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가 없어서 망할 뻔한 미국 회사 면접

나에게 단점과 취미를 묻지 마세요!

by Fresh off the Bae
자신의 단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면접에서 이런 걸 물어봐주다니. 고마워해야 하는 거 아닌가?


업무 처리하는 데 있어서 어떤 부분을 잘하고, 어떤 부분이 취약하다는 점은 초짜도 아닌 경력 직장인이 기본적으로 파악하고 있어야 했다.


한국에서 취업준비를 할 당시, 자신의 단점에 대한 질문이 나오면, 내가 이러이러한 부분은 부족하지만, 또 어떠어떠한 노력을 했고, 잘 극복하고 있다는 스토리를 들려주면 좋다고 해서 미리 짜 놓기도 했던 질문이었다.


놀랍게도 난, 대답을 하지 못했다. 이건 영어 인터뷰였기 때문에 답변을 못한 것도 아니다. 아무런 준비도, 생각도 없이 문을 두드렸기 때문이었다.


망했다... 나를 인터뷰한 이 친구는 내가 단점도 모르는 X가지 없는 인간이라고 생각하겠네...




이번엔 한국인 상사와의 인터뷰였다. 계속 한국어로 인터뷰를 하다, 영어 실력을 가늠하기 위해 몇 가지 질문을 영어로 하겠다고 하셨다. 정말 고맙게도 너무나 쉬운 질문이었다.


취미는 뭐예요?


거짓말이라도 해서 답을 쥐어짜 내야 했다.


문제는 내가 취미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할 말이 없었다.


나는 한국에 살 때도 그다지 취미 부자는 아니었다. 그저 집에 누워서 TV를 보거나, 가끔 친구들을 만나서 맛있는 것을 먹고 수다를 떨고, 그저 그렇게 살아가던 사람이었다. 미국에 온 뒤로는 게으른 본성에 더해 생존모드가 내 일상을 지배했다.


영어 공부를 나름 하긴 했지만 혼자서 대충 끄적거리는 정도였고, 이 직장에 들어오기 전에는 약간의 우울증으로 기나긴 터널 지나는 중이어서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내기에도 벅찼다.


그런데 취미라니?


입 밖으로 아무 말이 튀어나오지 않자 머리가 그냥 하얗게 변해버렸다. 더군다나 한국어로는 이것저것 얘기하다가 하필이면 영어로 물어본 질문에 아무 말을 하지 못하니, 내가 얼마나 영어를 못한다고 생각하셨을까?


물론, 내 영어 실력은 형편없었지만 그렇다고 이 쉬운 질문에 아무 말도 못 하는 정도는 아니었다. 심지어 이 분은, 팀에서 가장 높은 포지션이었는데, 여러 차례 진행된 앞선 인터뷰에서 모든 동료들이 나를 마음에 들어 했다며, 큰 이변이 없는 이상 그대로 합격이라는 뉘앙스까지 이미 풍겼던 상황이었다.


그런데... 취미 때문에 망하다니... 미친 거 아냐???


얼마나 후회를 하고 머리채를 쥐어뜯으며 취미 하나 없는 게으른 나를 탓했는지 모른다.




당시 인터뷰는 코로나가 막바지에 접어들던 중이어서 Zoom으로 진행되었다. 나는 당시 작은 한인회사에서 근무하던 중이었는데, 같이 일하던 동료들이 출장을 가는 바람에 내가 자리를 비우면 아예 오피스 문을 닫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어쩔 수 없이 휴가도 쓰지 못하고, 언제 상사가 오피스에 들어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다른 회사 면접을 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점심시간에 나름 안전하다고 생각한 내 차 안으로 들어갔고, Zoom은 뒷배경을 버추얼로 바꾸는 기능이 있다는 것도 모른 채 카메라를 켰다.


어머, 너 지금 차 안이야?


모든 나의 인터뷰 첫마디는 이 말로 시작했다.


여러모로 부족하기만 했던 나의 첫 미국인들과의 면접. 하지만 기적적으로, 나는 회사에 입사하게 됐다.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은 훌륭하지 못했다. 하지만, 나의 10년 경력이 그 포지션에서 요구하는 qualification에 일단 충족되었고, 영어로 훌륭한 미사여구를 구사하지는 못하지만 동료들에게 같이 일하고 싶은 사람이라는 인상을 주었던 것 같다. 그리고 운이 좋았다는 말 밖에는 도저히 설명을 할 수가 없었다.


입사를 한 뒤, 내가 영어를 정말 못한다고 생각했던 한국인 보스는,


어머, 영어 잘하네? 나는 영어를 아예 못하는 줄 알고, 적응을 잘할 수 있으려나 걱정을 많이 했어.


ㅋㅋㅋ


그나마 오해를 좀 풀 수 있게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커버 이미지: Photo by Dylan Ferreira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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