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취감을 느끼며 행복한 인생을 살아가는 비결은 자신의 삶에서 우선순위를 잘 정하는데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하고 싶은 일, 해야 할 일, 주어진 일 가운데에서 '어떤 일에 우선순위를 둘 것인가?' 하는 질문은 누구나 한다. 이때 유용한 것이 '중요한 일'과 '시급한 일'의 두가지 기준을 이용한 '시간관리 매트릭스'다. 아래의 표를 한번 보자.
사람들은 대부분 시급한 일에 우선순위를 둔다. 일단 닥친 일을 처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눈앞에 주어진 일을 정신없이 해내며 산 하루를 돌아보면 '시급하고 중요한 일(B)'은 별로 없고, 대부분의 에너지와 시간을 '시급하지만 중요하지 않은 일(D)'에 썼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충만한 인생을 사는 사람은 '중요하지만 시급하지 않은 일(A)'에 관심을 둔다. 당장 나에게 필요하거나 눈에 띄게 드러나지는 않지만 멀리 보면 반드시 필요한 일에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한다. 예를 들어, 마라톤 풀코스를 뛰는 것, 혹은 히말라야 트레킹과 같은 특별한 여행을 준비하는 것, 또는 외국어나 악기를 배우는 것은 매일의 삶에서 시급한 일은 아닐지 모르지만 인생에서 중요한 일이다.
많은 사람들이 입버릇처럼 늘 '바쁘다.', '정신없다.'하고 이야기할 때 내가 달리기를 하면서 배운 것은 내 인생의 우선순위를 남들처럼 당장에 시급한 일에 둘 것이 아니라 시급하지는 않지만 중요한 일에 둘 때 충만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인생은 짧다. 언제까지 시급하지만 중요하지 않은 일의 뒤치다꺼리만 하며 살 것인가? 오히려 멀리 보면서 다른 사람들의 기대와 시선은 상관하지 않고 나에게 중요한 일을 찾아 꾸준히 에너지와 시간을 쏟아붓는다면 그때 자신만의 가치 있는 삶을 살 수 있다. 이처럼 나에게 일상 달리기는 시급하지는 않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다.
현대인들은 피곤하다. 치열하게 노력해야 성공할 수 있는 성과사회에서 끝없는 경쟁에 시달리며, 자신을 지키고 생존하기 위해 자기계발이라는 이름으로 자기 자신을 착취하고 있다. 이런 과다경쟁은 스트레스를 가져오는데 거기다가 모든 사람들이 당연시하는 멀티태스킹에 실패하면 낙오되고, 낙오하면 우울해지고, 우울해지면 술과 TV, 신경향상제에 의존하게 되어 결국 자신을 잃게 된다. 이같은 '피로사회'에서 삶의 낙이 없거나 자신이 하는 일에서 의미를 못 찾거나 사는 게 너무 힘든 경우에는 삶의 의욕뿐만 아니라 자신감도 떨어지고 자기 자신에 대한 자존감도 낮아질 수밖에 없다.
이럴 때 달리기는 유익하다. 달리기는 몸을 상쾌하고 건강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성취 가능한 목표를 달성함으로써 자신감까지 얻게 한다. 누구에게나 쉽게 찾아오는 무기력과 냉소주의를 극복하는 길은 어쨌든 신발 끈을 묶고 달리러 나가는 것이다. 이러한 소소한 승리가 거듭될수록 몸과 마음이 같이 건강해진다.
달리기를 열심히 하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이들은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박사가 말한 '몰입(flow)'을 체험하기 때문이다. 몰입은 어떤 일을 열심히 하는 동안 몸과 마음이 조화롭게 작용하면서 경험하는 최상의 상태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걱정하지 않고 내가 하는 일에 집중하다 보니 실제로는 길었지만 아주 짧게 느껴졌던 시간, 평화로운 마음에 갑자기 쏟아지는 눈물, 해맑은 얼굴에서 느껴지는 행복의 아우라 같은 것이 몰입의 형태들이다.
그리고 자주 몰입하는 사람일수록 더 행복하게, 더 큰 성취감을 느낀다. 그렇다고 달릴 때마다 몰입을 경험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정말이지 달리고 싶지 않은 날도 있다. 그런 날은 쉬어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날(거의 모든 날)은 무조건 밖으로 나가서 달려야 한다. 몰입을 경험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언제나' 달리는 것이 안 달리는 것보다 좋기 때문이다. 달리고 나서 후회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행복한 달리기는 어디에서든 가능하다. 난 여행을 갈 때는 꼭 운동화를 챙긴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먼 북소리>에서 말한다. “여행지에서 그 동네의 길을 달리는 일은 즐겁다. 주변 풍경을 보며 달리기에는 시속 10킬로미터 전후가 이상적인 속도다. 자동차는 너무 빨라서 작은 것을 놓치기 쉽고, 걷기에는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 동네마다 각기 다른 공기가 있고 달릴 때의 기분도 각각 다르다.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반응을 보인다. 길모퉁이의 모습, 발자국 소리, 보도의 폭, 쓰레기 버리는 습관 등도 모두 다르다. 정말 재미있을 정도로 다르다.”
부산 달맞이언덕에서 하룻밤을 머문 적이 있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달맞이 길 동네 한 바퀴만이 아니라 동백섬까지 달려갔다 오니 해운대를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제주도에서는 사려니 숲길을 달렸고, 우포늪도 뛰는 계절마다 맛이 달랐다. 한국에서 마라톤을 함께 뛰었던 동료 사제를 미국 LA에서 만났을 때는 산타 모니카 해변을 같이 달렸다. 동기 신부들과 성지순례를 할 때는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몬주익 언덕을 뛰며 황영조를 떠올릴 수 있었다.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배경이 되었던 케냐의 카렌에서는 케냐 마라톤 선수들이 훈련하는 곳에서 뛴 적도 있었다. 케냐 선수들은 이처럼 해발 1700미터가 넘는 곳에서 훈련하기 때문에 폐활량이 좋고 지구력이 뛰어난 세계적인 선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한번은 동료 사제들과 몽골 여행을 간 적이 있는데 초원에서 달릴 생각으로 운동화를 챙겨갔다. 하지만 달리기 위해 광활한 초원에 서니 어디로 달려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끝없는 초원(‘몽골’이라는 말의 의미) 앞에서 순간 방향감각을 잃고 인간의 미약함을 느끼면서 그냥 멈추고 머물러야 했었다.
달리기는 기도다.
사제로 살아가며 피해 갈 수 없는 어려움, 나 자신에 대한 실망, 사람들에 대한 미움이 쌓일 때는 달려야 한다. 더 힘든 만큼 더 달려야 한다. 내가 느끼는 어려움과 실망, 미움의 크기만큼 몸이 지칠 때까지 뛰고 나면 마음이 한결 부드러워진다. 그래서 나는 앉아서 하는 기도보다 달리면서 하는 기도를 더 좋아한다. 나로 가득 찬 마음과 몸이 달리기를 통해서 땀과 스트레스, 걱정과 미움을 밖으로 내보내면 그만큼의 빈 공간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그 비움이 더 커질수록 하느님과 다른 사람이 내 안에 들어와 더 오래 더 깊게 머무를 수 있다. 조용히 달리면서 내가 어쩔 수 없는 나를 떠나보내고 내 안에 숨어 계시는 그분을 다시 발견하고 그분과 함께 달릴 때 달리기는 묵상이 된다. 달리는 동안 나는 늘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