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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법(落法)

제대로 실패하는 법

얼마전 전국 가톨릭계 12개 대학이 공동으로 설립한 <한국 가톨릭 교양 공유대학>에서 가장 인기 있는 과목 중 하나가 '잘 실패하는 법'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렇다. 사람은 실패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그 실패를 견뎌내고 이왕이면 잘 실패한다면 성공으로, 더 나은 인간으로 성장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오늘도 실패했다. 덕분에 조용히 앉아 먼 길을 동반한 정호승의 시집을 펼친다. 시인은 말한다.


"내가 당신에게 배운 

가장 소중한 가르침은 낙법이었다 

당신이 당신의 생애 전체를 기울여 

나를 메치고 바닥에 내동댕이치고 

어두운 골목길에 쓰러뜨리고 

벼랑 아래로 힘껏 떠밀어버린 것도 

결국은 나에게 낙법을 가르치기 위함이었다 

넘어지면 넘어지면 되고 

쓰러지면 쓰러지면 된다는 것을 

새가 바람에 자신을 맡기는 것처럼 

기차를 타면 기차에 나를 맡기는 것처럼 

넘어지면 넘어진 곳에 

쓰러지면 쓰러진 곳에 나를 맡기면 된다는 것을 

진실로 가르치기 위함이었다 

그리하여 넘어져도 제대로 넘어지는 법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는 법을 배우는 데에 

내 존재를 다하여 

나는 가난한 당신의 사랑이 필요했다" (낙법(落法) 전문)


그러고보니 나는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내내 학교에서 유도를 배웠다. 넘어지거나 떨어질 때 몸을 둥글게 해서 충격을 완화하는 법을 오래전부터 배웠다. 그래서일까, 예전에 술을 먹고 취해서 2층 계단에서 굴렀는데 낙법을 해서 하나도 다치지 않았었다.


시인은 말한다. '실패는 나의 애인이다 / 결코 나를 사랑하지 않는 애인이다...실패는 이제 나다 / 사랑하지 않는 애인도 애인이다 / 실패한 사랑도 사랑이다'


결코 나를 사랑하지 않는 애인도 애인이며, 실패한 사랑도 사랑이라는 말이 맞다.




매일 먹고 마시면서도 무얼 먹고 마실까 걱정하고, 제 한 몸 어쩌지 못하면서도 다른 사람들은 이렇네 저렇네 하고 말하는 나에게 슬픈 시간은 '자신이나 좀 알아라' 하면서 다가온다. 그래서 시인이 노래하는 '일몰'이 와 닿는 것 같다.


"일몰의 아름다움이 없으면 

일출의 아름다움 또한 존재하지 않으므로 

일생에 단 한번 일몰의 아름다움을 위해 두 팔을 벌린다 


오늘도 당신을 기다리는 일몰의 순간은 찬란하다 

결국 모든 인간이 아름다운 까닭은 

일몰의 순간이 아름답기 때문이다"


남에게 드러내고 자랑하고 인정받고 싶은 나는 일출을 사랑하지만 때가 오면 일몰을 보고 그 아름다움을 감상할 줄 알아야 하는 것은 숙명과 같은 것이다. 


아니라곤 하지만 찾아오지 않는 사람을 기다리고 걸려오지 않는 전화기를 바라보며 혼자 속만 태우는 것 역시 아직도 일출을 바라며 살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일몰은 조용히 혼자서 온전히 태우면서 낙법을, 사람이 무엇인지를 내게 가르치고 있는 것 같다.


니체는 말하지 않았던가. "인간은 가장 잔인한 동물이다. 동시에 인간은 살도록 격려받아야 하는 유일한 동물이다."


사는 것은 격려받는 일이다. 시로 격려받고 고독으로 위안받고 글로 치유받는 것이다. 


길을 지나치는 사람의 친절한 눈빛 하나만으로도 사람은 격려받는다. 숲속길을 걷다가 만난 노루가 잠시만 쳐다봐 주어도 특별함을 느끼는 것이 인간이 아닌가.


시인의 마치는 시 '새해의 기도' 마지막 구절을 나의 기도로 바친다.


"올해도 저에게 상처 준 자들을 용서하게 해주세요 

용서할 수 없어도 미워하지는 않게 해주세요 

그렇지만 용서할 수 없을 정도로 상처받지 않게 해주소서 

무엇보다 저 자신을 용서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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