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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SSAM Aug 01. 2019

아빠의 육아휴직記

"노니까 괜찮아?"부터 "놀아도 괜찮아!" 사이의 한 생각

올해 6개월 동안 육아휴직을 했다. 발단은 이랬다. 아내가 첫째와 둘째의 유아기에 육아휴직을 했으니 둘째의 초등학교 입학 시기에는 내가 육아휴직을 하겠다고 약속 아닌 약속을 오래전 했던 것이다. 그 약속을 꼭 지키겠노라고, 가까운 지인들에게는 선언 아닌 선언을 일찍부터 했었다. 마음이 약해질 것을 대비한 것이었다. 굳이 선언이라는 거창한 표현을 하지 않았어도 나의 생각과 몸은 육아휴직을 행동으로 옮기기에 충분했는데도 말이다.


물론, 해오던 일로부터 조금 떨어져 있고자 하는 생각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일종의 거리두기. 또한, 스트레스 관리를 그럭저럭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늘 가족, 특히 아이들에 대한 미안함이 남아있었다. 몸을 부대낄 수 있는 절대적인 시간보다는 온전한 마음으로 놀아줄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던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 이런저런 이유가 휴직의 동기가 될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결정적인 요인면 육아휴직의 목적은 육아를 위한 것이고, 아빠도 '육아휴직'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한국사회는 아직까지 육아휴직을 '해야 한다' 보다는 '할 수 있다'를 얘기해야 하는 현실에 가깝다. 어떤 사람들은 아빠가 육아 휴직하는 게 별거냐고 생각하겠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아빠가 육아휴직을?'이라고 생각한다. '아빠가 육아휴직을 해야 한다. 할 수 있다'에 동의한다고 하더라도, 한국사회에서 남자의 육아휴직은 여러 이유로 쉽지 않다. 어쩌면 필자가 교사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에 육아휴직을 조금 수월하게 결정했을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우리나라의 아빠 육아휴직은 해마다 늘고 있다. 실제로 육아휴직을 하고 보니, 동네 놀이터, 유치원 차량 탑승장 등에서 종종 아빠 휴직자들이 눈에 띈다. 아빠 육아휴직에는 사람들의 인식 변화와 함께 정책적인 지원이 어느 정도 작용한 듯하다. 공무원과 교사 등은 제외되지만 고용보험에 가입한 남성은 '엄마가 육아휴직을 사용한 후에 같은 자녀에 대해 아빠가 육아휴직을 사용하면 아빠의 첫 1개월 육아휴직급여로 통상임금의 100%(최대 150만원)를 지원(출처: 여성가족부)' 받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육아휴직을 하지 못하는 현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길지 않았던 아빠의 육아휴직 마무리하며 몇 가지 감상을 기록으로 남겨본다.



"노니까 좋아?"

육아휴직 동안 몇 명의 지인들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는 적이 있다. 이런 질문이 우스갯소리일 수 있지만 질문 속에는 '육아휴직'에 대한, 특히 '육아'에 대한 인식이 반영되어있다. 아마도 아빠의 육아휴직이기에 그러할 것이다. 엄마 육아휴직자였다면 굳이 물어볼 필요가 있었겠는가? 엄마가 육아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육아를 하는 엄마의 역할은 우리의 머릿속에 잘 그려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질문에는 우리가 보고, 듣고, 느끼고 했던 것들, 우리가 어떻게 사회화되었는가가 반영되어 있다. 아무리 제도적 혜택을 마련해도 인식이 바뀌고 문화가 바뀌는 데에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 특이하게도 이러한 질문을 했던 분들은 주로 나보다 어른들이었으며 주로 여성이라는 것이었다. 한국사회의 가정 내 육아와 살림에 대한 역할 혹은 불평등에 기인한 것일까? 전통적으로 여성이 바라보는 아빠의 역할, 특히 아빠의 육아는 무엇인가? 노니까 좋냐는 질문을 하지 않은 분들도 '노는 동안 ~~~를 해라'와 같은 조언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물론, 이런 조언에 '생각보다 시간 없을 거예요'라는 경험담을 들려주는 분들도 있었다. 육아휴직을 해보니 그 말이 어느 정도 실감이 난다.


그렇다면 남자들은 어떤 질문을 했을까? 여기서도 세대 간의 반응이 달랐다. 어른 세대는 질문보다 훈계가 많았다. "남자가 무슨 육아휴직이냐", "경력관리는 어쩌려고 그러냐" 등등. 교직사회에도 이러한 반응이 여전히 존재한다. 한편, 젊은 세대가 하는 주로 했던 질문은 "육아 휴직해서 뭐해요?" 하는 질문이다. "노니까 좋아?"와 비교할 때, 비슷하면서도 다른 느낌의 질문이다. 비슷한 점은 '진짜 육아해요?'라는 의미가 있다. 반면, 남자들의 질문 속에는 '할 수만 있다면 나도 하고 싶다'는 마음과 가정에서 육아와 살림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의 솔직한 궁금함이 묻어있기도 하다.


나 역시 처음 하는 육아휴직이기에 이런 질문에 명확하고, 여유 있게 답하지 못했다. 처음엔 질문한 사람이 진짜 궁금해하는 것이 뭘지 궁금하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했다. 지금이야 '노니까 좋다', '육아 휴직하면 주로 육아하고, 남는 시간에 하고 싶은 거 한다'라고 말할 것 같지만 말이다.



