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미래학교 Talk Concert의 시작 그리고...
대화가 필요하다. 삶에 대한 대화도 필요하고, 사람 간의 갈등에 대한 대화도 필요하다. 학교에서도 이러한 대화는 필요하다. 그러나 혁신을 논하는 지금, 우리에게는 서로의 교육적 신념과 실천 그리고 상상하는 것에 대한 대화가 필요하다. 학교 내 교사 간에도 그렇다. 학교의 변화는 개인적 노력의 성취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통의 학교에서는 개별 교사의 실천과 신념을 엿볼 기회를 만나기 어렵다. 어림잡아 추측할 뿐이다. 사적으로 친한 관계가 되어야 비로소 만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우리는 교육을 주제로 대화를 이끌어 나가는데 익숙하지 않다. 교육자의 대화에서 교육이 없는 경우를 종종 발견한다. 교육은 개인의 가치를 떼어놓고 말할 수 없어서 인지, 이러한 대화는 논쟁을 유발하기도 한다. 더욱이 상상하는 바를 이야기하는 것도 금기시되는 경우가 많다. 새로운 상상이 새로운 일거리로 이어지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특정 주제에 대해 생산적인 토론을 진행하기란 더더욱 쉽지 않다. 내 옆의 전문가로부터 교육활동의 경험과 고민 그리고 상상 등을 공유하지 못하는 것이다. 물론 대화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거나 대화의 방법을 모르기도 하다. 또한, 교육을 주제로 한 대화에 관심이 없거나 혹은 대화를 통한 피로감과 상처에 대한 두려움이 존재할 수도 있다. 환경적으로는 교육 대화를 위한 학교 안팎의 여건이 마련되지 못한 것도 원인이다. 이러저러한 상황들은 필자의 학교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났다.
학교혁신을 위해서는 학교가 직면한 여러 가지 문제, 교사들의 실천과 성장에 영향을 주는 문제를 공론화하고, 경험을 가지고 있는 교사들의 이야기를 공유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것은 일종의 학교 내 혁신의 확산이기도 하다. 이 과정에서 개별 교사는 물론이고 학교라는 집단도 학습을 하게 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소수의 리더가 혁신을 이끌어 가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혁신의 주체이자 전문가로서 참여하는 것이다. 개별 교사들이 지닌 전문가로서의 면모를 발견하고, 전문가로서의 대화, 전문가로서의 지식공유를 해야 한다.
선생님들의 Talk Concert의 시작
2017년부터 자발적 참여자들에 의해 토크콘서트가 시작되었다. 동료의 혁신 경험을 공감·공유하고 새로운 상상을 나누기 위한 장場이 만들어진 것이다. 매월 1회, 퇴근시간 이후에 시작한다. 여기서는 교육과정-학교문화-학습환경 등의 다양한 영역에서 혁신적 경험을 이미 시도했거나 고민 중인 선생님이 사례를 공유한 후 청중과 토론을 진행한다. 본인이 고민하고 있는 미래교육적 시도가 어떤 의미였고, 나름의 성과와 한계는 무엇인지를 구성원들과 공유하는 자리이다. 미래교육의 구체적인 모습을 학교 차원에서 정하기보다는 토크콘서트와 같은 공개된 공간에서 공론화하고 구성원들의 해석과 토론을 통해 각각의 시사점을 자신의 수업과 각종 활동에 반영하는 것이다.
해야 하는 이야기가 아닌 하고 싶은 이야기
토크콘서트는 공적인 대화 공간이다. 은밀하고 비공개적으로 이뤄지는 사적 대화와는 다르다. 보통 학교에서 공적으로 이뤄지는 대화는 어떠한가? 무언가를 해야 하는 이야기, 하게 만드는 이야기이다. 공감과 공유라기보다는 전달과 과제 제시를 목적으로 하는 경우이다. 그러나 토크콘서트는 '스피커가 하고 싶은 이야기'이자 '청중이 듣고 싶은 이야기'를 소재로 삼는다. 물론, 그러한 이야기에 흥미 없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다만, 혁신적인 경험을 하고 있는 교사에게는 자신의 고민을 알리고, 확산의 물꼬를 트는 기회이다. 참여한 청중에게는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는 내 곁의 동료를 찾는 기회이자 배움의 공간이 되기도 한다. 토크콘서트는 그러한 경험을 자유롭게 나눌 수 있는 아고라 광장 같은 구실을 할 뿐이다. 그 경험을 채택하는 것은 청중의 몫이다. 퇴근시간 이후에 진행되었던 토크콘서트가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에게 이익이 된다면 참여한다'는 원칙이 자리 잡고 있었다.
