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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변한다고?

프란치스코 교황의 하느님

사람들이 듣기 싫어하는 말 가운데 하나가 '너 참 많이 변했다.'라는 말이다.


여기서 변했다는 것은 첫 마음을 잃어버렸거나 원래 것이 변질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음식으로 말하면 부패해서 상한 것이고 인간 관계에서 말하자면 그(그녀)만의 좋은 점과 매력을 잃어 더 이상 함께 하고 싶지 않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누가 변하고 싶을까!


하지만 사람들은 자주 변해서는 안된다는 신념을 지키기 위해 혹은 변하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중요한 것을 놓친다. 


변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같은 강물에 두번 발을 담글 수 없다는 철학자의 말이 아니더라도 아침 저녁으로 다른 자신을 보면 존재는 시간 안에 있고 시간은 곧 변화를 뜻함을 알 수 있다. 


늘 같은 사람처럼 보이고 싶은 유혹은 존재와 시간의 섭리를 거스르는 일이며 관계에 있어서도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밖에 없다. 변하는 자신을 받아들이지 않고 항상 이상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또 상대방에게 요구한다면 그런 관계는 파국으로 끝날 수 밖에 없다.


타인과의 소통의 기본 역시 자신의 것을 잠시 내려놓고 열린 마음으로 다가서는 것이다. 이는 내 것이 아닌 상대방을 받아들이는 것을 전제로 하는데 이상한 신념에 사로잡혀 자신이 인정하지 않는 것은 어떤 것도 받아들이지 않는 개인과는 소통 자체가 불가능하다. 안타까운 일이다.


놀랍게도 변하는 것이 열등하다는 생각은 인류가 축적해 온 사상에도 깔려있다.


세상 것은 모두 변하지만 진리는 불변하므로 열등한 세상에서는 진리를 경외하며 바라봐야 한다고 가르쳐왔다. 자신의 한계와 변화 앞에 나약함을 아는 개인은 신이 가진 불변함 앞에서 무릎을 꿇을 수 밖에 없었다.


신은 변함없다는 생각은 철학과 신학의 기초로 변함없는 신이야말로 인간이 기댈 수 있는 유일한 존재였다.


하지만 신 역시 변화한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이단이 될까. 그것도 어떤 신학자가 아니라 가톨릭 진리의 수호자인 교황이 그렇게 말한다면 어떨까.


넷플릭스 영화 <두 교황(The Two Popes)>에는 베네딕도 16세 교황이 자신의 후계자로 생각하고 있었던 호르헤 추기경-실제로 프란치스코 교황으로 선출됨-과 만나 다음과 같이 대화하는 장면이 나온다.


프란치스코: 자연이나 우주에서 그 어떤 것도 불변하는 것은 없습니다. 심지어 신조차도요.


베네딕토 16세: 신은 변하지 않아요!


프란치스코: 아니요. 신도 변합니다. 그분은 진화하고 있어요. 그분은 우리에게 움직이고 있고...


베네딕토 16세: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신이 계속 움직이고 있다면 우리가 어디서 그분을 찾을 수 있단 말입니까?


프란치스코의 말에 당황한 베네딕토 16세의 선언은 마치 자기 것을 잃지 않기 위해 소리치는 소년 같다.


성경에 보면 자주 하느님이 마음을 바꾼다. 모세를 따라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섬기자 하느님께서는 그들을 멸하려 했지만 모세의 간곡한 부탁으로 마음을 바꾼다. 타락한 느네베 왕과 사람들이 자신들의 죄를 뉘우치고 단식하자 느네베를 멸망시키려던 마음도 바꾼다.


하느님이 마음을 바꾼다면 그 하느님은 변하는 것이 아닌가. 변하는 하느님이 이상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은 변할 수 없다고 틀에 가두어 놓는 우리가 이상하지 않은가.


참된 하느님이라면 불변하는 신의 속성에 갇히지 않고도 신일수 있어야 한다.


'사랑은 움직이는 거야!'라는 광고 카피가 떠오른다. 움직이지 않는 사랑은 경직되고 부패하기 쉽다. 마찬가지로 사랑이 처음과 같이 똑같다면 그 사랑은 어떤 이기적인 이유로 방부제를 첨가했을 가능성이 높다.


내가 믿는 하느님은 변화를 통해 우리에게 다가오는 분이시다. 계절마다 바뀌는 자연, 자라나는 아이들, 그리고 나 자신의 변화를 보면 그 변화와 함께 하지 않는 하느님은 생각하기 어렵다. 더욱이 하느님께서 사랑이시다면 말이다.


하느님은 진화한다. 날마다 새롭게 나에게 다가오신다. 조카들을 만날 때마다 쑥쑥 자라는 것을 보면 하느님께서 허락하시는 변화는 놀라움이다.


만일 하느님이 불변하신다면 놀라움보다는 지루함, 사랑보다는 엄격함이 더 어울릴 것이다.  


모든 것은 변한다.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변화는 열등한 것이 아니라 성장을 위해 열려 있는 마음이며 자라는 것이기에 그 안에 생명을 가지고 있다.


우리 몸도 마찬가지다. 움직이지 않으면 근육은 경직되고 몸은 제 기능을 잃는다. 변하지 않으면 죽는다.


사랑한다면 변해야 한다. 기꺼이 자신의 것을 포기할 수 있는 마음, 자신의 생각이나 신념마저도 사랑 때문에 바꿀 수 있을 때 우리는 성장한다. 베네딕도 16세 교황이 교회의 전통을 깨고 사임할 수 있었던 것은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랑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우리 시대의 두 교황


'너 참 많이 변했다!'는 말을 칭찬으로 들을 수 있다면 좋겠다. 그래서 기꺼이 과거와 결별하고 현재에 충실하고 미래를 맡기면 좋겠다. 변화는 즐거운 것이며 충만에로 나가는 길이다. 결국 존재란 변화의 열매다.


'일탈은 창조의 근원'이라는 말이 있다. 길을 잃을 때는 두렵지만 그 때문에 새로운 길을 발견하는 것처럼, 조금이라도 나은 인간이 되려면 적어도 길을 잃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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