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사람은 몸이다 2

몸은 이야기를 한다. 우리의 몸은 자신이 누구인지 말해준다. 부모가 누구인지, 어디서 어떻게 성장했는지, 건강한지, 그리고 얼마나 살 수 있는지까지 몸은 말하고 있다. 다만 몸에 주의를 기울이는 사람만이 그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몸처럼 우리 존재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 없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몸이란 자동차와 별반 다르지 않다. 그저 필요할 때마다 잘 쓰고, 고장과 사고 없이 오래 유지, 관리하면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기 위해 좋고 특별하게 보이도록 만드는 데에만 관심이 있다.


재미있는 것은 우리 몸에서 가장 큰 기관인 피부의 바깥 표피는 각질층인데 전부 죽은 세포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가 그토록 잘 보이고 싶어 하는 것, 우리를 사랑스러워 보이게 하는 것이 모두 죽은 것이라니 흥미롭지 않은가. 이 바깥 피부세포들은 매달 교체되는데 1분에 약 2만 5천 개, 즉 1시간에 100만 개가 넘는 피부 조각이 떨어져 나간다. 손가락으로 책꽂이에 내려앉은 먼지를 죽 훑으면 대부분 한때 자신의 몸이었던 것의 잔해일 것이다.


우리는 소리 없이 그리고 냉혹하게 먼지로 변해간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무지한 가운데 속은 외면한 체 겉만 꾸미며 안은 모른 체 밖만 아는 척한다. 정말 뼛속까지야 알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몸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서는 자신을 안다고 말할 수 없다.




구원 역시 몸에서 시작된다. 베네딕도 16세 교황님은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에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리스도의 찔린 옆구리를 바라볼 때 우리는 비로소 하느님은 사랑이심을 깨닫게 됩니다. 바로 거기에서부터 사랑에 대한 우리의 정의는 시작되어야 합니다."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님의 옆구리, 바로 그곳에서 우리는 하느님께서 당신의 하나뿐인 아들의 살과 피를 우리를 위해 내어주심을 목격했다. 바로 그곳에서 우리는 참된 사랑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성경은 말한다. "그분께서 우리를 위하여 당신 목숨을 내놓으신 그 사실로 우리는 사랑을 알게 되었습니다"(1요한 3,16). 구원을 가져다주는 사랑(LOVE)은 실재했던 한 사람의 몸을 통해 우리에게 주어졌으며, 우리 역시 사랑(love) 하라고 주어진 몸을 가지고 있다.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 주는 내 몸이다"(루카 22,19).


예수님의 삶은 이 한 문장에 담겨있다. 예수님은 자신의 몸을 우리를 위하여 내어 주신 '하느님의 어린 양'이시다. 그분께서는 자신의 몸을 통해 당신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다. 바오로 사도는 증언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에 오실 때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당신께서는 제물과 예물을 원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저에게 몸을 마련해 주셨습니다...보십시오,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려 왔습니다.'하고 말씀하십니다...이 '뜻'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단 한 번 바쳐짐으로써 우리가 거룩하게 되었습니다"(히브 1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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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St. Pope John Paul 2, 1920-2005)은 이것으로 예수님께서 '몸의 언어'를 완성하신다고 말씀하신다. 자신의 몸을 완전히 내어 주심으로써 세상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을 드러내고, 인간에게 자신이 누구인지, 그리고 삶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는 사랑의 길을 열어 주신 것이다.


"인간은 자기 자신을 성실하게(아낌없이) 선사하지(내어주지) 않으면 자신을 완전히 발견할 수 없다."


이렇게 자신의 몸을 타인을 위해 내어줄 때에야 인간은 참된 자신이 누구인지 깨닫게 되며, 몸과 영혼이 함께 구원받을 수 있다.


자기 자신을 타인을 위해 기꺼이 내어주는 행위는 성체성사 안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매일 성체성사 안에서 기꺼이 내어주시는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것은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중요한 삶의 요소다. 성체성사를 통해 영혼을 위한 일용할 양식을 얻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영적인 차원에만 머물면 성체성사의 완성에로 나아갈 수 없다. 영과 육, 마음과 몸의 일치가 진정한 삶이며, 사랑이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아들이 무릎을 꿇고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신 것처럼 구체적인 현실이기 때문이다.


자신을 내어주는 사랑은 입이 아니라 심장에 가깝고, 말이 아니라 행동에 달려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몸을 받아 모시는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몸으로 예수님처럼 살아가도록, 곧 그분처럼 변화되도록 초대받고 있다. 살아있는 사람이 달리기를 통해서 자신의 몸을 이웃을 위해 내어주는 것 또한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성체성사의 삶을 사는 것이다.


그렇게 성체성사 안에서 창조주의 선물인 예수님의 몸을 받아 모시고, 변화된 자신의 몸을 타인을 위해 내어주면 자신의 몸이 하느님께서 머무시는 곳, 곧 '성령의 성전'임을 깨닫게 된다. 바오로 사도는 말한다. "여러분의 몸이 여러분 안에 계시는 성령의 성전임을 모릅니까? 그 성령을 여러분이 하느님에게서 받았고, 또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의 것이 아님을 모릅니까? 하느님께서 값을 치르고 여러분을 속량해 주셨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의 몸으로 하느님을 영광스럽게 하십시오"(1코린 6,19-20).




사람은 몸이다. 몸 없이 마음만으로 되는 일은 없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몸은 돌보지 않고 불안한 마음만 계속 바라보며 힘들어하고 실망하고 절망한다.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자라듯이 먼저 자신의 몸에 귀를 기울이고 몸을 잘 돌보는 것은 고결한 정신을 지니기 위한 첫걸음이다. 그 과정에서 달리기와 같은 운동은 몸에 꼭 필요한 일이다.


더 나아가 몸이 느끼는 모든 것, 그 가운데에서 제대로 살아있기 위해서 피할 수 없는 고통을 통해서 삶의 의미와 구원의 신비를 깨닫는다면 몸은 바로 구원의 시작이 된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셨듯이 우리도 누군가를 위해 내어 줄 몸이 있다. 그 몸으로 자신을 바쳐 이웃에게 사랑을 보여주고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다. 몸은 사람을 구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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