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환 추기경님께서는 인생 여정은 머리에서 가슴으로 가는 것이라고 말했는데 사실 거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담론>에서 신영복 선생은 이렇게 말한다. "또 하나의 가장 먼 여행이 남아 있습니다. 가슴에서 발까지의 여행이 그것입니다. 발은 여럿이 함께 만드는 삶의 현장입니다. 수많은 나무들이 공존하는 숲입니다. 머리에서 가슴으로, 그리고 가슴에서 다시 발까지의 여행이 우리의 삶입니다. 머리 좋은 사람이 마음 좋은 사람만 못하고, 마음 좋은 사람이 발 좋은 사람만 못합니다."
발 좋은 사람이 되는 것, 이것이 내가 달리기를 하는 이유다.
하지만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오는데 그렇게 오랜 시간이 필요하듯 가슴에서 발로 가는데에도 그만한 시간이 필요하다.
처음 달리기를 시작했을 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할 일이 없어 그렇게 오래 달리느냐?‘ 혹은 '제정신이냐?’ 같은 비아냥거림의 말이었다. 그렇다. 달린다는 것 자체는 생산적이지도 효율적이지도 않다. 오히려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바보가 하는 일 같다. 그리고 한번 풀코스를 완주한다고 해서, 혹은 개인 기록(Personal Best)을 세운다고 해서 다음에도 그렇게 뛰리라고 보장되지 않는다. 오히려 모든 것을 잊고 새로 시작해야 하는 것이 마라톤이다. 항상 처음부터 다시 준비해야 하는 마라톤, 바보에게 어울리는 일이다.
이렇게 달리는 바보는 처음에는 같이 달리는 사람들과 경쟁하지만 그 다음에는 날씨, 언덕, 기록과 싸우다가 마침내는 자기 자신과 마주하게 된다. 가장 최고의 적은 자기 자신이며, 다른 모든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보통 사람은 관심도 두지 않을 보이지 않는 자신, 현재에 만족하고 안주하고픈 자신을 넘어서기 위해 러너는 목숨을 건다. 이런 사람을 바보라고 부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누군가 같은 자리에 같은 모습으로 안주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도전한다면 그 모습이 때론 고결해 보이지 않을까!
노자는 <도덕경>에서 말했다. "남을 아는 것을 지(智)라 하고, 자신을 아는 것을 명(明)이라 한다. 남을 이기는 것을 유력(有力)이라 하고, 자신을 이기는 것을 강(强)이라 한다." 여기서 지(智)는 외향적 현상을 아는 것이고, 명(明)은 내성적 근원인 도를 살피는 것이다. 남을 이기는 자는 힘이 있다(有力)고 하지만 자신을 이기는 것이 참으로 강(强) 한 것이다(自勝者强). 그래서 노자에게 강함이란 오히려 부드러운 것으로 남과 다투지 않는 것이다. 남과 경쟁하지 않고 오직 자신에게 집중하고 자신을 넘어서기 위해 애쓴다.
예수회를 창시한 이냐시오 성인 역시 자신의 현재에 만족하지 않고 '하느님의 더 큰 영광을 위하여(Ad Majorem Dei Gloriam)'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다. 달리기에는 항상 더 높은 목표가 있다. 최고의 개인 기록을 세웠어도 다음에 더 빨리 달릴 수 있고, 최선을 다해 레이스를 마쳤어도 다음에 더 잘 달릴 수 있다. 모든 일에서 더 높은 목표를 향해 최선의 노력을 바치는 것, 달리기뿐만 아니라 일상을 살아가는 데에도 이와 다른 것이 있을 수 없다.
늘 성장할 수 있는 더 높은 어떤 것을 바라보며 매일 최선을 다해 달리는 바보, 그래서 달리는 바보의 삶은 단순하다. 자신이 세운 더 큰 목표에 비하면 세상의 다른 것들은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톨스토이는 세상 다른 것들과 관계된 모든 것을 '쓸데없는 일'이라고 했다. "참으로 중요한 일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은 모두 그 생활에 있어서 단순하다. 왜냐하면 그들은 쓸데없는 일에 마음을 쓸 겨를이 없기 때문이다."
발 좋은 사람은 이런 생각도 한다. 발을 계속해서 움직이다 보면 가슴으로도 느끼고 머리로도 깨닫게 되지 않을까. 그래서 달리는 사람에게 인생 여정은 발에서 가슴으로, 그리고 가슴에서 머리로 가는 길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여정은 아무리 멀어도 한번에 한걸음씩 가야 한다.
64세의 울트라 마라톤 주자 소렌이 100마일(160킬로미터)을 완주하고 나자, 한 기자가 그에게 '어떻게 그 나이에 100마일을 달릴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대답했다. "나는 100마일을 달리지 않는다. 나는 1마일을 100번 달린다." 한번에 오직 1마일만 초점을 맞추며 달릴 때 그 먼 거리를 달릴 수 있는 것처럼, 달리는 철학자 역시 한번에 한발씩, 한번에 한호흡씩, 한번에 1킬로미터씩 달린다.
"독서는 완전한 인간을 만든다."라고 말한 프란치스 베이컨(Francis Bacon, 1561-1626)의 말을 빌려서 말하면, 달리기는 완전한 인간을 만든다.
그 완전한 인간이란 완벽한 인간이 아니라 부족해 넘어지고 실패하지만 다시 일어나 털고 달려 나아가는 상처투성이인 인간을 말한다. 자신의 한계를 알면서도 그 한계에 계속 도전하기를 포기하지 않는 사람, 그래서 자신에게는 한없이 엄격하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너그러운 사람이 달리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을 조지 쉬한 박사(Dr. George A. Sheehan, 1918-1993)는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그는 가장 부드러운 사람이다. 조용하고 침착하며 좀처럼 말다툼을 하지 않는다. 그는 대립을 피하고 자신만의 세계에 머문다. 그러나 마라톤이 시작되면 그는 호랑이가 된다.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발견하기 위해서 자신의 몸이 감당할 수 있는 끝까지 밀고 간다. 그는 자신을 고통의 가마솥으로 더 깊숙이 밀어 넣는다.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노력이든지 간에 불가피한 것을 가능하게 만든다."
이처럼 러너는 현상을 유지하는데 만족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도전하는 바보다. 남들이 인정하는 위치에 도달해도 편안히 그 자리에 안주하지 못한다. 항상 도전해야 할 것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최고의 몸으로만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정신, 누구나 꿈꾸지만 누구도 쉽게 도달하지 못하는 깨달음, 오로지 달리기가 가르쳐 주는 것이다.
조지 쉬한은 계속 말한다. "많이 달릴수록 더 많이 달리고 싶다. 더 많이 달릴수록 달리기가 주는 깨달음과 가치, 매력을 가진 삶을 더 깊이 살 수 있다. 그리고 더 많이 달릴수록 나의 진정한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더 확신할 수 있게 된다. 그것은 온전한 나 자신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