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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교의 오후

교황주일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가 위기의 시대라는 점에서 우리는 모두 동의할 것 같습니다. 코로나, 전쟁, 환경파괴, 기후변화 등을 겪으며 우리는 시련을 겪고 있습니다. 더 안타까운 점은 이런 어려움의 시기에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잘 알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코로나로 인한 신자 수의 감소만이 아니라 탈종교화, 세속화가 가속화되고 있는 교회는 위기의 시대를 보내고 있습니다. 


토마시 할리크 사제는 이러한 상황을 '그리스도교의 오후'라고 합니다.


인간 삶의 오후, 인류 역사의 오후, 그리스도교의 오후는 분명 아침의 활력과 비전, 희망을 잃어버린 듯 합니다. 수많은 위기는 오랜 역사적 확실성의 위기 뿐만 아니라 진리와 신앙의 위기를 불러 일으키고 있습니다.


한낮의 게으름과 지루함, 우울과 소진으로 대변되는 정오의 위기를 거치며 우리는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선택해야 할까요? 어떻게 이 위기를 오후의 성숙과 새로운 비전으로 이끌 수 있을까요?


오늘 예수님은 그 해답을 제시합니다.


"제 목숨을 얻으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고, 나 때문에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마태 10,39).


예수님 시기의 사람들 역시 위기의 시대를 살고 있었습니다. 로마의 압제하에서 사회는 혼돈에 빠져 있었고 하느님은 멀게만 느껴졌고 누구도 희망을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새로운 삶'을 보여 주셨습니다.


오늘 사도 바오로의 말씀을 빌리자면, "과연 우리는 예수님의 죽음과 하나 되는 세례를 통하여 그분과 함께 묻혔습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영광을 통하여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신 것처럼, 우리도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로마 6,4).


그리스도인으로 받아들인 새로운 삶은 우리가 예수님의 죽음과 하나 되는 세례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럼으로 우리는 그분과 함께 죽어야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죄에서 죽고 예수님 안에서 하느님을 위하여 사는 것입니다(로마 6,11 참조).


그렇다면 다음 질문은 우리가 죄에 대해서 죽고 있는가, 예수님 안에서 하느님을 위하여 사는가 하는 점입니다.




그동안 우리는 신앙을 종교적 확신, 변하지 않는 진리, 곧 우리가 주일마다 고백하는 신조(Belief)로 여겨 왔습니다. 하지만 신앙(Faith)이란 그보다는 삶의 태도, 지향, 우리가 세상에 존재하고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으로 예수님 가르침의 핵심인 변화와 회심, 즉 메타노이아(Metanoia)에 대한 우리의 응답입니다.


어떻게 신뢰와 용기, 사랑과 신의를 가지고 그리스도를 따르고 있는가 하는 매일 매순간의 선택과 움직임에 관한 것입니다.


그동안 종교(Religion)가 세상과 우리를 구분짓고 분리시키는 경계의 역할을 했다면 그리스도교의 오후에는 분열의 시대에 가장 필요한 '다시 결속하고(religare)', '다시 읽는(religere)' 종교 본연의 새로운 독해 공동체를 만드는 일을 해야 합니다.


가톨릭주의를 벗어나 진정한 의미의 가톨릭, 곧 보편적 예수님의 가르침인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에 다시 모든 정신과 마음과 힘을 모아야 함을 뜻합니다.


이는 그리스도인의 삶이 세상 사람들과는 다른 영성을 가진다는 것을 뜻합니다. 신앙생활의 스타일에 있어 신앙과 삶이 분리되지 않는 것입니다. 자신의 삶에서 활력과 매력을 드러내는 '살아있는 그리스도인(Living Christian)'이 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할 때 그리스도교의 오후는 저녁의 몰락 혹은 죽음이 아니라 성경의 시간 개념에 따라 새로운 하루의 시작으로 저녁 하늘에 첫 별이 뜨는 순간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중대한 기로에 서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혼자가 아닙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 같은 훌륭한 목자를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교황주일을 맞이한 오늘, 우리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을 위해 기도하면서 교황님의 말씀과 행동을 우리의 말과 행동의 기준으로 삼고 그대로 실천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저는 어제 아버지 장례미사를 치루었습니다. 장례기간 내내 연도하러 오는 사제들과 신자들을 맞이하면서 신앙 없이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을까, 하느님께서 보내신 사람들 없이 어떻게 이 시간을 견뎌낼 수 있을까 묻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사랑은 누군가가 있는 그대로 존재하기를 바라는 것이라 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예수님을 보내시어 그 사랑의 가장 고귀한 모습을 보여주십니다. 우리도 누군가에게 그 사랑을 보여주며 함께 견디며 매일의 충실한 삶으로 그리스도교의 오후를 맞이해야 하겠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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