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마라톤의 변화: 군위삼국유사마라톤

움직이지 않는 것보다 움직이는 것이 더 빨리 눈에 띈다. 셰익스피어


"세계적으로 생각하고 지역적으로 행동하라." (Think globally, Act locally.) 이것은 1992년 브라질 리우에서 개최된 유엔 환경개발 회의에서 채택된 모토다. 살아있는 사람 역시 볼리비아와 중앙아프리카공화국의 어린이들을 돕기 위해 뛰지만 우리의 행동은 지역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그동안 경주, 제주, 춘천으로 가서 달렸는데 '살아있는 사람 13'은 좀 더 가까운 지역에서 작은 마라톤을 뛰고 싶었다. 그래서 선택한 곳이 삼국유사의 고장이자 김수환 추기경님의 생가가 있는 군위였다.


AF1A0459.JPG 살아있는 사람 13의 감사와 봉헌미사, 2017년


2017년 10월 14일 토요일 제12회 군위 삼국유사 전국 마라톤 대회가 열렸다. 124명의 '살아있는 사람 13'은 모두 각자 한가지 목표를 세우고 모였다. '하프 마라톤을 완주하고 싶다.' ‘나와의 약속을 지키고 싶다.’'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겠다.'


우연히 들른 시골마을에서 잔치가 벌어진 듯한 분위기의 군위 마라톤은 이천명 규모의 작은 대회라 살아있는 사람은 큰 환대를 받았다. 달리기 코스는 삼국유사로를 따라 가을날 시골 풍경처럼 편안했고 산과 들은 고로댐 물에 비춰져 가을 정취를 물씬 풍겼다. 달리는 길에 만난 작은 설악이라는 아미산 역시 아름다웠다.


아쉬운 점이 하나 있다면 풀코스가 없었기에 나는 하프코스 완주에 만족해야 했다. 하지만 하프를 뛰고 들어오니 출발 장소는 시골장터가 되어 있었다. 공짜로 주는 소머리국밥, 두부김치, 막걸리에는 시골 인심과 손맛이 담겨 있었고 지역 특산물은 보너스였다. '용 꼬리보다 뱀 머리가 낫다.'는 말처럼 춘천마라톤같이 큰 대회에 가서 사람들에 치이며 복잡하고 소란스러운 것보다는 소박한 군위에서 느끼는 지역민의 환대와 정성이 훨씬 좋았다.


작은 대회라 우리 가운데 여러 사람이 입상을 해 트로피를 받는 즐거움도 있었다. 육십 대 여자 부문에서 당당히 입상한 수녀님은 우리 모두에게 ‘살아있음이란 이런 것이다!’하고 보여주셨다. 저녁에는 대구에서 삼겹살 파티를 하고 낯선 즐거움이 주는 신선한 하루를 마감하였다.




젊은이들과 지난 7년간 마라톤을 뛰면서 우리나라 마라톤이 변화하고 있음을 목격했다.


마라톤은 그동안 기성세대가 혼자 하는 운동으로, 또한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하는 극한의 운동으로 여겨져 왔다. 하지만 최근에 즐거운 삶을 추구하는 2030 세대는 마라톤을 트렌디한 운동으로 바꾸고 있다. 달리기는 함께 뛰고 멋있게 뛰는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로 젊은이들에게 각광을 받고 있다. 2019년 서울 국제 마라톤은 역대 최고 참가자인 3만 8500명이 참가했는데 그 이유는 2030세대 참여가 대폭 늘어났기 때문이다. 2018년 1만 2236명이던 2030 참가자가 2019년에는 1만 5994명으로 늘어났다. 그 가운데 30대 참가자는 전체의 24.1%를 차지하여 전체 연령층을 통틀어 가장 많았다.


'워라밸', 곧 워크 라이프 밸런스(Work Life Balance)는 현대인에게 중요한 키워드다. '일과 삶의 균형'은 그동안 직장에서 일을 통해 자기실현을 이루려 했던 기성세대에서 벗어나 개인적 삶의 중요성을 깨닫고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추려는 새로운 세대의 트렌드다. 2030세대는 저녁이 있는 삶을 원한다. 그래서 그들은 직장에서의 회식보다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운동하는 것을 더 선호하는데 대표적인 것이 새로운 달리기 문화를 이끄는 '러닝 크루'(Running crew)다.