선생님은 모두가 전문가
교사는 실천가임과 동시에 현장 연구자다. 그들은 자신마다 특별히 강조하는 신념이 있거나 실천하는 분야가 있다. 같은 과목, 같은 학년을 가르치고, 같은 교실을 사용하는 교사일지라도 모두가 차별화되는 자신만의 고유영역이 있다. 어떤 선생님은 활동을 통해 아이들과 즐겁게 노는 수업에 노하우를 가지고 있는가 하면, 어떤 선생님은 아이들 앞에서 스토리텔링 하는 노하우를 가지고 있다. 어떤 선생님은 앞서가는 아이들을 지도하는 데 노하우가 있는가 하면, 어떤 선생님은 뒤쳐지는 아이들에게 더 많은 노하우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어떤 선생님은 독서교육이 미래교육이라고 얘기하는가 하면, 어떤 선생님은 융합교육이 미래교육이라고 얘기할 수도 있다. 즉, 고유영역을 문장으로 표현하지 않더라도 자신의 신념과 관심사를 반복적으로 행위하며 나름의 노하우를 만들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수년을 현장에서 보낸 교사들은 전문가로서의 자격을 충분히 지니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전문가들을 곁에 두고 있다. 이러한 전문가들로부터 소소하지만 살아있는 이야기를 듣는 것은 어떠한 책과 우수 강연자의 이야기보다 강력할 수 있다. 토크콘서트는 내 곁의 전문가들을 인정하는 공간이며 모두가 전문가임을 확인하는 공간이다.
이슈 발굴과 여론 형성
어떤 조직이든 간에 다수가 말하고 싶은 이야기가 존재한다. 다수가 말하고 싶은 이야기는 곧 다수가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슈는 논쟁으로 이어지기도 하지만 새로운 성장을 품은 씨앗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러한 이슈가 학교 내에 존재한다는 것은 희망적이다. 토크콘서트는 이슈를 찾고, 공적인 공간에 꺼내어 놓는 역할을 한다. 이슈를 감추고, 은밀하게 처리하는 것이 아니다. 사적인 공간 혹은 작은 조직에서 이야기되는 것들을 공론화하는 것이다. 공식 회의보다는 좀 더 자유롭고, 편안한 분위기 그리고 자발적인 참여 공간이기 때문에 공적으로 대화를 나누는 것에 대한 부담이 덜하다. 토크콘서트에서 나눈 대화들이 어떻게 처리될 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얼마나 해당 이슈에 공감했는지에 따라 혹자의 이야기에 머물 수도 있고, 여론이 될 수도 있다. 실제 토크콘서트에서 나눈 이야기들 중 일부는 공식 회의의 안건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토크콘서트의 주인은 학생의 교육활동과 관련한 학교 구성원 모두이다. 발표자가 된다는 것은 토크콘서트의 주인을 넘어 학교의 주인으로서 자신의 관심과 흥미 그리고 능력을 드러내는 일이다. 공동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협력의 주체가 되는 것이다. 소박한 경험을 공유하는 자리이지만, 학교가 직면한 문제에 대하여 교사가 지닌 경험과 사례, 통찰은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하기도 하였다.
발표자에 대한 인센티브는 토크콘서트 기념 배지가 유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표자들이 끊이지 않았던 것은 물질적인 보상보다 학교의 주인, 미래교육의 주인으로서 기여한다는 내적인 만족감이 충족되기 때문일 것이다.
(중략) 토크콘서트는 연구하고 실천한 교사들이 수평적인 관계에서 만나서 실제적인 토론을 하는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행정업무 중심의 학교, 위계가 분명한 관료주의 학교문화에서 교사들이 집중해야 할 교육활동의 주제를 발굴하고 교사들이 자신의 전문성을 마음껏 발휘하고 공유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서울미래학교 보고서, 2017, p89-90)
자발적인 참여 공간으로서의 토크콘서트. 학교를 더욱 생동하게 만들고 미래교육 실천의 동력으로 작용해야 할 것이다. 토크콘서트 주제와 형식의 변화는 앞으로도 거듭하겠지만 변치 않을 의미들에 기초하여 진화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