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산 중인데... 저 좀 봐줄 병원 없나요?

혼자 겪은 두 번째 유산 이야기

by Fresh off the Bae

남편과 나, 우리 시누는 한국에 살고 계신 시어머니의 생신을 맞아 모처럼 다 함께 한국을 방문하기로 했다. 비행기표까지 다 끊어놓고 계획을 세우던 중 내가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저 이번에 한국에 못 갈 거 같아요.
임신했거든요!!!!!!

화학적 유산을 겪고는 극초기 임신 상태에서는 알리지 않겠다고 다짐했었지만, 이번엔 어쩔 수 없이 가족들에게 알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결국 남편과 시누만 예정대로 비행기에 올랐고, 나는 2주간 혼자 미국에 남게 됐다.


그래도 나는 내내 싱글벙글했다. 임신했다는 생각에 하루 종일 웃음이 났다.


그러던 어느 날.


회사에서 화장실에 갔는데 희미한 피가 보였다.


화유를 겪었던 나는 또다시 머리가 하얘졌다. 그리고는 한국 아침 시간이 되자마자 남편에게 카톡을 했다.


나... 또 피가 나...

한국이었다면 당장에 어느 산부인과라도 달려갔겠지만, 미국은 달랐다. 겨우 겨우 잡았던 산부인과 첫 진료는 다음 주. 급한 마음에 다음 주로 예약된 산부인과에 전화를 걸었다.


죄송하지만, 오늘은 예약이 꽉 차서 의사를 볼 수가 없어요. 응급 상황이시면 응급실에 가는 걸 추천드립니다.


아니... 누가 모르냐고...


응급실에 가는 것도 방법이겠지만, 남편 없이 혼자 7시간, 8시간을 기다려야 할 수도 있는데, 그건 자신이 없었다. 일단은 집으로 가서 최대한 안정을 취하려고 했다.


다음 날.


타들어가는 나의 마음을 모르는 피는 멈추지 않았다. 컨디션도 좋지 않았다. 그날은 토요일이었고, 심지어 월요일은 공휴일이라 이 상태로 3일을 혼자 불안에 떨며 지낼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토요일은 대부분의 산부인과가 문을 닫지만, 일부 문을 여는 한인 산부인과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모조리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다.


상황은 안타깝지만, 저희가 새로운 환자를 받지 않아요.
지금 환자가 너무 많아서 힘들겠어요.


저희는 분만을 하지 않습니다.


나는 상대 쪽에서 전화를 받기만 하면, 지금 임신 6주 차고, 피가 나오고 있는데 혹시 오늘 봐주실 수 없겠냐며 당장에라도 울 것 같은 목소리로 요청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모조리 '안된다'였다.


그러다 전화를 받은 한 산부인과.


아이고... 상황이 안 됐네요. 그럼 넣어줄게요. 일단 오세요.

당장에 이불을 박차고 무거운 몸을 겨우 겨우 이끌어 차를 한인타운으로 몰았다.


토요일에 문을 여는 산부인과가 별로 없어서 그랬는지, 병원은 환자들로 꽉 차 있었다. 한 시간여를 기다려 겨우 만난 의사는 초음파를 보자고 했다.


엇??? 여기 뭐가 있네요??


나는 분명 임신 6주 차고, 피가 나서 병원을 왔다고 설명을 했지만 의사는 내 말을 듣지도 않은 건지, 아기집이 보인다며 깜짝 놀랐다.


'하아... 아니, 6주니까 아기집이 보였겠지... '뭐가 보인다'는 도대체 뭐야?? 이 사람 뭐지???'


그러면서 한다는 소리가, 놀랍게도 "임신인 거 알았어요?"였다.


내가 이 병원을 한국어를 사용할 수 있음에도 처음부터 제외시킨 이유였는지도.


나는 재차 내가 여기 왜 왔는지 설명했다. 의사는 아기집이 보이지만 6주 차 치고는 사이즈가 작다고 했다. 일단 지켜보고 다음 주에 다시 모니터를 하면서 완전히 유산되는지 볼 것이고, 만약 유산일 경우 깨끗하게 나오지 않는다면 수술을 해야 할 수도 있다고 했다.


굳이 수술까지 얘기하는 의사가 그저 못마땅했고, 하혈 문제 때문에 간 병원에서 유방 촉진 검진까지 하겠다며 굳이 이것저것 확인하는 것도 썩 유쾌하지 않았다. 그렇게 불쾌한 기분을 가득 안고 병원을 나왔지만, 어쨌든 아기집을 내 눈으로 본 이상 마음을 강하게 먹을 수밖에 없었다.


혼자라서 대충 때우던 밥도 한식으로 제대로 골라 포장해서 집으로 내려갔다.


'그래, 아직은 아기집이 있으니까, 아직은 몰라.'


그날 밤. 아주 큰 덩어리의 피가 흘러나왔다.


그때 직감했다.


'이번에도 이렇게 끝났구나...'


그렇게 주말과 연휴를 폐인처럼 보낸 후 그 주에 예약되어 있던 산부인과로 갔다. 병원에 가서 모든 상황을 설명했고 초음파를 보던 중국인 여의사는 물었다.


지난주 초음파를 봤을 때 아기집이 있었다고요?
지금은 없네요.
유산되었습니다.


분명 초음파에서 본 아기집이 아직도 내 눈에 선한데,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깨끗한 초음파 화면에는 분명 아무것도 없었다. 유산이라는 걸 직감하고 있었지만, 가느다랗게 붙잡고 있던 내 희망이 완전히 무너지는 느낌에 처음 보는 의사 앞에서 나는 엉엉 울어버렸다.


의사는 간호사를 내보낸 뒤, 휴지를 건네주며 내가 진정될 때까지 기다려줬다.


초기에 이렇게 유산되는 경우는 유전자 문제일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나이가 많은 산모의 경우, 저희는 바로 시험관을 하실 것을 권합니다.
좋은 난자와 정자를 골라 수정시키기 때문에 유산될 가능성이 그만큼 더 낮아지는 거죠.


나는 초기에 피가 나기 시작할 때 혹시 바로 응급실을 갔거나 의사를 만났으면 아기를 지킬 수 있었겠냐고 물었지만, 의사는 단호하게 그 상황에서 자기를 만났다고 하더라도 본인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결국은 일어날 일이었다는 것.


나는 무거운 몸을 이끌고 아무도 없는 집으로 돌아왔다.


한국에서 아무것도 못하고 발만 동동 굴리며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을 남편에게도 이 소식을 전했다.


괜찮아. 나는 지금 네가 더 걱정돼.
같이 있어주지 못해 미안해.


남편 앞에서 또 한 번 펑펑 울고 나니 마음이 한결 괜찮아졌다.


한국에서 남편이 보내온 꽃


우리는 아기 태명을 '모찌'라고 지었었다. 찹쌀떡같이 딱! 붙어 있으라고.


모찌야.


우리 다시 만나자.


*커버 이미지: Photo by Huha Inc.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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