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2. 정체성의 혼란과 한국인으로의 회귀
어린 시절의 추억은 그저 귀엽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마주한 현실은 또 그렇게 가볍지만은 않았다. 이민자로서 겪은 보이지 않는 문화의 벽, 많은 한인 2세들이 느끼는 정체성의 혼란, 그 속에서 정체성을 찾아가는 여정을 조금이나마 담아봤다.
한국인들이 도시락을 싸가지고 가면 김치 냄새나 마늘 냄새난다고 놀림을 당한다는 얘기를 들은 것 같아. 너도 그런 적이 있어?
사실, (우리 학교의 경우) 학교에서 'Cool Guy'가 되려면, 도시락을 싸가면 안 돼.
대부분의 아이들은 학교 식당에서 음식을 사 먹거든. 그러기 위해서는 줄을 서서 기다려야 했어. 그사이 얼마나 많은 눈치 싸움이 벌어지는 줄 알아? 줄을 서서 기다릴 때도, 테이블을 선점할 때도 인기 있는 아이들 옆에 있어야 하거든. 도시락 싸 오는 아이들은 다른 학생들이 줄 서는 곳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서 대부분 식당 끄트머리에 한 줄로 앉아서 먹었어.
상상이 가지? 그 사이에 보이지 않는 얼마나 두터운 경계가 있을지. 그리고 그 인기 있는 친구들의 일부가 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해야 했을지. 물론 학교마다 문화가 좀 다르고 지금은 내가 졸업한 지 오래되어서 얼마나 바뀌었는지는 몰라. 그 당시 내가 다녔던 학교에서는 그랬어.
재밌다. 굳이 인종 차별이 아니더라도 초등학교 때부터 보이지 않는 계급이 이미 존재했었던 거네. 그나저나 한인 2세들이 사춘기 때 Identity Crisis를 겪는다고 하잖아. 그게 어떤 거야?
머리와 마음이 따로 논다고 해야 하나? 나는 집에서 가족들과 한국어로 대화했어. 한국 음식을 먹고, 한국 TV 프로그램을 보고, 모든 게 다 한국식이었어. 마음으로는 난 '한국인'이야. 하지만 집 밖으로 나오면 '미국인'이라는 가면을 써야 했어. 그 사회에 속해야 했거든. 예를 들어, 추수감사절, Thanksgiving Day가 지나고 학교에 돌아가면, 친구들 모두 칠면조, 스터핑, 햄, 매쉬드 포테이토, 그레이비소스, 파이를 먹었다고 얘기를 하는 거야. 근데 나는 칠면조가 뭔지도 몰라.
그러니 머리로는 계속 그들의 문화를 배워야 했고, 그들의 일부인 척해야 했고, 또 집에서는 한국인으로 돌아가. 그러다 보니 나의 정체성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게 되는 거지. '나는 도대체 누구인가... 어디에 맞춰야 하는 건가...' 하고.
백 퍼센트 이해는 하지 못하겠지만, 꽤 혼란스러웠을 것 같긴 해. 근데 가만 보면, 너도 친한 친구들이 대부분 Korean American 이잖아. 아시안들끼리 혹은 같은 인종끼리 친해지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 왜 그럴까?
굳이 미국이 아니더라도, 비슷한 성격이나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끼리 자연스럽게 친구가 되잖아. 그게 인간의 본성인 것 같아. 심지어 미국엔 여러 인종과 문화가 섞여 있기 때문에, 아무래도 같은 배경을 가진 친구들끼리 더 깊이 이해하고 끈끈한 관계를 맺게 되는 것 같아.
우리 아버지가 야구를 굉장히 좋아하시거든. 그래서 집에서 항상 야구를 같이 봤었어. 박찬호가 LA다저스에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을 때였지.
어느 날은 박찬호가 '완봉승'을 했는데, 정말 그때의 그 감동은 말로 다 설명을 못해. 그냥, '코리안 프라이드' 그 자체야. 생각해 봐. 미국이 아무리 이민자들로 구성된 다인종, 다문화 국가라고 하더라도, 한국인은 마이너리티 그룹이야. 어떻게 보면 주류가 아니라는 설움을 갖고 사는게 우리의 숙명이야. 그런데, 우리 중의 누군가가 주류 사회의 찬사를 받고 있다고 생각해봐. 같은 '한국인의 피'를 나눈 민족으로서 자랑스럽고 벅찬거지. 그 어린 나이에도 자연스럽게 그런 생각이 들었나봐. 다음 날 나는 '코리안 프라이드'를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장착한 채 학교에 갔지.

친구들을 보자마자 물었어.
