팁에 관한 나의 여러 가지 일화 (feat 앵그리 식당 아줌마)
한국에는 팁이라는 개념이 없기에, 팁과 관련한 많은 에피소드들이 있다. 사실 에피소드라기보다는 스트레스였다. '매번 밥을 먹고 난 뒤 15%, 20%를 계산해야 한다는 건가', '왜 이렇게 비싼가', '투고(음식 포장)하는데 팁을 줘야 하나, 안 줘도 되나' 등등. 지금은 팁 문화에도 익숙해졌기에 그만큼의 스트레스는 없지만, 여전히 없어졌으면... 하는 미국 문화 중 하나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미국에 온 지 정말 얼마 되지 않았던 LA 생초짜 당시,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날이 있다. 한인타운에 있는 '돈가스 집'에 간 날이었다. 그날 나는 크레딧카드를 만들고 룰루랄라 음식점으로 향했다. 밥을 다 먹었을 때 즈음, 불길한 기운이 엄습했다.
크레딧카드로 팁은 어떻게 줘야 하는 거야?
당시 현금이 거의 없었고, 단순히 크레딧카드를 쓸 작정이었다. 그러다 사람들이 식사 후 계산대에서 지불을 하지 않고, 그냥 나간다는 걸 알아챘다.
엥? 뭐지?
그제야 눈이 빠지게 사람들을 관찰하기 시작했고, 이 '관찰'을 위해, 나는 밥을 다 먹었음에도 한동안 직원에게 계산서를 달라고 말하지도, 음식점을 뜨지도 못했다. 아무리 눈을 비비고 다시 쳐다봐도 사람들은 밥을 다 먹고 막 떠들다가 '그냥' 나가는 걸로 보였다.
나에게는 이 일이 닥치기 전까지는 생각조차 못했던 문제였다. LA 관련 책까지 사서 읽으면서 만반의 준비를 했다고 생각했는데, 그 누구도 기본 중의 기본, 크레딧카드로 팁 결제하는 방법에 대해 알려주지 않았다. 그만큼 어떻게 보면 나만 모르는 기본 상식이었는지도 모른다.
결국 그날 나는 오랜 관찰에 지쳐 그냥 계산서를 달라고 했고, 영수증을 두 개를 받은 나는 영수증에 팁 칸이 따로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 후 다른 사람들처럼 영수증을 테이블에 두고 (눈치를 보며) 돈가스 집을 떠났다.
한국에서는 식사 후 계산대로 가서 직접 계산하지만, 팁을 받는 미국에서는 앉은자리에서 계산한다. 물론, 급한 경우, 계산대로 가서 해도 되지만, 간혹 한국 음식점을 제외하고는 미국에서 그렇게 계산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계산서를 달라고 하면 직원이 테이블로 계산서를 가져다준다. 이때 금액이 맞는지 확인한 뒤, 크레딧카드를 주면 직원이 한 번 결제를 진행하고 카드와 함께 두 장의 영수증을 가져다준다. 하나는 Merchant Copy, 다른 하나는 Customer Copy. 고객용 영수증은 가져가도 되고 버려도 되지만 Merchant Copy에는 팁과 총금액을 적고 최종 금액을 기입해야 한다. 그 후, 다른 사람들처럼 '그냥' 나가면 되는 거다. 이후 최종 금액이 카드에서 결제된다.
친구들과 함께 점심을 먹기 위해 이번에도 한인 식당에 갔다. 룰루랄라 즐겁게 밥을 먹은 뒤 그날은 현금이 마침 있기에 캐시를 테이블에 두고 나왔다.
차를 타려고 걸어가는데 서버 아주머니께서 뛰쳐나오셨다.
팁을 주고 가셔야죠!!!!
우리를 향해 사람 많은 그 주차장에서 소리를 지른 거다.
테이블에 캐시 두고 나왔어요. 찾아보세요.
어찌나 기분이 나쁘던지... 이 일을 얘기하니 주변에서 그런 일이 가끔 있다고들 했다. 그만큼 미국에서의 '팁'은 서비스가 좋아서 '팁'으로 돈을 더 주는 게 아니라 '강제'이다. 우리가 그다지 특별한 서비스를 받지 못했는데도 저렇게 당당하게, 아니 오히려 우리를 혼낼 작정으로 화가 나서 뛰쳐나올 정도니...
몇 년 전 친구들과 함께 이번에는 커피숍으로 향했다. 커피를 주문한 뒤 계산을 하려는데 아이패드를 내밀었다. 거기에는 팁 10%, 15%, 20% 선택지와 다른 금액을 직접 써넣을 수 있는 버튼, 그리고 No Tip 버튼이 있었다. 아이패드 뒤에는 방금 내 커피 주문을 받은 직원이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지금 같았으면 직원이 아~~주 커피에 대해 잘 설명해 주고 친절했다면 그냥 $1을 주거나 No Tip 버튼을 눌렀을 텐데, 당시에는 첫 경험인 데다 No Tip을 주기엔 또 우리 특유의 눈치 컬처가 작동해 10%를 누르고 말았다.
그때의 그 기분이란, 정말 이렇게까지 말하고 싶지 않지만 '더러웠다'.
4-5불짜리 커피를 마시자고 왔는데, 딱히 서비스받은 것도 아니고, 테이블에 앉을 것도 아니고 그냥 픽업해 가려는데 팁을 달라고 하는 건, TOO MUCH 아닌가? 심지어 고객을 푸시하기 위해서 눈앞에서 저러는 건가 싶기도 하고 이래저래 너무 기분이 나빴다.
그때는 이 방식이 처음이라 당혹스러웠지만, 그 이후로 아이패드 계산대는 많은 곳에서 보편화되었다. 그리고, 많은 직원들이 팁을 계산해야 할 때 내가 마주한 그 첫 직원과는 달리, 눈을 돌려 다른 일을 하는 등 고객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최소한의 노력을 한다.
미국인들은 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남편에게 물었다.
서버는 보통 급여가 적어. 그래서 고객들이 주는 '팁'으로 나머지를 충당하지. 팁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왜 고용주의 부담을 고객이 같이 져야 하냐고 하지만, 팁 문화가 오래된 미국에서는 그게 당연하다고 받아들여져. 그리고 금액에 대해서도 굉장히 관대해.
문제는 요즘의 미국 팁 문화가 고마움을 표현하는 원래의 의도에서 많이 퇴색되고 있다는 점이다. 얼마 전에는 딜리버리 팁을 주지 않은 고객을 다시 찾아가 흉기로 살해한 사건이 도마 위에 오르기도 했고, 과거에는 10% 정도가 시작이었다면, 이제는 최소 20%는 당연시 여겨진다는 사실이다. 그만큼 부담은 오롯이 고객에게 전가된다. 이것도 내가 한국인이라 비판적으로 생각하는 걸까?
내가 미국에 완전히 적응하려면 아직도 멀었나 보다. 아니, 애초에 그게 가능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