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한국에 머무를 '기간'
내 친정은 부산이다. 그래서 내 선택은 부산의 난임센터 중 한 곳.
다섯 곳 정도를 추려 문의해서 금액부터 기간 등 대략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물론, 여러 인터넷 카페나 블로그 등을 통해 리뷰를 수도 없이 읽었고, 읽으면 읽을수록 결정을 내리기가 어려웠다. 결국 어느 순간 그냥 한 곳으로 마음을 먹어버렸다.
가장 걱정되었던 부분이 기간.
나는 한국에 오래 머무를 수가 없다. 가능한 짧은 시간 안에 여러 차수의 시험관을 하는 것이 목표였다. 하지만, 병원에서도 딱 부러지게 말할 수가 없었던 것이 한 번 실패하고 나면, 사람마다 얼마나 쉬다가 다음 차수를 시작해야 하는지, 혹은 난자 채취를 다시 해야 하는지, 아니면 이식만 바로 할 수 있는지 다 다르기 때문이었다.
결국 기간에 대한 명확한 계획을 세우지는 못했다. 다만 시간 단축을 위해 남편은 미국에서 정자 검사를 받고, 나는 나팔관 조영술을 받은 뒤, 결과지만 들고 한국으로 가기로 했다.
한국에 가기 한 달 전 난임센터에 예약을 위해 전화했더니, 하는 말.
그냥 오시면 됩니다. 원장님 휴무날만 피하시면 됩니다.
와... 정말 놀랐다. 예약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그랬지... 한국은 예약이 없이도 병원에 갈 수 있지...'
유산을 했을 때 아무도 나를 봐주지 않았던 그 시간을 떠올렸다. 한국에서 응급상황이 생기더라도 최소한 어떤 조치는 받을 수 있겠구나 싶었다. 실제로 나중에 그런 상황이 생겼고, 극도의 불안 속에서도 어딘가 안심이 되는 구석이 있었다.
일단 내가 한국으로 먼저 가서 시술을 시작했고, 2주 간의 휴가 밖에 낼 수 없었던 남편은 정자 검사 결과지만 나에게 넘긴 뒤, 난자 채취하는 날이 대충 잡히자, 그 며칠 전 쯤해서 한국으로 들어왔다.
한국에 들어온 뒤 가장 신경 쓴 건,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는 것이었다. 내 상황 자체가 여유를 부릴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기에, 첫 번째나 두 번째 시도 안에 성공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하지만, 첫 시도에 바로 성공하는 건 로또라고들 해서, 첫 시험관을 대하는 마음이 그렇게 부담스럽지는 않았다. 어차피 두 번째 기회가 또 있으니까.
친정에 온 뒤로는 부모님이 차려주시는 건강한 밥을 먹고, 강아지와 놀고, 오후에는 걷거나 가벼운 등산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쉽지 않은 선택이었고 주어진 시간이 짧다는 사실 자체가 부담되어야 했지만, 희한하게도 스트레스는 거의 느끼지 못했다. 무엇보다 그런 환경을 만들어주신 부모님께 감사하다. 오랜만에 만나 모처럼만에 다시 함께 살게 된 40대 딸내미를 지극정성으로 챙겨주셨으니 말이다.
단 한 가지, 나의 베프인 남편이 옆에 없다는 것이 좀 허전하긴 했다. 대신 밤낮으로 영상 통화를 하며 모처럼만에 결혼 전 데이트하던 시절을 떠올렸다.
그렇게 나는 내 인생 첫 시험관 시술을 시작하게 됐다.
*커버 이미지: Photo by Alexandar Todov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