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버들, 왜 이렇게 질문이 많아? 시험 보는 줄...
나: 저희 주문할게요. 브랙퍼스트 스페셜로 주세요.
- 주문 끝난 줄 알고 멍 때리는 중 -
서버: 계란은 어떻게 해드릴까요?
나: (헉, 이건 알지) 서니사이드업으로 해주세요.
서버: 사이드는 뭘로 하시겠어요?
나: (뭐라는 거지?)...
서버: 샐러드, 프라이가 있습니다.
나: (샐러드 하나 알아들음) 샐러드 주세요.
서버: 사워도우, 통밀, 호밀 중에 어떤 걸 드릴까요?
나: (아놔... 뭐라는 거야) 첫 번째 거요.
미국에 온 지 얼마 안 됐을 때 나의 영어 듣기 평가 실력을 시험에 들게 한 곳이 있다.
바로 레스토랑.
내가 배운 레스토랑 영어는, "XX 이름으로 예약했어요", "이 음식 주세요", "계산서 주세요", "(남은 음식 포장을 위한) 투고 박스 주세요" 정도가 다였다. 물론, 계란은 '서니사이드업, 스크램블' 정도, 스테이크는 '레어, 미디엄, 웰던' 중에 선택하면 된다고 알고 있었다.
그런데 메뉴 주문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첫 번째 장애물: 메뉴 이름들이 너무나도 생소하다.
타코, 브리또, 세비체 같은 멕시칸 음식은 (당시) 내 나이 30살 평생 한 번도 먹어본 적 없는 음식들이었다. 결국 나는 햄버거, 샌드위치, 오믈렛 등 그나마 아는 음식들 중에서 고를 수밖에 없었다.
두 번째 장애물: 음식 설명이 외계어처럼 느껴진다.
메뉴 이름 옆에는 보통 그 음식에 뭐가 들어가는지, 어떻게 조리됐는지를 써놓지만, 뭐라는 건지 도통 알 수가 없다. 고기를 구웠는지(Grilled/Seared), 찐 건지(Braised), 볶은 건지(Sautéed), 위에는 살사를 올렸는지(Topped with salsa), 어떤 소스를 뿌렸는지(Topped with sauce) 뭘 이렇게 자세하게 조리법까지 설명을 해놓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고, 나에게는 그저 '모르는 단어들의 조합'일 뿐이었다.
세 번째 장애물: 사이드 선택의 개념조차 몰랐다.
서버가 "사이드를 뭐로 시키겠어요?"라고 종종 물어본다. 우리는 '반찬'이 있긴 하지만, 우리가 선택하진 않지 않나? 게다가 샐러드와 감자튀김이 '사이드'라는 개념이 없었다. 보통 메뉴 설명에 사이드 선택으로 샐러드, 과일, 감자튀김 등의 옵션을 주고 선택할 수 있다고 적어둔다. 하지만 당시 나에게 음식 설명 글은 '그저 모르는 단어들의 조합'일 뿐이었으므로, 제대로 읽지 조차 않았었다. 심지어 어떤 사이드 선택이 가능한지가 '메뉴에 적혀있다는 사실'도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른 뒤 알게 됐다.
네 번째 장애물: 사이드가 그 Side인지 몰랐다
더 큰 장애물은 "What side would you like? (사이드로 뭘 드시겠어요?)"라는 말 자체를 못 알아들었다는 것이다. 영어 Side는 알지만 "사이드로 뭘 드시겠어요?"라고 물을 때의 그 '사이드'가 내가 아는 'Side'인지 몰랐다.
다섯 번째 장애물: 빵 종류를 고르라고?
서버가 "빵은 사워도우, 통밀, 호밀 중에 어떤 걸로 하시겠어요?"라고 묻는 질문은 정말 오래도록 제대로 답하지 못했다. 빵 종류에 대한 영어 단어도 처음 들어봤고,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 그냥 "첫 번째 거요" 하고 얼버무려야 했다. 그러다 남편을 만난 뒤 그가 '사워도우'를 주문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나도 똑같이 시키기 시작했다.
이렇게 보면 내가 정말 영어 초짜 같지만, 나름 토익 900점은 넘는 '영어를 열심히 공부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다른 곳도 아니고, 레스토랑에서 매번 좌절을 겪어야 했다는 게, 그다지 자랑할 일은 아니었다. 어쩌다 친구들과 같이 브런치 레스토랑을 가더라도, "이게 뭐야? 저게 뭐야?" 하고 물어보는 게 창피해서, 항상 아주 기본적이고, 익숙한 것만 주문해야 했다.
그런 나에게 메뉴를 알아서 척척 주문해 주는 남편은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세상에... 음식 주문하는 모습이 그렇게도 섹시하고, 쿨하고, 멋져 보일 수가 있나?ㅋㅋㅋ 게다가 항상 메인 메뉴 하나만 주문하던 나인데, 늘 애피타이저를 하나씩 추가하는 그의 센스는 쿨함 그 자체였다. 심지어, 주문이 끝나면, "저 서버가 방금 뭐라고 한 거야?" 혹은 "이 메뉴가 뭐야?" 하고 꼬치꼬치 물어도, 자존심이 상하지도 않는다.
물론, 음식 주문하는 게 아직도 약간의 스트레스이긴 하다.
우리 팀은 회사 근처의 한 타코 레스토랑에 자주 간다. 우리는 보통 각자 원하는 타코와 음료를 고르고, 함께 먹을 수 있는 칩 Chips을 추가해서 한꺼번에 주문하고 동료들끼리 적당히(?) 눈치 봐가며 돌아가면서 지불했다. 그날은 여러 번 얻어먹은 터라, 다음번에는 내가 사야겠다고 생각한 뒤 계산하려는 동료 옆에 남아있었다.
포테이토 타코 블라블라, 원 레모네이드, 칩 앤 쏼라쏼라? 쏼라블라...
망했다.
벽에 걸려있는 메뉴판에는 메뉴가 너무나 많아 헷갈렸고, 동료가 뭐라고 주문하는지 다음번을 위해 참고하려고 했는데 당최 알 수가 없는 거다. 심지어 이제는 어느 정도 음식 이름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나에는 그저 '블라블라'와 '쏼라쏼라'였을 뿐이었다.
그날 저녁, 나는 이 레스토랑의 웹사이트를 찾았다. 메뉴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다음번 내가 주문해야 할 때 직장동료들 앞에서 고작 음식 때문에 헤매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기억을 차근차근 되돌려 발음을 떠올려보며 복잡한 메뉴판을 훑었다.
'아! 이거다!'
남편, 이게 뭐야?
이거? 치즈 말하는 거야. 큰 사이즈의 치즈를 말하는 것 같은데?
빙고!
직장동료는 칩과 'Big Queso'로 '치즈'를 같이 주문한 거였다. 게다가 타코의 또르띠야를 flour 밀가루나 Corn 옥수수 중에 선택할 수 있었기에 이 말까지 더했고, 사이즈 몇 온스짜리 음료를 주문하는 것까지 추가하니 세상 헷갈렸던 거다.
정말 이민 생활에서의 '언어'는 가장 오래 따라다니는 숙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