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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신영 Jan 10. 2024

밤선생

짧고 굵게 암을 앓던 친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친할아버지와 삼촌이 갑자기 우리와 함께 살게 되자
엄마는 할아버지가 사시던 오래된 아파트를 정리하고
우리가 살던 집을 수리해서 모시기로 했다

대충 니스칠된 나무 다락문을 뜯고
나무합판 바닥에 밝은 장판을 깔아 광으로 활용했는데
방학 때 가끔 사촌들이 놀러 오면
다락에 나란히 같이 재우기도 했고

부엌에 있던 연탄아궁이를 1층 광으로 옮기고
아궁이 있던 자리로 부엌을 밀어 생긴 자리에
미닫이 유리문을 달아 문간방을 만들었다

내 책상 한 개가 딱 들어가고
내 몸 하나가 딱 눕혔지만
왼쪽, 오른쪽 뒤척거릴 때 아무 불편 없는
나의 공간이었다

잠잘 땐 꼭 미닫이 문을 한 뼘 정도 열어두었는데
그 사이로 들어오는 바람이 참 좋았다

그때부터 난
듣지 못했던 일상의 소리를 알게 되었다

할아버지와 삼촌이 가끔은 투닥거리는 소리,
술에 취해 계단을 올라오시는 아빠의 거친 숨소리,
새벽밥을 지으러 나오는 엄마의 소리,
쌀이 플라스틱 바가지에 소나기처럼 떨어지는 소리,

요즘도 잠잘 땐 꼭 한 뼘 정도 창을 열어둔다
새벽에 깨어도 적막하지 않고
날씨가 느껴져 좋다

새벽 한 밤중마다
낮잠 자다 일어난 사람처럼
번쩍 깬다

또 밤선생이 왔네

번쩍 깨보니
한창 사춘기시절
문간방에 누워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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