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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특별한 수요일

재의 수요일

"3월 2일이 무슨 날인지 아니?"


"개학날이지."


"학교에 있으니 그럴 줄 알았다. 3월 2일은 재의 수요일이야."


한대 얻어 맞은 것 같았다. 동료사제가 친절히 가르쳐 주지 않았으면 3월 2일 개학날만 바라보고 살았을텐데.




'수요일엔 빨간 장미를'이라는 노래가 있다. 수요일에는 사랑하는 이에게 빨간 장미를 선사하겠다는 사랑 고백이 사람들에게 와 닿아 비오는 수요일에는 빨간 장미를 사야할 것 같은 마음을 불러 일으켰던 노래 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수요일이란 대중가요 가사 외에는 더 특별한 의미는 없다.


하지만 수요일에 빨간 장미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온전히 불에 타 재가 된 편백나무도 있다.


교회는 성지주일이 되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것을 기념해 사람들이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을 환호하면서 흔들었던 성지가지(본래 종려나무나 올리브나무의 가지이나 한국에서는 편백나무 가지를 쓴다)를 축복해 집이나 성당에서 일년동안 십자가상에 묶어 보관하는 전통이 있다. 


그리고 사순시기가 시작되기 전 그 성지가지를 모아 태워서 재를 만든다. 일년 중 가장 특별한 수요일을 위해서 말이다.


재의 수요일에 신자들은 재를 이마에 얹는다.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하고 회개하도록 초대받는다.


"너희에게 일어난 기적들이 티로와 시돈에서 일어났더라면, 그들은 벌써 자루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회개하였을 것이다"(마태 11,21).


예수님께서는 회개하지 않는 자들을 꾸짖으시지만 우리는 자루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기는커녕 너무 잘 먹어 기름기가 흐르고 마음에는 음탕한 생각과 욕망이 넘쳐난다.


재는 정화와 참회의 표지다. 그리고 새로운 삶으로 거듭나기 위한 죽음을 뜻한다.


"모두 한곳으로 가는 것. 모두 흙으로 이루어졌고 모두 흙으로 되돌아간다"(코헬 3,20).


인간은 모두 나약하다. 죽음을 넘어설 수 없으며 결국 흙이 되고 만다.


그래서 교회는 신자들이 자신의 나약함을 깨닫고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도록 사순절이라는 40일동안의 시간을 마련해 몸과 마음을 준비시킨다. 부활을 제대로 맞이하기 위한 참회와 정화의 시간이다.


우리 시대에 가장 필요한 것은 절제다. 할 수 있지만 안 할 수 있는 힘, 가질 수 있지만 포기할 수 있는 능력, 받아들여지기 위해 수락할 수 있지만 거절하는 지혜가 절실하다. 사순시기에 우리 모두가 청해야 할 은총이 아닐까.




여우가 어린왕자에게 말한다.


"네가 네 시에 온다면, 난 세 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거야. 네 시가 가까워올수록 나는 점점 더 행복해지겠지. 그리고 네 시가 다 되었을 때 나는 흥분해서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할거야. 아마 행복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 알게 되겠지!"



3월 1일이 되면 난 행복해지기 시작할 것이다. 3월 2일이 가까워올수록 나는 점점 더 행복해지고 흥분해서 가만히 앉아 있고 싶지 않을 것이다. 


물론 신입생과 새학기를 기다리는 마음이 먼저겠지만 재의 수요일도 잊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일년 중 가장 특별한 수요일은 오고, 그날부터 어떤 이는 카이로스(특별한 시간을 뜻하는 그리스어)로 들어서 죽음을 넘어선 부활을 향해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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