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 없는 인생을 위하여
미래에 대한 희망은 어려운 순간을 견딜 수 있게 만들어 주는 소중한 것이다.
달리기에 비유해서 이야기하자면 아무리 먼 거리라도 목적지가 있기 때문에 견딜 수 있다. 결승선은 러너를 달리게 하고 견디게 하고, 심지어는 자신을 초월해 헌신하게 만든다.
하지만 목적지가 좋은 것이기만 할까?
'내일은 나아지겠지', '그 일만 이루면 다 잘 될거야'라고 자신에게 말하면서 오늘을 견디는 일이 과연 우리에게 도움이 될까?
얼마전 지인이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목적지가 훤히 보이는 카스티야 지역의 메세타 길이 가장 힘들다고 했다. 목적지가 보이는데 두 시간을 더 걸어가다 보면 털썩 주저앉아 도망가고 싶다고 했다.
나도 그 말을 이해한다. 마라톤을 하다보면 아무 변화없이 일직선으로 쭉 뻗은 길이 달리기 가장 어렵다. 뛰어도 뛰어도 목적지는 그 자리고 풍경하나 변하지 않으니 미칠 지경이 된다.
앞만 보고 달려가는 우리 인생도 그렇지 않을까.
그저 목적지에 다다르는게 삶의 목표라면 굳이 걸어가는 것보다 차 타고 고속도로로 빨리 가는게 가장 이득이겠지만 그런 관광객은 서둘러 다음 목적지를 찾아 또 떠날 수 밖에 없다.
길은 걷는 이는 속도보다는 방향, 목표보다는 과정을 소중하게 여긴다. 풍경도 보고 동행과 이야기도 나누고 맛도 즐길 줄 아는 것이 순례자에게 어울리는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인생을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달린다. 어떻게 해서든 결승선에 빨리 도달하는게 최선이라고 여기고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달리지만 다다른 목적지에 또 다른 다음이 없으면 공허하고 허무할 뿐이다.
목적지는 필요하지만 현재를 제대로 보지 못하게 만든다. 결코 마주할 수 없는 내일이 오늘의 자리를 빼앗고 오지 않을 미래를 위해 감언이설로 현재를 희생시킨다.
때론 목표 따위는, 미래에 대한 기대 따위는 버려야 할지도 모른다. 더욱이 내가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면 걱정이나 관심조차 아까울 수 있다. 내 미래가 어떨지, 어디에서 무엇을 하게 될지, 가족에게 생길 일에 대해서는 한치 앞도 모르는 인간에게 허락되지 않은 금지 구역이기에.
아무리 먼 거리라도 한 걸음이 데려다 준다. 마라톤이 내게 가르쳐 준 것이다.
그보다 더 중요한 깨달음은 이것이다.
내가 지금 내딛는 바로 그 한 걸음이 내가 바랄 수 있는 유일한 목적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