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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대통령!

그리스도왕 대축일

내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주요 정당의 대선 후보가 결정되었습니다. 연일 언론을 통해 비춰지는 이들 개개인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우리 나라에 인재가 그렇게 없나?’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각 개인의 자질과 능력, 인격이 부족함을 느낍니다.  


그렇게 된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우리나라 정치 풍토가 상대 후보를 비난하고 깍아내리기에 집중하며, 언론 또한 그 역할에 충실히 동조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인격과 도덕성이 결여된 후보, 본인 뿐만 아니라 가족의 법적 문제가 있는 후보, 말만 하고 실천하지 못하는 후보를 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부족한 사람 가운데 우리나라를 위해 올바른 정책과 비전을 제시하는 후보를 찾아 투표해야 합니다. 네거티브 전략에 말려들어 정치나 정치인 혐오에 빠져서는 우리 삶이 나아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왜 사람들에게 정치가, 대통령을 뽑는 일이 그렇게 중요할까 생각해 봅니다. 대통령은 권력의 최고봉으로 세상에서 가장 많은 관심과 부러움을 얻는 자리입니다. 물론 그만큼 큰 십자가가 주어지지만 그래도 많은 사람들에게 대통령은 가장 높은 자리입니다. 아무튼, 대통령이죠! 빌라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튼 당신이 임금이라는 말 아니오?”(요한 18,37)  


빌라도는 예수에게 어떻게든 정치적 타이틀을 씌워 사람들이 원하는 모습을 만들고 싶었던 것입니다. 현대판 대통령으로 만들고 싶었던 것입니다.  


과연 예수님은 세상의 임금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 요한묵시록은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성실한 증인이시고 죽은 이들의 맏이이시며 세상 임금들의 지배자이십니다”(묵시 1,5) 


세상 임금들의 지배자이신 예수님께서는 세상의 임금 자리에는 관심조차 없으십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임금으로 삼으려 온갖 수작을 부려도 그분은 ‘당신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십니다. 오히려 더 중요한 것은 다른 데 있다고 선언하십니다. 


“나는 진리를 증언하려고 태어났으며, 진리를 증언하려고 세상에 왔다”(요한 18,37). 


예수님에게 중요한 것은 진리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물어봐야 합니다. 진리란 무엇입니까? 진리란 변할 수 없는 확실한 깨달음입니다. 


코로나 사태로 우리가 깨달은 확실한 것이 있지 않습니까? 그동안 인간이 스스로 전능하다는 망상으로 살아온 것이 잘못이며, 인간은 혼자서는 아무도 자신을 구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코로나 사태로 실시된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한 인간관계의 단절은 정서적 관계 역시 생물학적 욕구만큼이나 중요함을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무엇보다 병과 외로움으로 죽어가는 사랑하는 사람조차 가까이에서 떠나 보낼 수 없는 절망감은 코로나가 우리에게 안긴 가장 큰 저주일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코로나 바이러스 앞에서 무력해 병들고 죽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 삶의 방식으로 인해 이 일에 책임이 있는 죄인입니다. 이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확실한 사실입니다.  


위드 코로나 시대를 살면서 우리는 우리 자신이 영적으로 얼마나 가난한지를 깨닫습니다. 우리 삶의 현실에서 완벽한 것은 없으며, 불안과 걱정, 아픔과 죽음을 견디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절실히 느낍니다. 이같은 냉혹한 현실 앞에서 불완전한 자신과 우리의 환경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다만, 이 깨달음이 절망으로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앞에 있는 피할 수 없는 진리를 통해서 우리는 참다운 진리를 찾고 ‘그분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됩니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이라고 선포하신 주님의 말씀을 이제서야 들을 수 있게 됩니다. 그동안 세상의 가치와 요구, 세상 사람들의 바램과 목표에 따라 정신없이 살아왔다면 이제서야 우리는 고통을 통해서 예수님을 만납니다. 


우리는 반드시 하느님께 의지해야 하고 하느님이 필요합니다. 우리에게 오신 하느님,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기쁜 소식이란 지금 이 자리에서 나의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기 위해 애쓰는 삶이며 그것만이 가장 중요한 진리임을 가르칩니다. 


죽으면 무엇이 남습니까? 여러분이 그토록 바라고 애써왔던 모든 것이 무슨 쓸모가 있습니까? 좀 더 나은 생활, 멋진 집, 화려한 물건이 상실과 고통, 절망과 죽음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 살아있는 ‘나’라는 가장 확실한 진리는 그런 것들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오직 사람으로 인해서 살고, 죽음 너머의 진리를 깨달을 때 제대로 살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시작이며 마침, 곧 알파요 오메가입니다. 세상의 임금, 세상의 물질, 다른 어떤 것, 다른 누구도 그 자리를 차지할 수 없습니다. 이 참되고 영원한 진리 안에서만 우리는 진정으로 살 수 있습니다.  


그제서야 ‘그분의 나라는 진리와 생명의 나라요 거룩함과 은총의 나라이며 정의와 사랑과 평화의 나라’(그리스도왕 대축일 '감사송' 중에서)임을 깨닫게 됩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 찬미받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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