이들은 인스타그램이 주요 활동 무대이며 야간 도심에서 함께 러닝을 즐긴다. 기존의 동호회나 회사의 소속감이 주는 압박이나 강압적인 위계질서가 없는 수평적 문화를 지향하며, 달리기를 통해서 유대감을 쌓고 서로 공감하는 다양한 젊은이들이 모인다. 이들은 일주일에 한번 날짜를 정하고 달리는 정규런, 별도 사전 신청 없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오픈런, 크루 이외의 손님을 초청해 함께 달리는 게스트런, 갑자기 모이는 번개런 등을 통해 같이 뛴다.


또한 러닝을 단순한 운동이 아니라 하나의 문화로 발전시켜 다양한 러닝 굿즈, 곧 달리기 복장, 헤드밴드, 스마트워치 등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자신만의 러닝 크루가 가진 팀셔츠와 깃발로 자신의 인스타에서 활동을 뽐내며, 인기 있는 러닝 크루는 '런예인(러너+연예인)'이라 불리며, 인스타에서 수많은 팔로워를 거느린 러닝계의 인플루언서(영향력 있는 사람)도 생겨난다. 여성만을 위한 러닝 크루도 인기가 있다.


IMG_4361.JPG 살아있는 사람이 후원자들을 기억하며, 2017년


현대의 새로운 달리기 방식인 러닝 크루의 인기 요인은 첫째, 모임의 실용성에 있다. 개인 성향이 강한 젊은이들이 책임감이나 의무감 없이 원하는 때에 하고 싶은 운동만 간단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취미생활에서 빠지지 않았던 회사, 학교, 지역 중심의 직장이나 동호회의 친목이 아닌 달리기에 집중하는 목적이 뚜렷하고 실용적인 모임이 러닝 크루다. 이들은 규율이나 원치 않는 뒤풀이 대신 달리기에 중점을 둔다.


둘째, 달리기는 경제적 심리적 진입 장벽이 낮다. 달리기를 하기 위해서는 운동화만 있으면 된다. 별로 돈이 들지는 않지만 운동 효과는 좋다. 셋째, 서로가 페이스 메이커가 되어 같은 목적을 성취하도록 서로 격려하고 돕는다. 많은 경우 운동을 혼자 하면 쉽게 지치거나 포기할 수 있지만 같이 함으로써 운동도 재미있어진다.


여기에 개인적인 취향이 더해져서 달리기를 같이 한 후에 수제 맥주, 와인 등과 같은 다양한 취미를 공유하거나 달리기를 하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런트립(Run-trip) 같은 새로운 형태의 클럽도 생겨나고 있다. 또는 친환경을 표방하며 참가자들이 달린 거리에 맞춰 나무를 심거나 달리면서 쓰레기를 줍는 플로깅(Plogging-스웨덴 언어로 이삭을 줍다 Plocka Upp과 영어 조깅jogging의 합성어)이 인기를 끌기도 한다. 이런 행사는 신세대를 마케팅 대상으로 하는 자동차 회사, 스포츠용품 회사뿐만 아니라 은행과 같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홍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더 이상 마라톤은 경주가 아니라 소통의 장이 되고 있다. '혼자 가면 빨리 가고, 같이 가면 멀리 간다.'라고 생각하는 젊은이들에게 달리기는 사회생활이나 일상의 인간관계에서 체험하지 못하는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을 선사해 준다. 최근에는 이런 트렌드를 반영해 '달리기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등장해 특별한 장소에서 연예인들이 뛰는 TV 프로그램도 있다. 이제 달리기는 더 이상 소수의 사람들만을 위한 스포츠가 아니다. 누구나 즐겁게 함께 달릴 수 있고, 하느님의 영광과 이웃을 위해 달리고자 한다면 누구나 살아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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