꿈꾸고 싶은 삶과 쉬고 싶은 욕망은 충돌한다. 이 둘 사이에서 난 매일 끊임없이 (지금 이 순간도) 갈등 중이다. 열심히 뭔가를 하는 날이면, 이제 좀 쉬어야겠지 하며 생각하고, 팽팽 놀 때는 이렇게 살아도 되나 싶다. 미니멀리즘으로 살고 싶은데, 또 그렇게는 살고 싶지 않다. 또 가득 채워 살다 보면 답답해하겠지.
누군가가 내게 '인생 영화가 뭐야?' 하고 물어볼 때, '리틀포레스트'를 대답했는데 특별한 이유를 찾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는 이유를 알 거 같기도 하다. 내가 바라는 삶을 주인공들이 대신 살아주었던 거 같다. 그중 하루 만에 사표 내고 시골로 내려가 농사짓고 사는 재하(류준열)가 인상 깊었다. 내게 재하는 참 특별했고, 그 삶이 부러웠다.
그래도 아쉽지만, 나는 재하만큼 큰 용기가 없다. 미친 척하고, 의원면직을 하고 혼자 훌쩍 떠나가는 상상은 수 없이 해봤지만 실상은 8시 40분까지 출근할 뿐이다. 그 말은 즉, 지금 하고 싶은 욕망들을 버리고, 정리해야 한다는 걸 의미하겠지. 카페인 없이 하루를 제대로 버틸 수 없다면, 건강한 사람이라곤 할 수 없진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