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만난, '질문'에서 시작된 선생님의 자율권 살펴보기/찾아보기
선생님들의 교육과정/수업/평가 자율권을
더욱 확보하기 위한 방법은 무엇인가요?
선생님들과 '수업/평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한 선생님이 물었다. 아마도, 자신이 누리고 싶은 자율권에 비해 현재상태가 그렇지 못하다고 생각한 듯하다. 실제, 학교 현장에서는 '자율권 보장'에 대한 요구가 많다. 무언가를 시도해보고 싶은 선생님들은 특히 그렇다. 특별히 무언가를 시도하려는 선생님만 그러한가? 최근에 받은 하소연 혹은 질문을 간추려 보면 아래와 같다.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수업과 평가를 하고자 해도, 선생님들의 수업/평가를 구속하는 법령, 지침이 너무 많다. 혹은 과도하다.' '국가 수준의 성취기준을 너무 강조하다 보니 수업/평가의 자율권이 부족해지는 것 같다. 기준이 너무 많은 것은 아닌가?', '교육과정 재구성 등의 권한이 부여되는 듯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법령과 지침의 취지가 아무리 좋은 것이더라도, 그것이 교실 수업의 내용과 방법에 영향을 미친다면 현장에서는 구속감을 느낄 수도 있다' 등등
교사 독자분들은 어떤 의견을 갖고 있는가? 위의 주장 혹은 하소연에 공감하는가?
아니면, 현재로서도 충분한 자율권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정책적으로는 6차 교육과정부터 교육과정 자율화 정책을 점진적으로 추진해 왔다(김선영, 소경희, 2014). 제6차에서는 중앙집권형에서 지방분권형 교육과정으로 전환하려 했고, 중/고교에서의 선택과목을 확대하였다. 제7차에서는 고2,3학년에 선택중심교육과정을 도입했다. 그리고, 2007 개정에서는 고등학교 선택과목 신설 권한을 허용했고, 2009에서는 '학년군', '교과군'제도를 도입하고, 학교특성, 학생, 교사, 학부모의 요구/필요에 따라 교과(군)별 20% 범위 내에서 시수를 증감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교육과정 자율화 정책이 곧 교사의 교육과정 자율권 보장으로 이어진다고 말하기 어렵다. 국가수준>지역수준>학교수준으로 교육과정 자율권이 부여되고 있지만, 교사 수준에서는 수업시수와 수업학기 등을 결정하는 것에 그치고 있다는 견해도 있다(신경희, 2012). 제도적으로 주어진 자율권마저도 누군가의 결정이 다른 이의 결정에 영향을 미치므로, 온전한 자율권이라고 보기 어려울 수 있다. 교육과정 자율권을 주장하는 교사들은 교육과정 편성/수업/평가방식의 자율권을 요구하고 있다.
교사의 교육과정 실행과 관련하여 Snyder, Bolin, & Zumwalt(1992)는 세 가지 관점으로 유형화하였다. 첫째, 충실(Fidelity) 관점은 말 그대로 표준화된 교육과정, 주어진 교육과정을 충실히 수행하는 것이다. 둘째, 상호조정(Mutual Adaptation) 관점은 주어진 교육과정을 여러 상황을 고려하여 조정하는 것이다. 셋째, 생성(Enactment) 관점은 교사와 학생을 만들어진 교육과정의 이용자나 소비자가 아니라, 교육과정을 만들어가는 주체로 재개념화 한 것이다. 학교 현장에서는 세 가지 관점의 교육과정을 실행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교사 독자 여러분은 어떤 관점을 지지하는가?
2007, 2009,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는 '상호조정의 관점'에 따라 교육과정 재구성 혹은 성취기준 재구조화를 강조하였고, 학계의 연구뿐만 아니라 학교 현장의 실천이 활발하였다(서경혜, 2016). 물론, 개정 교육과정 시기마다 '생성' 관점에서 교육주체들이 '만들어 가는 교육과정'을 강조하였으나 선언적 의미를 넘지는 못했다.