"육아휴직? 별반 다르지 않아"

육아휴직을 한 달쯤 했을 무렵, 일을 할 때와 별반 다르지 않은 생활을 하고 있었다. 쩌면 좀 더 절제된 생활을 했는지 모르겠다.


일과 시작-아내의 출근-아이들의 등교-간단한 집안일-개인 시간-하교한 아이들 간식 챙기고 대화 나누기-때때로 픽업-때때로 저녁 준비-아이들과의 시간-개인 시간...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도 비슷하고, 노동량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어쩌면 일을 할 때보다 어려움이 컸는지 모르겠다. 아침에 아이들을 챙겨야 하기 때문에 저녁시간 이후 지인들과의 만남은 가급적 하지 않았다. 또한, 초보 육아휴직자로서 육아와 살림의 범위를 정하고 욕구를 조절하는 일도 필요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아침을 해주고 싶었고, 간식을 해주고 싶었다. 내 딴에는 간단히 한다고 했던 음식인데,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가는 아침이었다. 그리고 섣불리 빵을 만들어보겠다고 선언을 하는 바람에 아이들의 친구까지 집에 초대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첫 번째 베이킹(카스테라)


휴직기간 내내 직장인으로서 일하던 습관이 휴직자의 일상에 어느 정도 영향을 주었다. 아이들이 등교한 후부터 하교하기 전까지 주어진 몇 시간은 지난 몇 년간 묵혔던 일을 처리하거나 나름의 유익함을 준비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대체로 읽기와 쓰기에 집중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가끔은 말하기를 필요로 하는 곳에 나타나기도 했다. 몸과 마음의 여유 탓인지 예전보다는 좀 더 정성스레 준비를 했다. 물론, 때로는 일과의 거리두기에 실패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말이다. 어쨌든 낮 시간 동안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휴직의 묘미가 아니었을까? 적어도 나에겐 그랬다. 나에겐 그러한 일이 노는 일이 되었다.



"좀 더 잘 놀았으면..."

아이들과 침대에 누워 아빠의 휴직 동안 뭐가 제일 기억나냐고 물었던 적이 있다. 아이들은 아빠랑 여행 간 것, 아빠가 빵 만들어 준거 등을 얘기했는데, 가장 마음에 남았던 것은 "학교 갔다 오면 아빠가 있는 것"이라는 대답이었다. 다른 것들은 휴직을 하지 않아도 해줄 수 있는 건데, 하교 후 아빠가 있는 것은 다시 해주기 어려운 것 아닌가? 어른들보다 아이들은 그렇게 소소한 것에서 행복을 느끼고 있었다. 부모가 아이들에게 해줘야 하는 것은 그러한 소소한 것들이 아닐까? 큰 이벤트보다 소소한 행복들이 더 오래, 그리고 깊게 간다는 것을 아이들로부터 배운다.


나에게도 육아휴직 동안 기억나는 장면 중 하나는 하교한 아이들과의 대화이다. 아이들이 집에 들어오면 간식을 챙겨주고, 학교는 어땠는지, 친구들과는 즐거웠는지 물어본다. 아들 녀석에게는 대답을 끌어내는데 시간이 좀 걸렸지만 딸은 그렇지 않았다. 시시콜콜해 보이는 일들도 일일이 얘기했다. 주로 친구와 다툰 일, 속상한 일이 많았다. 딸의 얘기에 대한 조언과 공감 사이에서 아빠도 많은 학습을 했다. 아내한테 종종 혼나는 부분이기도 한데, 딸에게는 나의 공감능력이 좀 더 쉽게 발휘되는 듯하다.




다음 장면은 아내와 아이들출근과 등교를 한 후, 간단히 청소를 마치고, 책상 앞에 앉아 꾹 참고 있던 '커피 한잔'을 마시는 것이다. 커피라고 다 같은 커피가 아니다. 같은 시각, 아이들을 등교시킨 엄마들과 비슷한 심정을 느낄 수 있는 커피이기도 하다. 그리고, 등교하는 아이들을 보지 못하고 출근한 우리 직장 엄마들의 마음 느끼게 하는 커피이다.


잠시나마 아이들로부터의 해방커피이자
아빠가 아닌 나로서 시작하는 전환커피이다.



마지막 장면은 어머니와의 시간이다. 가까이 살고 계시는 어머니 역시 아들의 육아휴직이 반가우셨던 것 같다. 보통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어머니와 단둘이 점심을 먹을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아이들이 있을 때보다는 조금 더 많은 얘기들을 나누었다. 아이들의 방학이 다가올 무렵, 어머니는 더 자주 점심 미팅을 제안하셨다. 어머니도 이 시간이 그리울 것 같으셨나 보다. 나 역시 그러할 것 같다.


아빠의 육아휴직. 혹은 아들의 육아휴직.

아들 녀석 담임선생의 호출을 받고 급히 달려갔던 추억. 집에서 봤던 모습과는 달리 보였던 아이들의 공개수업 장면. 굳이 혼자 집에 올 수 있으면서도 아빠의 마중을 바랐던 아들, 딸 녀석의 투정. 어머니 집에서 수다 떠느라 아들 녀석이 집에 오는 시간도 잊어버린 추억. 여유 있게 만날 수 있었던 좋은 사람들. 읽고, 쓰고, 말할 수 있었던 유익함들.

 

아쉬움이 왜 없겠냐마는 '노니까 괜찮았다.', '이 정도라면 더 놀았으면 좋았겠다.'

한번 해봤으니 더 잘 놀 수 있을 텐데 말이다.

후배들도, 동료들도, 나의 이웃들도 그럴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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