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장례미사
저는 고인이 되신 김창남 사도요한 아버님의 둘째 아들 김성래 하상바오로 신부님의 동기 신부이고 신학교에서 소임을 맡고 있습니다. 제가 아버님 마지막 가시는 길을 잘 배웅해드릴 수 있도록 주님께 은총과 힘을 청합니다.
저희 동기 신부들 나이가 이제는 부모님들을 한분 두분 떠나보낼 준비를 해야한다는 생각이 깊어지는 인생의 계절에 아버님의 장례를 맞게 된 것 같습니다.
장례식장에서 김성래 신부님과 둘이 이야기를 좀 나누었는데요, 미국에서는 아들 신부가 부모님의 장례미사 때 직접 강론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 신부님도 그런 마음을 예전에 먹었었는데, 막상 이런 순간이 닥치니까 용기가 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대신 신부님의 마음과 하고싶은 이야기들을 담아서 대변인 역할을 하겠습니다.
우리 하상바오로 신부님이 당부하신 것이 있습니다. 이 장례미사가 너무 슬픈 것이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느님 아버지 집으로 함께 잘 배웅해드리고 좋은 기억을 간직하고 남아있는 사람들은 용기와 힘을 얻는 자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틀 전 일찍은 아침 사도 요한 아버님께서는 부산에서 대구로 심장 검진을 받기 위해 직접 차를 운전해오시다가 청도 휴게소에서 갑자기 심장에 큰 문제가 생겨 숨을 거두시게 되었습니다. 사실 아버님은 이미 34년 전에 심장 판막 수술을 받으셨고 심장 기능이 점점 떨어져 2년 전에는 15-20 프로 정도만 기능을 하고 있다고 진단받으셨습니다. 그래서 아버님 당신도 또 가족들도 이런 식일줄은 몰랐지만 언젠가 마지막 순간이 찾아오리라고 마음의 준비를 조금은 하셨던 것 같습니다.
김성래 신부님은 저희 동기들 중에 사심없는 ‘헌신’, ‘진심’이라는 말이 제일 잘 어울리는 분입니다. 이 모습이 아버님이라는 좋은 나무에서 맺힌 좋은 열매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신부님이 떠올리는 아버지의 이미지는 이렇습니다. 김창남 사도요한 아버지는 우리 세대 전형적인 경상도 남자입니다. 해방 후 45년에 풍기에서 태어나 대구로 오셔서 자수성가한 분입니다. 자기 일은 열심히 하지만 속내는 드러내지 않는 사람, 자기를 위해서는 별로 한 것이 없고. 언제나 일과 가족들만을 위해 헌신하셨던, 늘 말없이 투신하셨던 아버지입니다. 당신을 위한 취미는 하나도 만들지 못했으면서 이웃과 가정에 참으로 성실하셨던 분입니다. 그러니 이제는 우리 시대 점차 사라져가고 있는 아버지의 상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김성래 신부님은 아버님께 이런 작별 인사를 남깁니다.