최근에는 교사 교육과정에 대한 연구/정책/실천 사례가 생겨나고 있다. 교사가 주어진 교육과정의 '사용자', '소비자'뿐만 아니라 ‘개발자’, ‘생산자’가 되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김현규, 2020; 이한나: 2019). 이미 경기도교육청, 전북교육청 등에서는 교사교육과정 개발을 정책에 반영하고, 지침을 수정하고 있다(이윤미, 2020). 최근 발표된 2022 개정 교육과정에서도 지역화/분권화가 강조된 바 있는데, 학교 단위에 머물지 않고, 지난 개정 교육과정 시기보다 교사 수준의 교육과정 개발과 자율화를 더욱 촉진하고 보장할지는 명확하지 않다.
그렇다면, 모든 교사들이 교육과정 자율권 '확대'를 요구하고 있는가?
실제, 교사의 교육과정 실행은 경력별, 학교급별, 학교규모별, 학교유형별 등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이윤미, 2020). 비판적 교육 이론을 계승한 Apple, Giroux 등은 교사가 자율적인 선택과 판단을 통해 진정한 전문가의 길을 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지만, 한국사회에서 공교육이라는 현실적/구조적 한계를 고려해 볼 때, 교육과정 자율권을 확대/활용하는 교사가 반드시 전문가이거나 바람직한 교사라고 말할 수는 없다. 2023년의 한국교육을 미국이나 유럽 교육과 단순비교할 수도 없다.
[신경희(2012) 교육과정 자율적 운영에 관한 교사 역할 수행 비교]
(미국교사 인터뷰) 미국교사들은 “상급학교 진학”에 대해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 이들은 평가의 신뢰도 또는 객관도도 중요시 여기지만 무엇보다 자신의 관점과 노력을 기울여 다양한 평가 방식을 채택하고 있었다. 교사들은 평가는 수업의 일부이기 때문에 자신의 주관적인 관점에 따라 평가도 사용되는 것을 당연시 여기고 있었다. 이들 교사는 평가에서 자유롭고 이로 인해 교육과정을 스스로 자유롭게 구성하고 있었다.
(한국교사 인터뷰) (한국사회에서) 상급학교를 위한 진학은 교육과정에서 평가를 표준화시켜 분리하고 표준화된 평가는 교육과정마저도 표준화시키는 양상을 띠고 있었다.
우리 교사들이 표준화된 교육과정에 무비판적으로 구속되지 않고, 탈맥락화/탈전문화되지 않으면서 실천가이자 연구자로서의 교사(이은상, 김준구, 오유진, 2019), 전문가로서의 교사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물론, 더 좋은 교육을 위해서라면 불필요한 혹은 불합리한 법령과 지침을 개선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법률 수준의 법령부터 학교 수준의 규정에 이르기까지, 소위 수업/평가에 영향을 미치는 법령과 지침을 바꾸는 것은 쉽지 않다. 이 영역은 실천가로서의 교사가 당장 실현할 수 없는 한계가 있다. 그렇다면 지금 할 수 있는 미래교육을 실현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이 글에서는 현재의 '공교육' 범위 안에서 우리가 '자율권'을 어떻게 이해하고, 활용해야 할 것인지,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고자 한다.
하나. 자신과 대화를 해보자. 그리고 나를 둘러싼 맥락/대상과 대화를 해보자
나는 교육과정 자율권을 통해 어떤 수업, 어떤 평가를 하고자 하는가?
이 수업, 이 평가를 통해 나는 학생들에게 어떤 성장이 나타나기를 바라는가?
나의 학교/학생/학부모/지역사회 등은 나의 수업에 무엇을 기대하는가?
우리가 알고 있는 '자율'이란 뜻은 다음과 같다.