어제 다저스 야구 봤어? 와... 박찬호 진짜 너무 대단하지 않았어?
응, 그래 잘하더라.
...?
다른 인종 친구들이었거든. 물론 박찬호가 너무 잘했다는데 동의를 하면서도, 나만큼의 흥분과 기쁨, 환호가 돌아오지 않았던 거야.
근데 2002년 월드컵 때는 어땠는 줄 알아? 우리 모두가 한마음으로 "대한민국"을 외치는데 그때 숨겨져 있던 나의 Korean-ness가 폭발한 것 같아. ㅋㅋㅋ
어머나, 2002년 월드컵 때 한국을 응원했어?
당연하지. 한인타운 한복판에 라디오코리아 잔디 광장이라고 있어. 그곳에서 월드컵 때 커다란 스크린을 설치하고 월드컵 생중계 경기를 틀었거든. 그럼 많은 한인들이 모여서, 다같이 응원을 할 수가 있었어. 그렇게 많은 한국인들을 한 자리에서 본게 그때가 처음같은데? ㅋㅋㅋ 아무튼 그때 나는 붉은 악마 티셔츠를 입고, 얼굴에는 태극기로 페이스 페인팅을 하고, 머리와 목에는 레드 두건을 두른 채 Korean American 친구들과 함께 잔디광장에 모였지. 거대한 태극기까지 준비해서 말이야. 그야말로 만반의 준비를 했지.
그때 내가 워낙 눈에 띄었었나 봐. 어떤 뉴스 채널에서 기자들이 와서 태극기를 군중들 젤 앞으로 나가서 흔들어달라고 하더라? 그리고 인터뷰를 요청했어. "전반전에서 우리가 지고 있는데, 어떻게 될 것 같냐고." 그래서 말했지. "후반전이 아직 남아있으니, 골을 넣어서 역전할 거라고."
근데 졌어... ㅋㅋㅋ 눈물이 나더라? 심지어 집에 가서 또 울었지 뭐야. ㅋㅋㅋ
아니, 내가 너 운 걸 본 적이 없는데, 한국이 축구에서 져서 울었다고?! ㅋㅋㅋ 도도한 교포 남자 어디 갔어?! 확실히 그런 스포츠가 애국심을 끓어오르게 하지.
맞아. 왜 그많은 인종들 사이에서 영어도 잘하면서 Korean American 끼리 더 친해지느냐는 너의 질문으로 다시 돌아가자면, 우리도 그 이유를 딱 설명하긴 어렵지만, 그냥 자연스러운 일인 것 같아. 같은 문화를 공유한다는 건, 단순히 어디 '출신'이냐의 문제가 아니라, 아주 미묘한 '결'을 공유한다는 거잖아. 또 다른 예가 있어.
Let's go grab some 떡볶이 later.
Hey, that guy has no 눈치!
다른 인종의 친구들에게 눈치를 어떻게 설명하겠어?ㅋㅋㅋㅋ 물론 풀어서 설명하면 이해는 하겠지. 근데, 한국인으로서 '눈치'라는 말을 이해한다는 건, 단순히 "read the room" 이상의, 미묘한 한국 정서를 안다는거야. 그걸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사람들과 어울리게 되는 건 너무 당연한 일 아닐까?
그럼 너는 미국인에 가까운 것 같아 아님 한국인에 더 가까운 것 같아?
나이가 점점 더 들면서 한국인이라는 본래의 정체성이 더 두터워진 것 같아. 사춘기 때는 물론 거부했었지. 한국 음식도 안 좋아했고, 집에 와선 한국어도 많이 쓰지 않고 미국 문화를 따랐으니까. 그때는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어. 그렇게 다른 문화권 친구들과만 계속 어울렸다면 지금의 나는 많이 달라졌겠지. 그러다가 미국의 한국 회사에 들어가면서 한국어를 많이 듣고 써야 하는 상황들이 생겼고, 심지어 너를 만나게 되면서 우리가 얼마나 많은 한국 드라마를 같이 봤니... ㅋㅋㅋ

그렇게 한국 문화를 접하게 되니 한국어를 쓰는 것도 편해지고, 어색하게만 느껴졌던 한국 문화를 좀 더 성숙한 시선으로 더 잘 이해하게 된 것 같아. 아무래도 나는 한국인으로서의 기반이 어느 정도 갖춰져 있었기 때문에, 본래의 정체성으로 돌아오는 게 좀 쉬웠던 거겠지.
우리의 인터뷰는 그렇게 끝이 났다. 남편은 물론 저 모든 인터뷰의 대답을 한국어로 하지 않았다. 번역하느라 죽는 줄.ㅋㅋㅋ
그래도 내편 남편, 고마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