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피로사회: 달리기는 행복 1

우리가 반복하는 것이 우리가 누구인지 드러낸다. 위대함이란 행동이 아니라 습관이다. 아리스토텔레스


2019년 '살아있는 사람 15'는 청도 반시 마라톤 대회에 참가했다. 아쉽게도 군위 삼국유사 마라톤이 2018년을 마지막으로 없어졌기에 청도 본당 신부님의 전폭적인 도움을 얻어 대구에서 가까운 청도에서 10월 6일 143명의 '살아있는 사람 15'가 모였다. 참고로 청도 반시는 전국에 유일한 씨 없는 감을 말하는데 조선 명종 1년 박호 선생이라는 분이 평해군수로 있다가 귀향 시 그곳의 토종 감나무를 들여와 청도 감나무에 접목한 것이 새로운 품종의 청도 반시가 되었다고 한다. 덕분에 10월의 청도 반시 마라톤 대회는 가을의 붉은 감으로 장관을 이룬다.


"그대가 받은 하느님의 은사를 다시 불태우십시오."(2티모 1,6)라는 주제로 우리에게 주어진 하느님의 은사에 대해 생각해 보고, 우리에게 주어진 큰 책임을 다시 돌아보는 시간이었다. 달리 말하면, “위대한 힘은 큰 책임이 뒤따른다. (With great power comes great responsibility.)" 마라톤을 뛸 수 있다는 것은 큰 힘이다. 그리고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사는 ‘비겁함의 영’이 아니라 이웃과 하느님의 더 큰 영광을 위하여 하느님의 힘에 의지하여 ‘복음을 위한 고난에 동참’해야 한다 (2티모 1,6-8 참조).


1589609314124.jpg?type=w966 살아있는 사람 15, 2019년


사실 위대한 힘은 유력한 사람이 아니라 성실한 사람에게서 비롯되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람 역시 성실한 사람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중심(中心)에 두고 살아간다. 하지만 하느님을 자신의 삶의 중심에 두고 살아가는 사람은 하느님께 진정으로 우러나오는 정성스런 마음으로 충성(忠誠)하는 사람이다. 나는 이것을 마음(心)의 한 가운데(中) 하느님을 두고, 구체적인 현실에서 말씀(言)이신 예수님을 드러내는(成) 삶을 사는 것이라 생각한다. 달리 말하면 중(中)과 심(心)을 합하여 충성할 충(忠)을 만들고, 말씀(言)을 이룸(成)을 합한 참될 성(誠)을 실천하기에 나에게 신앙이란 '하느님께 충성(忠誠)하는 삶'이다. "저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루카 17,10).


아름다운 시월의 가을 하늘 아래 코스모스와 감나무 사이를 뛰면서 살아있는 사람 15는 하느님에게서 받은 은사를 불태웠다.




천주교 신부가 술을 좋아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눈을 크게 뜬다. 만일 그 신부가 직접 자기 방에서 술을 만든다면 어떨까?


"신이 인간에게 내려준 선물 중 포도주만큼 위대한 가치를 지닌 것이 없다." 철학자 플라톤의 말이다. 사실 가톨릭에서 포도주는 중요하다. 예수님께서 최후의 만찬 때 제자들에게 직접 빵과 포도주를 주시며 '당신을 기억하여 이를 행하라.'하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제는 매일 미사를 바칠 때마다 빵과 포도주를 예수님의 살과 피로 여기며 먹고 마신다. 아주 적은 양의 포도주이지만 이것도 못 마셔 금세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는 신부도 가끔 있지만 대부분의 신부는 그렇지 않다.


사제에게 술이란 신자들과의 친교를 위해서도 필요하다. 물론 너무 많이 마시지 않도록 절제하는 것은 본인의 몫이다. 나에게 술이란 친교뿐만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한 것으로,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맥주를 좋아하고 직접 만들어 마신다. 미국 유학시절 전세계 수많은 종류의 생맥주 맛을 보고 즐겼는데 한국에 돌아오니 단 한 종류의 맥주밖에 없었다: 라거(Lager)!


내게 한국 맥주는 몇 십 년을 줄곧 시원한 목넘김, 청량감만을 강조하며 버텨온 것 같았다. 시원한 라거만이 다가 아님을 아는 나는 '목마른 놈이 우물 판다.'고 혼자 맥주를 만들기 시작했다. 자가양조(홈브루잉)는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자가 양조 세트와 맥주 원액을 인터넷으로 구입해서 직접 효모를 넣고 발효시키면 3주 후에는 수제 맥주를 마실 수 있다.


그렇게 2012년부터 맥주를 만들기 시작했고, 2013년에는 살아있는 사람을 위해서LP9(Living Person 9, 살아있는 사람 9)이라는 맥주를 담갔다. 2014년에는 LP10(Living Person 10, 살아있는 사람 10)을 만들어 마라톤 대회 전날 가든파티 때에 마셨다. 호가든이 대표적인 에일(Ale), 흑맥주인 스타우트(Stout), 밀맥주 바이젠(Weizen), 라거 가운데에는 단맛과 쓴맛이 잘 섞인 필스너(Pilsner) 등을 직접 만들어 살아있는 사람의 기운을 북돋았다.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나의 수제 맥주는 일년에 한번 맛볼 수 있는 시그니처 음료가 되었다.


1589461278764.jpg?type=w966 직접 담근 LP10, 2014년


달리는 신부인 내가 맥주를 좋아하는 이유는 맥주가 달리기의 최고 음료이기 때문이다. 1시간을 달리고 돌아와 씻고 직접 만든 맥주를 한 모금 들이켜면 바로 그때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나이가 된다. 달리기로 달궈진 몸에 들어가는 맥주는 그야말로 신이 내려준 최고의 선물 가운데 하나다.


군위 본당 주임신부로 발령을 받고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사제관에서 회의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뻥'하는 폭발음이 났다. 집무실이 물 폭탄에 맞은 것 같았다. 알고 보니 상자에 넣어 발효 중이던 살아있는 사람을 위한 맥주의 내압 페트병이 너무 오래되어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맥주를 좋아하는 신부에게서만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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