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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신부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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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로 내어주는 삶

감사와 찬양의 시간

영화 <어바웃 타임>이 자꾸 떠올랐다. 남녀의 사랑이야기를 아름답게 그려 놓았기도 했지만 결혼식날 엄청난 비바람이 쳤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름답고 평화롭던 날씨가 혼인 당일날 천둥번개를 동반한 폭우로 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답고 행복한 날이 될 것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아침 일찍 마크와 함께 Eno River State Park를 찾았다. 혼인식이 오후 4시이기에 오전에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가 같이 숲속에서 트레일 러닝(Trail Running)을 하기로 했다.


조용한 숲속에서 흐르는 강물을 따라 달리기를 하고 있으니 원시림으로 사냥을 나온 인디안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날 산 새 러닝화와 파타고니아 트레일 러닝 셔츠를 같이 입고 7마일(11킬로)을 달렸다. 마지막에는 비까지 내리기 시작해 숲속 우중러닝이 한결 운치가 있었다.


마크와 트레일 러닝 후에

점점 더 내리기 시작하던 비는 나중에 억수같이 내리다가 오후 들자 개이기 시작했다.


곱고 멋있게 차려입은 사람들이 속속들이 모이고 혼인식이 시작되었다. 나는 Emily와 Brent를 위해 기도하고 축복하면서 강론 시간에 말했다.


“혼인은 서로에게 선물이 되어주는 것입니다. 자신의 몸을 내어준 예수님처럼 배우자를 위한 선물로 자신을 내어준다면 남편이자 아내, 더 나아가 한 인간으로서도 거룩함으로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서 한국에서 수녀님께 부탁해 만들어 온 '혼인 초'를 소개했다. 이것은 결혼 기념 장식품이 아니라 혼인 생활 중에 더 사랑하거나 더 미안한 누구라도 혼인 초에 불을 켜면 상대방은 그 초 앞에 와 앉아 조용히 배우자의 이야기를 끝까지 듣겠다는 약속을 하게 한 나의 결혼 선물이었다.


부부가 서로 잘 소통하고 이해하는데 꼭 필요한 선물이 되기를 바라며 혼인 초를 다 쓰면 언제든지 다시 보내주겠다고 약속했다.


이어진 웨딩 파티는 이백여명의 손님들이 함께 한 성대한 잔치였다. 부모님, 신랑 신부 들러리의 건배사, 그리고 이어진 댄스 파티까지 손님 하나하나가 신랑 신부와 축하를 나누고 마련해 온 카드와 선물을 나누는 흥겨움과 축복의 순간이었다.



주일 아침 일찍 일어나 길을 나선다. 상쾌한 바람과 맑은 공기, 길에서 만난 노루로 노스 캐롤라이나 대학 뉴먼 성당에 주일 미사를 참여하러 가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대학생들 뿐만 아니라 지역 주민들이 함께 한 미사에서 전례 음악은 아름다웠고 말씀은 힘있게 선포되었고 주례 사제는 제자들이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만난 예수님을 잘 드러내 보여 주었다.


세상 어디서도 이렇게 같은 말씀과 성찬례로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고 예수님의 몸과 피를 나누어 마실 수 있음이 감사했다.


이제 막 부부로서 새로운 길을 걷기 시작한 Emily와 Brent를 위해 기도했다. 그리고 늘 부족하지만 사제로서 걷는 이 길에 대한 감사와 은혜가 찬양의 노래가 되어 내 입에서 흘러나왔다. 알렐루야!


노스 캐롤라이나 뉴먼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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