합리적 개인이 관련된 내용을 충분히 인지하고 강요되지 않은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그리스어에 어원을 둔 자율(autonomy)은 ‘자기 자신’을 뜻하는 αὐτο와 ‘법’을 의미하는 νόμος의 합성어로, 자기 자신에게 스스로 법을 부여한다는 의미를 가진다. (두산백과사전)
자율의 개념에 비춰보면, 자율권은 단지 구속으로부터 벗어나는 상태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진정한 '자율'이란 자신 스스로를 통제하고 절제하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측면에서 '자율'이란 '타율'에 비해 높은 수준의 합리성, 도덕성, 책임감을 요구하기도 한다. 수업/평가상황에서 교사가 스스로 법을 부여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자신의 수업과 평가를 일관성 있게 관통할 수 있는 수업의 철학이자 신념일 수 있다. 그 철학과 신념은 결국, 그 수업과 평가가 궁극적으로 도달하고자 하는 학생의 성장일 것이다. 교육과정 자율권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며 수단이다(김선영, 소경희, 2014). 따라서, 목적이 무엇이냐에 따라, 상황이 어떠하냐에 따라 자율권의 행사 방식과 수준이 결정되어야 한다. 만약, 자율권을 지속할 수 있는 궁극적인 목표가 없거나 다른 모습이라면, 나에게 자율권이란 어떤 의미인지, 어떤 필요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둘. 법령/지침과 대화를 해보자.
법령과 지침이 자신의 자율권을 구속한다고 느낀다면, 그 법령과 지침에 대해 살펴보자. 법령과 지침이 의무를 부과하고, 징벌도 하기 때문에 어떤 측면에서는 '구속'의 주체로 생각될 수 있다. 그러나 관점을 바꿔 생각해 보면, 법령과 지침은 권리를 부여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교육부 훈령에서는 "성취기준은 (중략) 교과협의회를 통해 재구조화할 수 있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성취기준을 세세하게 규정하고 있어서 선생님들의 자율성이 구속된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법령에서는 분명 '교과협의회'를 통해 재구조화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자신의 수업철학과 신념, 학교와 지역사회의 상황, 학생들의 수준과 요구 등을 반영하여 성취기준은 재구조화될 수 있다.
좁게 보면, 자율과 타율의 합리적인 결합이며, 넓게 보면 타율을 재해석하여 자율을 세워가는 과정이 우리 법령과 지침에서는 허용되고 있다. 이와 같이, 법령과 지침을 잘 살피는 것은 자신의 자율권을 어디까지, 어떻게 행사할 수 있는지를 알 수 있는 방법이 된다. 물론, 생성 관점을 취하고 싶어 하는 교사에게는 상호조정의 관점에 머무르는 것이 아쉬울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지금 실천할 수 있는, 지금 누릴 수 있는 자율권 행사 방법이다. 따라서, 자율권을 확보하고자 하는 선생님이라면, 그동안 구속과 통제로 인식되어 왔던 법령과 지침을 다시 살펴보자. 그리고, 가능성의 측면에서 그 법령과 지침을 다시 해석해 보자. 그리고, 그 범위 안에서 자신의 자율권을 멋지고, 의미 있게 행사해 보자. 때로는 권한 범위 내에서 규정을 개선하거나 신설해 보자.
셋. 학교 내 전문가와 대화를 해보자.
여기서 학교 내 전문가란 동료교사, 학교 관리자 등이다. 그들은 내 곁의 수업/평가 전문가이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수업과 평가의 기초가 되는 교육과정, 특히 성취기준은 교과협의회를 통해 재구조화될 수 있다. 자신의 자율권은 동료와의 대화, 토론, 설득, 비판, 합의 등의 과정을 통해 행사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수업/평가 자율권은 학교 내 전문가 간의 숙고의 과정을 통해 신중하고도 용기 있게 행사될 수 있는 것이다.
한편, '학교', '교과'라는 공동체 안에서 '자율권'을 행사하는 만큼 공동체 구성원의 합의가 전제되어야 한다. 교사로서의 '내'가 행사하는 자율권은, 공동체 구성원에게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개인의 자율권은 동료의 자율권과 상충될 수도 있다. 개인의 자율권 행사의 결과가 교과 혹은 학교 공동체에게 돌아올 수도 있다. 무엇보다도, 수업전문가인 동료교사와의 합의는 실행의 근거이자 원동력이 된다. 실제, 우리 법령과 지침에서는 교과협의회, 학업성적관리위원회 등의 학교 내 전문가들 간의 연구, 검토, 협의, 심의 등을 적극적으로 보장하고 있다. 이를 적극적/민주적/합리적으로 활용한다는 것은 학교를 전문화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서경혜(2016)는 교사 수준의 교육과정과 관련하여 교사들이 개인주의적 접근에서 탈피하고 공동체적 접근이 필요함을 강조한 바 있다. 학교는 교사들의 집단전문성(서경혜, 2016)을 통해 교육과정/수업/평가 연구 및 개발이 이뤄지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넷. 학교 밖 전문가와 대화를 해보자.
