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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소풍

약대 가톨릭 동아리 첫 만남

너와 함께한 시간 모두 눈부셨다.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날이 적당해서

모든 날이 좋았다. <도깨비> 중에서


날이 좋은 날 함께 떠나고 싶은 사람들이 생겼다.


올해 약학대학 교목실을 맡게 되면서 가톨릭 동아리 레지오 지도신부가 되었는데 새학기를 맞아 신입생 모집을 했다. 어떤 첫 만남이 좋을까 파비올라 단장 학생과 상의하다가 '봄 소풍'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기차타고 군위로' 휴(HUE)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휴(HUE)는 학생들과 함께 학교를 떠나 오고 가는 길에서 서로를 알아가고 우정을 나눔으로써 학교생활을 더 잘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프로그램이다.


대학생활로부터 쉴 휴()이기도 하지만 조금 더 다양하게 해석해서 Human(인간적인), Unique(독특한, 특별한), Evolution(변화, 진전)의 영어 단어 첫 글자를 따서 HUE(휴)가 된다.




아침 일찍 하양역에서 만났다. 아쉽게도 단장을 포함한 다른 학생이 코로나에 확진되어 열명이 떠날 수 밖에 없었다.


하양역에서 영천역까지, 그리고 기차를 갈아타고 군위 화본역에서 내렸다. 마치 이상한 나라에  엘리스처럼, 급수탑이 우뚝 솟은 일본식 역사의 화본역은 여행자의 마음을 들뜨게 만들었다.



급수탑 안에 들어가 '우와'하고 소리치고, 역무원 모자 쓰고 웃고, 화본역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공유하는 것은 참 대학생다운 일이었다. 그리고 '10시 20분 꽈배기'라고 적어 놓은 J 성격의 지도신부 계획대로 방금 튀긴 꽈배기도 먹었다. 역전상회에서 영화 '리틀 포레스트(Little Forest)'의 흔적도 찾고 불량식품도 샀다.


미성리 '혜원의 집'까지 가는 버스를 기다리는데 기다려도 버스가 오지 않아 군위교통에 전화를 했더니 운전기사 다섯 분이 아침에 코로나 확진이 되어 버스가 없다고 한다. 아뿔싸! 우보 택시에 전화를 하니 택시가 한대 밖에 없는데 이미 나갔다고 한다. 당황스러운 순간이었다.


근데 갑자기 버스가 나타났다. 토토로의 고양이버스처럼 우리 앞에 서더니 타라고 한다! 



그렇게 우리는 버스를 타고 미성리 넓은 들녘에 내려 혜원의 집으로 걸어갔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바람에 머리칼이 날리고 상쾌한 웃음은 허공에 메아리쳤다.


여전한 혜원의 집이 반가웠다. 방문을 열고 들어가 작은 방에 앉아 먼저 다녀간 사람들의 방명록을 읽었다. 연인들, 친구들, 가족들의 잔잔한 고백에 우리 마음도 따뜻해졌다. 그리고 빠질 수 없는 사진찍기! 옆에 있던 나는 학생들 덕에 처음으로 인스타(Instagram)를 시작하게 되었다. '하상바오로' 신부라고 했더니 '하바'라고 이름 지어준다!


혜원의 집 마당에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게임을 하며 먼지를 날리며 뛰어 다녔고 브레이크가 고장 난 연인들 자전거도 타며 놀다보니 어느새 점심 시간이 되었다.

 


때마침 누군가 점심을 차에 싣고 나타났다. 군위본당 신부로 있을  내가 세례를 주었던 형제님이 가까운 우보에서 식당을 하고 있어 직접 점심을 배달  것이다. 오랜 인연을 만나니 즐거웠고 정자  땅바닥에 둘러 앉아 먹는 밥도 맛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의성 탑리역에서 기차를 타고 바로 하양역으로 가는 코스였다. 제법 긴 기차여행이라 잠에 곯아 떨어진 학생들, 수다떠는 학생들로 집으로 가는 길은 편안했다.


약대에 들어오기까지 다들 많은 사연이 있었으리라. 일반대학을 다니다가 휴학을 하고 몇 년씩 공부해서 3학년으로 편입한 학생도 있지만 올해부터는 1학년도 있어 모두가 서로에 대해 궁금해한다.


나도 그렇다. 어떤 대학생활을 바라는지, 가톨릭 동아리에서 무엇을 하고 싶은지, 사제에게 궁금한 것은 없는지 수많은 질문이 있지만 봄 소풍은 봄날의 곰처럼 가벼운 것이니 그저 부담없이 대화하고 웃는다.


저녁은 삼겹살에 소주로 마음껏 먹도록 했다. 잘 먹고 생기가 넘쳐 보기 좋다.


봄 소풍으로 시작한 첫 만남으로 다음 주부터 일곱명의 학생들과 예비자 교리반을 시작한다. 


너와 함께한 시간 모두 눈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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