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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신부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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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길

오늘 봄처럼 길을 떠나는 사제를 그리며

갑자기 너무 따듯해 당황스런 날이다. 봄은 이렇게 준비도 없이 왔다. 그리고 바람은 그 봄을 시샘하는듯 마구 불어댄다. 그동안 움츠렸던 몸과 마음을 펴고 식사 후 오랫동안 사제관 앞을 걸었다. 봄 날씨를 무슨 상으로라도 받은 듯 모두의 얼굴이 화창하다.


그런데, 갑자기 동료 사제의 부고 소식이 날아들었다. 올해 십년차 젊은 사제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아침에는 봄날이 너무 좋았지만 오후에는 봄날이 너무 싫다. 오늘 날이 너무 좋아 동료 사제는 밖으로 나섰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봄바람은 나무가 아니라 내 마음을 심하게 흔든다.


모든 것이 살아나 너무나 화창한 봄날에 세상을 떠난 론지노 신부님! 

부디 하늘나라에서 홍매화처럼 환하게 피어 남아있는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봄길> 정호승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봄길이 되어

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강물은 흐르다가 멈추고

새들은 날아가 돌아오지 않고

하늘과 땅 사이의 모든 꽃잎은 흩어져도

보라

사랑이 끝난 곳에서도

사랑으로 남아 있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사랑이 되어

한없이 봄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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