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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산 아래 낙동강에 발 담그고

한국 최고의 고건축물 병산서원

병산서원 가는 길은 거칠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된 한국의 보물답게 크고 넓은 길을 상상했는데 좁은 비포장길을 마주한 것이다. 이는 공부하러 오는 이의 마음을 준비시키는 길이기에 그렇다.


옛날에는 병산서원 5리(2킬로미터) 앞에서는 무조건 말에서 내려 걸어들어와야 했는데 이는 스승에 대한 예의 때문이라고 한다. 공부하러 오는 길이 편해서는 학생의 마음을 제대로 세울 수 없다.


지금도 굳이 비포장 좁은 길을 유지하는 이유 또한 병산서원에 오는 사람들이 편리함보다는 불편함, 관광객보다는 순례객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묻어 있다.


안동 도산서원을 생각하고 주차장에서 내리면 곧 펼쳐진 한옥 건물을 상상했었는데 병산서원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정겨운 시골마을로 주막, 공방, 민박 등 옛길에 어울리는 낮은 초가집들이 매화, 복숭아, 나팔꽃, 느티나무와 함께 편안하게 어우러져 있었다.


한참을 걸어가니 왼쪽에서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이 넓은 백사장을 만드는  오른쪽 낮은 언덕에 쑥스럽게 펼쳐진 병산서원이 순례객을 맞았다.


병산서원


멀리서 보는 병산서원은 누구라도 마음을 편안하게 만드는 깊은 산 속에 누운 것 같았다.


유학의 정수를 뜻하는 '극기복례(克己復禮)' 상기시키는 복례문을 지나니 만대루가 펼쳐진다. 목조건축의 아름다움이 그대로 묻어나 있는 만대루는 선비들이 강학하던 강당으로 두보의  '백제성루(白帝城樓)'에서 따왔다고 한다.


취병의만대(翠屛宜晩對) 푸른 병풍처럼 둘러쳐진 산수는 늦을 녘 마주 대할만 하고


백곡회심유(白谷會深遊) 흰 바위 골짜기는 여럿 모여 그윽이 즐기기 좋구나.


만대루


만대루를 바치고 서 있는 휘어진 모습 그대로의 나무는 손으로 쓰다듬으니 세월이 느껴졌고 바라보니 자연스럽게 자신의 몫을 다하고 있어 정겨웠다.


병산서원 입교당에 신을 벗고 오른다. 바닥은 세월이 묻어 하얗게 바랬지만 입교당에서 바라보는 만대루와  너머 부드러운 낙동강, 깍아지는 병풍처럼 펼쳐진 병산은 예전과 다름없이 한가롭다. 낮고 넓게 펼쳐진 만대루의 자연스런 아름다움이 더욱 빛을 발한다.


병산서원 입교당에서 바라본 풍경


문화해설사로부터 서애 류성룡 선생의 이야기를 들으며 병산서원 강당에서 앉아 있으니 그 옛날 선비들의 사서삼경 읽는 목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학생들이 기거했던 서재와 동재는 공부를 통해 자신을 수련하면서 불안한 미래를 견뎌야 했던 이에게는 어떤 곳이었을까. 선생은 엄하고 공부는 힘들었겠지만 입교당에서 만대루 너머 펼쳐진 한가한 낙동강 물결과 푸르다가 빛이 바래는 병산의 나무는 시간과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게 하지 않았을까.


부자집 혹은 명문가 자식이던 누구에게나 공부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것을 견디게 한 출세를 위한 야망, 혹은 부모에 대한 효심, 그도 아니면 인정받고 싶은 희망으로 어려운 시기를 버티며 동기생들과 함께 공부하고 경쟁하던 병산서원은 세월을 넘어 잔잔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병산서원 바깥 지붕도 없는 달팽이 모양 화장실은 서원내 아담한 양반 화장실과는 비교되어 감히 넘어설 수 없는 신분의 차이를 볼 수 있으나 지금은 세상이 많이 달라진 것 같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교육을 통한 출세와 특별한 소수를 위한 비싼 사립학원에 대한 열성은 여전해 씁쓸하기도 했다. 시간 앞에서는 모든 것이 무상할 뿐인데.


병산 아래 은빛 백사장으로 걸어나가 낙동강에 발을 담그니 찬 기운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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