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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신영 Dec 21. 2023

초등 6학년 짜리의 복수

아주 몇 해 전의 일이다.

주말 점심에 아이들과 같이 집 근처 갈빗집에 갔는데 두 칸 옆 테이블에 어디서 낯이 익은 60대 중반쯤의 남자분이 친구로 보이는 분과 식사 중이셨다.
왜 낯이 익을까? 분명 어디서 봤는데... 하다가 생각해 보니 6학년 때 담임선생님이신 거다.

말씀 중 어느 때 끼어들어 인사를 드려야 하나,
날 보시면 엄청 반가워하실 거야, 생각을 하고는 마침 이야기가 끊긴 틈을 타,
혹시, 이 OO선생님 맞으시지요? 하고 여쭤봤더니 아, 예 맞는데 누구세요?라고 하셨다.
아.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 온수초 6학년 3반 김신영입니다.라고 했더니,
음.. 신영이가 누구더라.. 아.. 잘 기억이 안 나네.
 
아. 순간 바람을 잔뜩 넣고 묶지 않은 풍선이 제멋대로 허공에서 튀어대다
툭 떨어지는 것처럼 그런 맥 빠지는 기분이란.
아이들을 앞세우고 인사를 드리러 갔던 모습이 너무 초라하기까지 했다.

어떻게 나를 모르실수 있지?
6학년 내내 부반장에, 전교부회장까지 하고, 졸업 전에는 학급문집을 낸다고 겨울방학 내내 학교에 살다시피 했는데..

나중에 나이 들어 안 사실이지만
전교부회장이 되고 나니 담임이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교장교감에게 100만 원 정도 인사하시라 하셨단다.

학교에 돈봉투만 달랑 가져가기 면구스러워
삼척에서 오징어배를 하시던 고모부께 부탁드려 잘 마른오징어 세 축을 준비하시고
외할머니께 100만 원을 급히 융통받아
촌지를 드렸댔는데.
없는 살림이더라도 딸 기 죽이지는 말아야지 생각하고 학교에 인사를 드리고 오시는 날,
엄마는 돈 갚을 생각에 계단에서 헛디뎌
오른쪽 정강이가 움푹 패진 상처까지 있는데,
어떻게 나를 기억하지 못할 수 있지.
무어라 기억을 되살릴만한 질문들을 몇 마디 더 여쭙다가 그럼 말씀을 나누시라 하고 내가 먹은 점심값만 치르고 나와버렸다.

그 일이 있고 난 얼마 후 엄마와 이것저것 얘기를 하다가 6학년 담임을 집 앞 식당에서 뵌 말씀을 드렸더니 그래도 은사님을 뵈었는데 어찌 그리 덕없이 행동을 했느냐 핀잔을 들었다.

엄마가 드린 촌지 100만 원과
오징어 세 축값을 늦게 치른 것이라고 하고 싶었으나 말하지 않았다.

어쩌면 선생님이 식사를 마치신 후
계산대 앞에 섰을 때
먼저 가신 여자손님이 점심값을 치렀다고 했으면 선생님 면도 섰을 텐데,
난 그렇게 선생님의 면을 세우지 않는 것이 촌지를 요구했던 선생님께 복수를 하는 거라 생각했었다.
오늘 갑자기 그때 일이 생각나서 써본다.

아마도 난
초등학교 6학년 짜리의 마음으로 복수를 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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