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바람이 불어오는 곳: 제주국제마라톤 2

달리는 순간은 살아있다. 달리는 사람은 감사를 느끼고 은총을 체험한다.


하지만 '달리기를 하면 무릎관절이 안 좋다는데'하며 걱정하는 사람을 많이 만난다. 심하게 오래 달리면 그렇게 될 수 있지만 실제로 달리기 자체가 무릎관절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친다는 보고는 없다. 오히려 적당한 달리기는 무릎 근육을 키워주어 관절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


우리 몸은 안 쓰고 진열장에 보관해 두는 것이 아니라 잘 써야 하는 하나뿐인 것이다. 너무 아껴두면 녹슬고 너무 막 쓰면 못쓰게 된다. 나는 그 중간을 모를 뿐이다. 어디가 적당한 지점인지 몰라 남들 보기에 좀 과하게 몸을 쓰고 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안 쓰고 아끼다가 녹슬어 못 쓰게 되는 경우보다는 좋다고 생각한다. 신경 써서 잘 쓰고 때가 되어 탈이 나면 그때는 다음 단계로 넘어가면 된다. 그 다음 단계란 무릎이나 관절에 부담이 적은 자전거 타기나 수영이 될 것이다.


running-1705716_1920_(1).jpg?type=w966 @Pixabay.com


'미세먼지 때문에 밖에서 달리는 것은 나쁘지 않나요?’하고 묻는 사람들도 있다. 그렇다. 미세먼지나 공기 오염이 심한 날에는 밖에서 뛰는 것이 몸에 좋을 리 없다. 그런데 그렇다고 실내에만 머문다면 어떻게 될까?


어느 의사가 하는 강연을 들은 적이 있다. '현대인이 피해 갈 수 없는 없는 질병 가운데 혈관 질환과 폐 질환이 있는데 어느 쪽이 더 심각할까?' 하는 내용이었다. 혈관 질환은 국내에서 암에 이어 사망원인 2위를 차지하는데 나이가 들면서 동맥에 콜레스테롤이 쌓여 혈관이 좁아지면서 동맥경화증이 생겨 협심증, 심근경색, 뇌졸증 등을 유발한다. 그 강연의 핵심은 혈관 질환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혈액 순환을 원활하게 하는 운동을 해야 하고, 그것은 폐 질환을 유발하는 공기 오염 중에서라도 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폐 질환은 당장에 어떤 치명적인 영향을 주지 않지만 혈관 질환은 갑자기 사람을 덮친다. 실제로 주변에 혈관 질환으로 오랫동안 고통받고 있는 환자와 그들을 돌보는 사람들의 어려움을 보면 우리 몸의 혈관을 잘 관리하기 위해서는 공기가 안 좋더라도 부지런히 밖으로 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달리다 보면 다치는 것을 피할 수 없다. 무릎, 허리, 발, 심지어 젖꼭지도 다친다. 다친 부위와 다친 이유에 따라 치료법은 다양하겠지만 가장 중요한 기본적인 치료법은 달리지 않는 것이다. 그동안 너무 지나치게 사용해 탈이 난 신체가 회복할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부상은 이렇게 치료된다.


보통 사람에게는 휴식이란 반가운 소식이지만 마라톤이라는 목표를 두고 계획을 가지고 달리는 사람에게 휴식은 고통스러운 시간이다. '이렇게 쉬면 계획한 목표를 이룰 수 있을까?’에서부터 시작해 '앞으로 계속 달릴 수 있을까?' 하는 걱정에 이르기까지 마음은 휴식을 모르기 때문이다. 이럴 때 그냥 아무 생각 하지 않고 쉬는 것을 배우는 것 또한 살아있음의 한 과정이다. 부상당한 몸에 대한 미안함을 안고 조심스레 다루며 기다려 주는 것, 중요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키지 않는 것이다. 몸을 위해 마음을 쓰기보다는 마음가는대로 몸을 쓰는 게 당연하다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그래서 때론 부상이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난 인간이고 쉼과 돌봄, 애정까지 필요하다고 표현하니까 말이다.