우선, 이 방법은 아직까지 흔치 않다. 그 원인으로 교사들이 교육과정/수업/평가에 집중할 수 없는 구조적 한계, 교직의 폐쇄성, 전문가풀 부족, 경제적 지원 부족 등을 꼽을 수 있다. 연구자들은 평가도구, 수업프로그램 등을 만들 때, 일반적으로 타당성 확보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중 전문가 검토는 타당성 확보 방법 중 하나이다. 해당 분야의 전문가(실천적/연구적 전문성을 지닌 자)에게 개발하고자 하는 것이 취지와 목표에 부합하는지, 내용오류는 없는지, 더 좋은 대안은 없는지 등을 검토받는다. 보통, 전문가 검토를 통해 기존보다 더 좋은 대안 혹은 합리적인 대안을 도출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앞에서 언급했다시피, 자율권은 자유와 책임을 동반한다. 교육과정/수업/평가의 타당성 확보는 교육전문가로서 자유를 최대한 누리면서 책임을 다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 실제로, 고부담평가의 경우에는 학교 밖 전문가와 협업하거나 검토를 받는다. 교육과정/수업 설계 단계에서도 학교 밖 전문가와 협업하는 사례는 국내외를 통해 찾아볼 수 있다. 더욱이, 학교교육의 전문화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고 있는 현실에서 교육과정 자율권이 전문성에 기반하기 위해서는 학교 내 전문가(동료 등)뿐만 아니라 학교 밖 전문가와 협업이 하나의 방법이 되리라 생각된다.
'자율권'이란 관점에서 교육과정을 주어진 것이 아닌 선택하고, 조정하고, 생성하는 것이라고 인식한다면, 그 '자율권' 역시 타인으로부터 부여받는 것에 의존하지 않고, 개인과 공동체의 해석과 활용을 통해 확보해 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미래사회에는 교사의 자율권이 더욱 확대될 것인가? 아니면 축소될 것인가? 미래학교 및 미래교육 시나리오에서는 '확대'될 것이라는 전망이 더 우세하다. 제도적/구조적으로는 교직의 전문화/자율화를 촉진함과 동시에 교사 개인과 공동체 측면에서도 지금 확보할 수 있는 자율권을 의미 있게 활용/확대하려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김선영, 소경희 (2014). 교사들이 기대하는 '교육과정 자율권' 탐색. 아시아교육연구, 15(4), 55-79.
김현규(2020). 화이트헤드의 ‘현실적 존재’로 본 교과의 의미와 통합교과의 의의. 박사학위논문. 한국교원대학교.
서경혜 (2016). 교육과정 재구성 논쟁. 교육과정연구, 34(3), 209-235.
신경희 (2012). 교육과정 자율적 운영에 관한 교사의 역할 수행 비교: 한국과 미국교사를 중심으로. 교사교육연구, 51(2), 297-312.
이윤미 (2020). 교사의 교육과정 실행 양상 및 유형 탐색: 교육과정 자료 사용 및 동료와의 소통을 중심으로. 교육과정연구, 38(4), 207-236.
이은상, 김준구, 오유진 (2019). 학교 내 ‘실천가이자 연구자로서의 교사’ 프로젝트 사례 연구, 학습자중심교과교육연구, 19(8), 1037-1063.
이한나(2019). 통합교육과정 실행으로 본 내러티브적 지식으로서 교사 지식 탐구. 박사학위논문. 한국교원대학교.
Snyder, J., Bolin, F., & Zumwalt, K.(1992). Curriculum implementation. In P. Jackson(Ed)., Handbook of research on curriculum. New York: McMill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