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한국행을 밀어붙인 사람은 다름 아닌 내 보스였다
그 이후 6개월 동안 나는 두 줄을 보지 못했다.
내 나이는 이미 40세가 넘었고, 불안함은 커져가기만 했다.
내 주치의는 한국인 여자 선생님이신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내가 유산을 했고, 임신을 위해 노력 중이라고 했다. 그러자 본인도 시험관으로 임신을 한 케이스라며 지금 당장이라도 시험관을 하라고 했다.
사실, 아이 하나만 있으면 되는 거잖아요. 그렇죠?
시간은 정해져 있고, 할 수 있을 때 해야 해요.
나중에 돈 많아지면 뭐해요. 할 수 없는데...
'누가 그걸 모르나... 저 선생님은 돈이 많겠지...'
한국이었다면 시험관을 이미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미국은 시험관이 보험으로 커버가 잘 되지 않아서, 한국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비싸다. 그렇다고 얼마나 오래 걸릴지도 모르는 과정을 위해 한국에 가자니 몇 개월의 휴가를 회사가 승인해 줄지도 모르는 일이고, 그렇다고 그만둘 수는 더더욱 없었다.
어느 날은 마음먹고 미국의 한 난임 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한 번 사이클에 $25,000 정도예요. 만약 세 번의 사이클을 한 번에 결제하면 $50,000에 해드리고 있어요.
오 마이갓. 이것이 현실인가...
잘못했다간 세 번을 시도하고 5만 불을 날린 채 아무것도 남지 않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5만 불을 건 도박이라... 도저히 시도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결국 고민만 늘어간 채 아쉬운 시간만 흐르고 있었다.
다른 방법은 어떤 수를 써서든지 한국으로 가서 시험관을 하는 것이었다.
지금 가!
왜 연말까지 기다려? 지금 당장 알아봐.
나를 한국으로 가서 시험관을 하도록 푸시한 건 다름 아닌 내 보스였다. 점심을 먹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도중 올 연말까지 노력을 해보고 안되면 한국으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는 내 말에 보스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너무 놀랐다. 우리 팀은 내가 처음 조인했을 때 5명이 넘는 팀원이 있었지만, 이 대화를 할 당시에는 3명으로 줄어든 상태였다. 하지만 회사에서는 구조조정을 이유로 인력을 늘려주지 않았다.
내가 가면 안 그래도 부족한 인원에 어찌할 생각이냐고 했지만, 가족이 일보다 항상 먼저라며 자기들은 걱정하지 말고 가라는 거다. 그 이후부터 그녀는 나를 푸시하기 시작했다. 언제 갈 거냐고...
내 보스가 한국에 가서 지금 당장 시험관 하래.
나와 내 남편은 하늘에서 구세주를 만난 것 같았다. 이렇게까지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보스라니...
일단 장기 병가를 쓰는 방법을 알아보기 위해, Doctor's Note를 써 줄 수 있는 의사를 찾아야 했다. 나는 한국 가서 시험관 하라고 떠밀던 한국인 주치의가 당장에 떠올랐다.
아... 저는 그런 걸로 Doctor's Note를 써주지 않아요. 어떠한 질병이나 사고로 다쳐서 일을 하지 못하게 됐을 경우, 써주는 경우는 있지만, 지금 스트레스로 일을 못하실 정도는 아니시잖아요?
물론 그렇긴 하다. 내가 너무한 걸 요구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이게 좀 애매한 영역이긴 하다고 생각했다. 유산을 했고, 스트레스는 정말 많이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 유일한 동아줄이 떨어져 나가는 느낌이었다.
예전에 다니다 분만을 하지 않으신다는 말에 한동안 가지 않았던 산부인과에 다시 들렀다.
상황을 설명하자, 그 의사는 난임은 병가의 원인이 되지 않는다고 딱 잘라 말했다. 만약 한국에 머물다 시험관으로 임신이 됐다면 임신으로 병가를 신청할 수 있지 않겠냐는 질문에도, 고위험 임신이라던지 아주 뚜렷한 이유가 있지 않는 한, 출산 전 4주부터만 가능하다고 했다.
결국 첫 번째 나의 옵션은 수포로 돌아갔다.
그냥 가. 우리가 알아서 할게.
언제 갈 거냐고 푸시하던 내 보스는 상황을 설명하자 이렇게 말했다. 우리 팀은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출근하고 나머지는 재택인 하이브리드로 근무하고 있었다. 즉, 내가 한동안 보이지 않더라도 눈치채지 못할 것이라는 말이었다. 심지어 나는 다른 부서에 친한 동료도 별로 없고, 회사에서도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한 편이다.
보스의 계획은 한 달을 한국에서 재택근무로 일을 하고, 내 개인 휴가를 다 써서 두 달의 시간을 벌어보자는 것. 그 사이 한 번 시도를 해보고 나머지는 또 그때 가서 다른 방법을 생각해 보자고 했다.
오 신이시어. 나에게 어찌 이런 행운을!!!
나는 그때부터 한국의 난임 센터에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커버 이미지: Photo by Alexander Grey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