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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장군산을 오른다

20년 걸린 홈컴잉(Homecoming)

2000년 가을 은행잎이 가득 떨어진 대구가톨릭대학교 하양캠퍼스에서 동기신학생들과 사진을 찍었다. 무엇이 그리 좋은지 다들 웃고 있는데, 갓 스물이 된 사진 속 동기들 마음에는 무슨 생각이 들어있었을까.



지난 금요일 군위성당을 떠나 대구가톨릭대학교 하양캠퍼스 사제관으로 이사왔다. 한때 신학생으로 살았던 하양 신학관에서 불과 20미터 떨어진 사제관으로 오는데 20년 시간이 걸렸다. 


다시 신학교 뒤편으로 걸어서 장군산을 올랐다. 산은 산으로 변함없이 그 자리에 서 있는데 가는 길에 큰 도로가 생겨 산허리가 잘려 나갔다. 세월이 무상하다. 




해가 쏟아져 들어오는 창이 큰 방에 앉아있다. 더 이상 혼자가 아니다. 함께 사는 사제가 18명이나 된다. 형제들과 함께 사는 즐거움은 식탁에서 산책길과 탁구장, 함께 기도하는 경당으로 이어진다. 삼시세끼를 다 얻어 먹을 수 있는 감사함과 더불어 형제에게 찾아가 얻어 먹는 커피맛은 더 좋다.


사는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일까. 간소한 살림으로 이웃과 소소하고 즐겁게 나눌 수 있다면 충분하다. 이제는 무엇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더불어 존재함으로써 기쁘기를 바래본다. 무엇이 필요할까 생각하기보다 무엇이 필요 없는지, 무엇을 위해 위해 살 것인지 생각하며 살고 싶다. 그렇게, 가장 중요한 하나만을 바라보며 그것을 놓치고 싶지 않다. 


프란치스코 칼리지(Francisco College). 내가 가게 될 대구가톨릭대학교 자율전공 단과대학이다. 자신에게 맞는 전공을 찾아 대학 1년을 보내면서 교양과 세상을 보는 안목을 키우는 젊은이들이 자신이 꿈꾸던 2학년생이 되도록 준비하는 곳이다. '가톨릭 사상'을 가르치면서 자율전공 학생들과 함께 걷고 그들 내면의 소리를 듣고 그들 인생의 동반자가 되는 것이 나의 미션이다. 4차 산업혁명을 이끌 위대한 별종과 공존하는 기술에 대해 쓴 <요즘것들>을 다시 읽고 있다. 


몸과 마음 모두 스무살이 될 수 있을까. 그때 그 시절 동기 신학생들의 마음이 될 수 있을까. 그럴 수 없겠지. 그렇게 되기를 바라지도 않지만 한가지 바라는 것이 있다면 스무살 인생에게 하나의 다리가 되고 싶다. 험한 세상에 다리처럼(like a bridge over troubled water), 그들이 나를 거쳐 더 나은 자신을 발견하고 더 큰 세상으로 건너갈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이십년만에 다시 장군산을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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