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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 감자 캐는 신부

벼락 농부 이야기

나는 농사에는 젬병이다. 그래서 우리대학 신학관(C6) 옆 동산에 예전에 신학생들이 농사 짓던 땅을 어떤 신부님이 개간하고 농작물을 심기 시작할 때에도 농사를 지을 마음이 없었다.


그런데 원하는 사람에게 땅을 1-2평씩 분양한다는 소식을 듣고 약학대학 레지오 단원들에게 혹시 농사 지을 생각이 있는지 물었다. 무려 15명 이상의 학생들이 농작물을 기르고 싶다고 해서 2평의 땅을 분양받았다.


감자를 키우기로 하고 감자심기를 하기로 한 날 나는 코로나 확진으로 함께 하지 못했다. 동료 신부님께서 학생들을 지도해서 감자를 심었다.


그후 학생들은 바빠서인지 정해진 농작물 돌보기 시간에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감자밭은 고스란히 내가 떠안게 되었다.


물주기는 매일 물만 주면 되지만 잡초는 뽑아도 뽑아도 표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한번은 학생들을 겁박(?)하여 잡초 뽑기에 오도록 만들었다. 다섯명이 40분 잡초뽑기하고 일곱명이 고기 먹으러 가서 고기값이 엄청 나왔다 ㅎㅎ




감자를 키우며 많은 것을 배운다.


(자식은 아니지만) 매일 무언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면, 매일 무언가 할 일이 있다는 것을 떠올리면 몸은 무거워도 마음은 감자밭으로 달려간다. 그곳에는 감자 뿐만 아니라 옥수수, 파, 방울토마토, 수박, 상추 등 온갖 농작물이 살아서 제 노래를 부르고 있다.


감자를 돌보며 내 마음을 다스리고 대학생들을 향한 마음을 새롭게 한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기다리며 쉬지 않고 물을 줘야 하는 것은 비단 감자만이 아니다. 시기에 따라 감자 순치기를 하고 잡초를 뽑아주는 것도 사람을 돌보는 것과 다르지 않다.


농부의 발소리를 듣고 벼는 자란다고 하는데 사람 농사도 관심과 사랑이 팔할 이상이다.


그래서 하지 감자를 캐는 오늘이 특별하다. 비록 크기는 작지만 이렇게 물만 먹고 쑥쑥 자라준 감자가 대견하다. 마찬가지로 학생들에게 별로   것이 없지만  학기를 보내면서 훌쩍 자라준 이들이 고맙고 대견하다.


오늘 캔 하지 감자를 모으니 한 포대가 되었다.


동료 신부들과 산책하며 이런저런 농사 이야기를 하다가 농담처럼 닭을 키우면 좋겠다는 말이 오고 갔다. 우리 먹을 달걀도 얻고 닭똥은 비료도 쓰고 하면서 웃었다.


아뿔싸, 며칠 뒤 암닭 다섯마리와 병아리 여섯마리가 창고 옆 닭장으로 이사왔다. 


이제 닭까지 돌보게 되어 나의 아침은 더 분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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