달릴 때는 먹고 마시는 것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데 나에게는 우유가 그런 적이다. 우유만 먹으면 바로 설사를 하기 때문이다. 나는 우유나 치즈 등의 유제품에 들어있는 유당(락토오스)을 소화시키지 못하는 '유당불내증'이라는 흠(?)이 있다.


한번은 혼자서 제주도에 가서 달리기를 하러 사려니 숲길을 찾은 적이 있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우유를 잔뜩 넣은 카페라떼와 빵으로 배를 든든히 채우고 차를 타고 사려니 숲길에 도착했다. 이른 아침 날씨는 청명했고 새소리로 가득한 사려니 숲길을 뛰기 시작했다. 행복하게 달리기가 주는 살아있음을 만끽하며 뛰고 있는데 갑자기 속이 끓기 시작했다. 어쩔 수 없이 숲속으로 뛰어 들어가 볼 일을 볼 수밖에. 키 큰 삼나무 아래에서 인간의 가장 본능적인 행위를 하는데 고요한 숲의 적막을 깨는 내 몸에서 나는 소리가 얼마나 크던지 고개를 들고 두리번거리길 여러 번. 지금 생각해도 잊지 못할 반짝이는 내 삶의 한 풍경이다.




달리기를 하다 보면 숨 막힐 정도로 힘든 순간이 오고 그것을 버티다가 넘어서면 불현듯 몸이 가벼워지면서 황홀감까지 드는 '러너스 하이(Runner's high)'가 올 때가 있다. 이런 순간을 달리기가 아닌 것으로도 간접적으로 느낄 수가 있는데 감동적인 달리기 영화를 볼 때다.


잃어버린 운동화 한 켤레 때문에 생긴 남매의 숨 가쁜 이어달리기를 감동적으로 그린 영화 <천국의 아이들>이 대표적이다. 1997년에 마지드 마지디 감독이 만든 이란 영화로 가난한 집의 알리가 그의 여동생 자라의 구두를 수선하러 갔다가 잃어버리면서 사건은 시작된다. 부모님에게 말도 못하고 매일 자신의 운동화를 오전반인 자라에게 빌려주어 수업을 마치고 오면 오후반인 알리가 신고 학교를 급하게 뛰어가야 했다. 그 때문에 지각도 하고 여러 문제도 발생한다. 그러다 우연히 지역 마라톤 대회 3등 상품이 운동화인 것을 알게 된다. 1등이나 2등도 아닌 3등 상품인 운동화를 위해 대회에 출전해 최선을 다해 뛰는 오빠 알리의 달리는 모습을 보면 마음의 카타르시스와 함께 몸의 전율도 느낄 수 있다.


또 개인적으로 감명 깊게 본 영화는 <리틀 러너>인데 14살 소년 랄프가 코마에 빠진 엄마를 위한 기적으로 '보스턴 마라톤 대회 우승'이라는 기적을 이루기 위해 도전하는 이야기다. 2004년에 개봉한 마이클 맥고완 감독의 캐나다 영화로 기적이란 불가능한 일의 실현이 아니라 간절함으로 인간을 변화시키는 일임을 보여준다. 마라톤이란 큰 고난 앞에서 순수한 소년 랄프는 선량한 주위 사람들의 도움을 통해 불가능해 보이는 일에 자신의 모든 노력을 바쳤고, 달리고 또 달려 마침내 기적을 이룬다. 여기에 알렉산드라 버크가 부른 레너드 코헨의 '알렐루야(Hallelujah)'란 노래를 듣고 있으면, 오! 말 그대로 '알렐루야!'를 외치지 않을 수 없다. 이처럼 달리기는 살아있음이 감사와 은총임을 가르쳐 준다.


R800x0.jpeg 리틀러너 @googl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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