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올 것만 같던 그날이… 와버렸다
하루라도 더 일하고 싶은 마음에 출산하는 날 2주 전까지 기꺼이 출근하였다. 출산 후 이대로 향후 일 년 이상 커리어에 쉼표가 생긴다는 사실이 생각보다 더 받아들이기 어려웠고 나의 자리가 부재로 남는다는 것이 아쉽고 아쉽기만 해 힘닿는 한 끝까지 다녔던 것 같다. 또 가만히 집에서 쉬는 것보다 왔다 갔다 일을 다니면 출산이 좀 더 수월할 수도 있다는 주변 이야기를 들어서 만삭의 배로 회사를 다니는 일이 고되긴 해도 아주 나쁘지만은 않았던 기억. 내 할 일만 제대로 해두면 퇴근 시간을 지킬 수 있는 팀 분위기도 큰 몫을 했고 함께 일하는 팀원들도 배려를 많이 해준 덕에 감사한 만삭 시절을 지났다. 무탈하게 순순히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소진하고 휴직 일수를 하루도 남김없이 전부 다 사용한 지금, 내일이면 1년 하고도 90일 만에 현실육아본부가 아닌 마케팅PR본부로 출근을 한다. 믿어지지 않는다.
내일부터 바뀔 우리의 아침 루틴을 시뮬레이션해본다. 7시 전 기상하는 아기 케어부터 전쟁이 예상되는데 남편과 내가 서로 씻고 출근 준비를 하는 동안 아이를 먹이고 씻기고 어린이집 보낼 준비를 번갈아 담당한다. 전날 밤 미리 얼집 가방 짐도 싸 두고 각자 입을 옷도 정해두어 아침 준비는 속전속결로 끝날 수 있도록 한다. 7시 반에 어린이집에 아기를 데려다주고 남편 차를 타고 나는 itx역까지 가서 열차를 타고 9시 출근지옥을 또다시 경험한다. 퇴근하고 집으로 정신없이 달려가면 빠르면 8시에 현관문 앞에 도착할 수 있다. 집과 가까운 곳에서 일을 하고 비교적 자율적으로 퇴근시간을 조율할 수 있는 남편이 6시에 어린이집 하원을 책임지고 귀가 후 아이 저녁을 먹이고 목욕을 시킨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손만 빠르게 씻고 아기와 시간을 보내다 재우는 것은 나의 몫으로 한다. 고맙게도 일찍 잠든다면 호다닥 남편과 저녁을 먹거나 맥주 한 잔을 마시고 샤워를 하고 하루를 마감한다. 그리고 부리나케 눈을 뜨면 다시 다음날 아침.. 또는 새벽일 것이고 이 패턴이 무한 반복된다.
시뮬레이션만 해봤는데 벌써부터 숨이 차오른다. 말은 쉽지 저 일과를 일주일에 다섯 번 주중 내내 잘해나갈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서는 마음. 나보다도 남편이 하드캐리하게 될 것이므로 너무 무리가 되지 않아야 할 텐데. 이제 아기와 함께 보낼 시간도 턱없이 짧아지네. 이렇게 생각하고 싶진 않은데 어쩔 수 없이 미안하고 아쉬운 마음도 따라온다. 육아만 하다 육아와 일까지 하게 되는 게 좋은 거라면 좋은 것인데 마치 잘못하진 않았지만 잘못하는 것 같은 이상한 기분. 평소보다 긴 시간 어린이집에서 시간을 보내야 하는 우리 아가. 하원 시간이 늦는 아마 또래보단 형 누나들과 함께 지낼 시간이 많겠지만 요즘 부쩍 엄마 껌딱지가 된 아이가 잘 지낼까 잘 지내겠지 잘 지내야지 생각하면서도 흠뻑 젖은 마음이 무거워진다.
육아가 힘들 때면 어서 빨리 복직만을 기다리던 날이 8할이었다. 아이 낳기 전처럼 자유롭게 나의 시간을 갖고 때가 되면 점심을 여유롭게 먹고 어른들과 어른다운 대화를 하고 커피도 마시는 여유로운 일상, 뭔가 집중하고 몰두하고 성과를 이루고 뿌듯함을 느끼는 그런 과정들을 그리워하며 복직을 당겨야겠다 생각했던 적도 정말 많았다. 그런데 돌이 넘고 면역력 지옥을 겪으며 어린이집을 보내면서 매일매일 콧물약을 달고 살 정도로 여기저기 아픈 아기를 케어하다 보니 어느새 복직 날이 코앞으로 다가온 것이었다. 하필 이제야 좀 코로나도 나아지는 것 같고 아기도 잘 걷고 하니 여기저기 다니고 싶은 곳도 참 많고 하고 싶은 것도 괜히 많아지고 난리. 휴.
지금으로선 아기만 보는 육아 시절이 너무 그리울 것 같고 회사를 나가기 싫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이런 마음조차 또한 변화하리라 짐작해본다. 점점 투정도 떼도 느는 아기를 하루 종일 감당하는 것도 회사생활만큼 아니 그보다 더 힘든 일이었을 것이리라 스스로 위로한다.
나 안 잘리고 잘할 수 있을까? 한동안 일을 쉬어 허점 투성일 것이 분명한데 사람들이 애엄마라서 아줌마라서 저런다는 소리를 한다면 그건 또 죽기보다 듣기 싫으니 얼마나 정신줄을 부여잡고 버텨야 할지 알만하다. 아니 지금 이런 걱정할 시간도 없다. 앞 일 걱정은 워킹맘에겐 사치. 오늘 밤 아기가 안 깨고 푹 자서 새벽에 깨지 않고 이 엄마가 쭉 통잠 잘 수 있게 제발 잘 자 다오. 지금 바라는 건 오직 그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