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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님이 오시고 마음이 촉촉해졌다

참 사랑으로 가는 길

지난 4월 7일 봄비가 내렸다.


그날은 나의 형제이자 한 여자의 남편이며 한 아이의 아버지와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작별하는 날이었다.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모든 이에게 충격과 허망함을 준 친구는 내리는 비와 함께 하늘나라로 갔다.


나는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고 미운 비를 바라보며 홀로 미사를 드렸다.


그 뒤 가뭄이 계속 되었다. 두 달 가까이 제대로 된 비가 내리지 않아 땅은 타들어가고 농작물은 말라죽고 산불은 여기저기서 일어났다. 


우리 마음도 가물기는 매한가지였다. 아무도 준비되어 있지 않았던 일을 마주하며 어떤 이는 눈물로, 어떤 이는 술로, 어떤 이는 한숨으로 시간을 보냈고 모양은 달랐지만 마음의 가뭄은 똑같았다.




마침내 두 달 만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조용한 국도로 군위를 가로질러 갔다. 세상을 떠난 형제를 기억하며 남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마음을 모아 기도하기 위해서였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요한 20,19)


죽음에서 부활하여 제자들에게 돌아오신 예수님의 인사말은 죽음을 체험하고 다시 만난 우리에게 건네는 인사이기도 했다. 


이렇게 말씀하시고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두 손과 옆구리를 보여 주셨다. 우리 역시 형제를 떠나 보낸 후 겪었던 마음의 한, 고통, 고마움, 미안함을 나누며 어린아이부터 어른까지 서로의 속마음을 드러내고 보여주었다. 


형제가 우리 곁을 떠난 후에야 우리는 예수님께서 주시는 평화란 그저 주어진 평온한 상태가 아님을 어렴풋이 알아듣게 되었다. 


죽음에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주시는 평화는 죽음의 상처를 간직하고, 더 나아가 죽음을 받아들인 평화다. 예수님의 두 손과 옆구리는 바로 그 평화의 증거로써 두 손의 못자국과 옆구리에서 흘러내린 물과 피를 보며 우리는 참 사랑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사랑은 상처입은 몸과 마음에서부터 시작해서 온전히 자신을 내어줄 때 완성된다. 그렇게 우리는 자신의 상처를 나누고 예수님의 온전히 내어주신 몸과 피를 받아 모시고 성령 안에서 새로운 공동체로 다시 태어났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요한 20,22-23).


우리가 기도한 것은 평화며 우리가 준 것은 용서였다. 먼저 말도 없이 우리를 두고 세상을 떠난 형제를 용서하고, 형제에게 잘못했던 우리를 용서하는 것이 예수님께서 주신 참 사랑의 평화로 가는 길임을 우리는 알게 되었다. 


성령강림대축일  <성령송가>는 노래한다. 


"오소서 성령님...가난한 이의 아버지...가장 좋은 위로자 영혼의 기쁜손님...영원하신 행복의빛 저희마음 깊은곳을 가득하게 채우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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