아버지, 죄송합니다. 제가 신부인데도 아버지의 신앙 생활을 도와드리는 것이 언제나 미흡했음에, 또 자식의 도리를 다함에도 언제나 부족했음에 죄송합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10년 동안 동생 집에서 지내셨는데 저는 늘 멀리 있었고 마음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나빠진 심장으로 지탱하고 인내해오신 긴 세월에 경의를 표합니다. 노년에도 동생의 회사에 함께 출근하셔서 작은 일들을 도와주셨던 그 소박한 일상들에 감사드립니다. 제가 군위본당에 있을 때 그곳에 오시는 것을 좋아하셨던 당신을 기억합니다. 가족여행을 갈 때면 저와 한방에서 주무시면서 소곤소곤 대화를 나누었던 당신을 기억합니다. 어린 시절 저희 다섯 식구를 낡은 포터에 태우시고 고향을 찾아가며 즐거워하셨던 당신을 기억합니다. 우리와 함께 해주셨던 특별하지는 않았지만 고요히 스며드는 선물 같았던 당신의 온 생에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하상바오로 신부님은 남은 가족분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어합니다. “우리가 좋은 가족이 된 것은 모두가 아버지 어머니라는 튼튼한 뿌리에 빚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남은 형제들이 두 분을 잘 기억하고 간직하면서 화목했으면 좋겠습니다. 끝으로 10년 동안 아버지를 보살펴주신 동생과 제수씨에게 참으로 고맙다는 인사를 전합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는 현재 머무르고 있는 어떤 집에 살고 있지만 궁극적으로 하느님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는 여정 중에 있습니다. 아버지의 집이 어떤 곳일까 그려봅니다. 그 집은 분명 지금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집과는 다른 차원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성경에서 아버지 집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해 줍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의 이 지상 천막집이 허물어지면 하느님께서 마련하신 건물 곧 사람 손으로 짓지 않은 영원한 집을 하늘에서 얻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압니다. 이 천막집에서 우리는 탄식하며, 우리의 하늘 거처를 옷처럼 덧입기를 갈망합니다.” (2코린 5,1-2)
묵시록은 또 이렇게 증언합니다. “보라, 이제 하느님의 거처는 사람들 가운데에 있다. 하느님께서 사람들과 함께 거처하시고 그들은 하느님의 백성이 될 것이다. 하느님 친히 그들의 하느님으로서 그들과 함께 계시고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다. 다시는 죽음이 없고 다시는 슬픔도 울부짖음도 괴로움도 없을 것이다. 이전 것들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묵시 21,3-4)
우리는 이 지상 천막집에서 무수한 결핍들을 경험합니다. 최선을 다해서 사랑하려고 노력하지만 그 사랑이 완벽한 형태로 이루어지지 않음을 체험합니다. 심지어 가족끼리의 사랑도 어떤 결핍을 겪습니다. 선을 행하고자 하지만 오해와 조롱을 받기도 하고, 진리를 지키고자 하지만 늘 악의 그림자가 공격합니다.
기도는 또 어떻습니까? 간절하게 하느님을 뵙고 싶지만 우리의 연약함이 발목을 잡을 때가 많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을 직접 뵙기 전까지는 어떤 가리움 속에서 그분을 만나고 있다는 애타는 그리움이 우리를 탄식하게 만듭니다. 이 모든 무수한 결핍들이 하느님 안에서 완벽하게 채워지는 곳 그곳이 바로 아버지의 집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누릴 충만함은 이 지상에서 우리가 맺어왔던 관계들과 전혀 상관없는 차원에서 진행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곳은 우리가 함께하는 가족들과 여러 이웃들 사이에서 최선을 다해 선과 사랑과 믿음의 길을 달렸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는 여정에서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했던 한계와 제약들이 아버지의 사랑과 생명 안에서 하느님만이 아시는 지극히 자비로운 방식으로 모두 채워지는 곳입니다.
이 아버지 집이 주는 깊은 위로와 희망에 사도요한 아버님을, 그리고 우리의 여정을 맡겨드립시다. 마지막으로 가수 김윤아가 불렀던 고잉 홈(Going Home)이라는 노래를 조금 개사해서 사도요한 아버님께 작별 인사로 드리고 싶습니다.
내일은 정말 좋은 일이 / 당신에게 생기면 좋겠습니다.
묵묵히 모든 것을 지고 끌어안고 살아오셨던 당신에겐 자격이 있으니까요.
이제 모든 짐을 벗고 행복해지시길
사랑했고,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을 그분을 만나 함박웃음 지으시기를
나는, 우리는 간절하게 소원해 봅니다.
동기 정창주 프란치스코 신부님의 장례미사 강론입니다. 제가 했어도 이보다 더 나을 수 없을만큼 깊이있고 사랑스럽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프란치스코 신부님에게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