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체류자의 밥벌이
쿠바에 있으면서 살사를 배우고 나머지 시간은 밥 해 먹기 위해 식재료를 사고 요리하는 일이 전부였다. 사람 몇 달 논다고 어떻게 되지 않는다 라고 생각해왔던 나였지만, 아무래도 해외에서 장기체류를 하다 보니 통장 잔고는 줄어들고 이제 얼마 후면 한국에 가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지냈었다. 그러던 중에 카메라도 있겠다 예전부터 하고 싶었지만 남의 돈을 받고 사진 찍는 일을 시작해도 될까 싶어서 시작하지 못했던 스냅사진 찍는 일을 시작해보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나 쿠바는 진입장벽이 높지 않았다. 장비 다 갖추고 하는 프로페셔널 사진작가는 1명이었고 그리고 심플한 카메라로 하는 작가 1명뿐이었다. 게다가 1인당 200-300불씩 받고 있어서 한 달에 3팀만 해도 먹고 살 정도? 난 저 금액이 너무 비싸다고 생각했던 사람인지라 고민이긴 했는데 우선 샘플 사진이 필요했을 때였다. 남의 돈을 받고 사진을 찍으려면 사진에 대한 책임감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돈만 보고 돈 벌기 쉽네?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마냥 생각만 하고 있었던 어느 날, 과일 칵테일 팔던 집 앞에서 옴뇸뇸하고 있는데 누군가 말을 걸었다.
- 안녕~~ 너 중국인이야?
- 아니 나 한국인이야 ㅎㅎ
- 아! 그렇구나. 나 혼자 있는데 같이 돌아다녀도 될까?
- 그래! 그러자!
이렇게 영어를 잘하던 중국인이지만 미국에 사는 그녀와 동행하게 되었다. 친구와 여행 왔지만 친구는 먼저 떠났고 자기는 내일 떠난다고. 갑자기 혼자가 되어 심심했나 보다. 그래서 내가 잘 아는 곳을 알려주고 갑자기 가이드처럼 여기저기를 소개해주며 같이 돌아다녔다. 그녀는 굉장히 패셔너블하게 옷을 입었는데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하고는 모델 포즈를 취해줬다. 사진 찍는 사람에게 사진을 더 잘 찍고 싶게 만드는 사람이었달까?
사진사는 장비를 탓하지 않는다고, 아이폰으로 찍어도 사진 잘 나오는 사람은 잘 나온다. 그리고 쿠바에서는 진짜 똥 손 아니고서는 사진이 잘 안 나올 수가 없다. 널리고 널린 것이 올드 카이며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건물들도 즐비하고 골목골목 어디서 찍어도 예쁘다. 그녀를 만나고 하루의 시간을 같이 보내며 이제 사진을 취미가 아니라 일로 시작해봐야겠다는 결심이 굳어졌다.
샘플 사진이 필요했다. 방에 싱글 침대 하나가 남아 방을 쉐어할 사람을 구했고 신기하게도 연달아 두 명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사진을 찍어주면서 샘플 사진으로 사용해도 되는지 물어보고 작업을 시작했다. 거의 매일 함께 집에 있으면서 같이 밥을 먹고 수다도 떨고 그랬다. 그녀들과의 작업은 물론 대화도 즐거웠다. 특히 별 것 아닌 레디쉬 김치로 담근 깍두기 국물까지 퍼먹으며 한국 설렁탕집에서 먹는 김치 같다고 극찬해줬던 친구, 그녀가 떠나던 날 자전거 택시를 타고 보내는데 밝게 웃어주며 손을 흔들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다음에 온 친구는 나로 하여금 사진 찍는 즐거움을 느끼게 해 줬다. 좋아! 좋아! 좋아! 이 말만 했던 것 같다. 그녀는 셔터만 눌러대면 될 정도로 몸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알았고 어떻게 해야 예쁘게 나오는지도 알고 있어서 디렉션 따위 필요하지 않았다. 포즈, 표정 모든 것이 완벽했다.
페르소나 Persona는 영어로는 Person, 스페인어로 사람이라는 뜻이다. 본래 연극배우가 쓰는 탈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내가 처음 페르소나라는 말을 들었던 것은 어떤 배우를 지칭하며 들은 김 00 감독의 페르소나였다. 감독의 의도를 잘 표현해내 매 작품마다 캐스팅되는 배우를 그렇게 부르기도 한다. 그녀가 바로 나의 페르소나였다.
처음 만난 날 올드 아바나를 같이 돌아다니고 그리고 나서 다음 날 우리 집에 왔던 그녀. 하루 지나고 나서 이틀에 걸쳐서 사진을 찍는데 촬영 두 번째 날이었다. 쿠바 어느 골목 끄트머리로 누르스름한 햇살이 내려갈 때 그 햇살을 따라 뛰어갔다.
“자기야! 얼른 뛰어!!”
사진 촬영할 때 호칭을 자기라고 했었는데 그 햇살이 사라질까 봐 부리나케 외쳤다. 그렇게 해서 가장 마음에 드는 사진을 얻었다.
“나 잘 되면 다 자기 덕분이야!!”
그 사진은 결국 얼마 되지 않아 첫 고객 예약까지 이어질 수 있게 만들어줬다. 신행 부부 촬영이었는데 꼭 그 노을빛 배경의 사진을 찍고 싶다고 하셨고 내 첫 고객은 내 페스로나 덕분에 나에게 찾아왔다. 문제는 예약을 받고 나서 그 고객이 당시 친하게 지냈던 스냅 작가의 고객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쪽을 취소하고 나한테 예약을 하게 된 것이다. 지극히 난감한 상황. 미안한 상황이었지만 이미 예약 가능하다고 해서 받은 후라 거참. 그전에 알고 있었더라면 그날 촬영이 어렵다고 미리 말했을 텐데 이미 예약을 받아버린 상황이라 어찌할 수가 없었다. 첫 예약이라고 엄청 좋아했는데 그 기쁨이 1분이 채 가질 못했다. 진짜 찬물 얻어맞은 기분. 죄스러운 마음으로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이것뿐이었다.
“어떡하지 상황이 이렇게 되어서 마음이 좀 그렇네…”
스냅 금액에 대해서도 그 친구에게 의견을 구한 적이 있었다. 현재 시장가가 너무 비싸다고 생각했기에 내가 너무 덤핑을 하면 물을 흐리는 꼴이 되지 않겠냐며 조심스럽게 의견을 물었는데 돌아온 대답은 본인 마음대로 하면 되는 것 아니겠냐 였다. 그래도 너무 나 혼자 싸게 받으면 좀 그래서 물었다니 뭐 어떠냐며 마음대로 하시라가 끝.
그렇게 해서 장기 체류자의 밥벌이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