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살아있는 사람(Living Person) 1

살아있는 사람은 하느님의 영광입니다. (The glory of God is the living person.) 이레네오 성인


지금까지 십오년 동안 있었던 살아있는 사람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생각할수록 살아있음은 당연한 것이 아니다. 심장이 뛰고 냄새를 맡고 하늘을 보고 새소리를 듣고 호흡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살아있는 존재에게만 주어진 특별한 것이다. 유기체인 몸이 어느 한 부분이라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당연한 것 같은 살아있음은 유지되기 어렵다. 손톱에 가시라도 하나 박히면 도대체 다른 것을 생각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은 살아있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심장은 영원히 뛰고 몸은 원하는 대로 계속 제 기능을 할 것처럼 산다. 그런 사람들, 곧 살아있지 않음을 생각해 보지 않은 사람들에게 '살아있는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기는 쉽지 않다.


2005년 처음 마라톤을 준비할 때, 이레네오 성인의 말씀을 읽고는 내가 갈 길은 바로 살아있는 사람임을 깨달았다. 마라톤을 통해 몸이 살아있음을 느끼고, 거기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남을 위해 땀을 흘릴 때 살아있는 사람은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목표까지 가지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길에서 더 깊고 더 진하게 살아있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그들은 나에게 영감을 불러일으켰으며 살아있는 사람이 자라도록 도와주었다. 제때 제대로 살지 못하고 죽은 듯 사는 많은 사람들 가운데 그들은 자신의 자리에서 죽을 듯 살며 '살아있음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하고 말해 주었다.


지미(Jimmy Menkhaus)라는 친구를 존 캐롤 대학에서 만났다. 그는 박사과정에 있던 강사로 철학과 신학을 가르칠 뿐만 아니라 교목실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교목 신부인 나와는 친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몸이 좀 약해 보일 뿐 적극적으로 살아있는 사람에 참여해 잘 몰랐는데 나중에 그가 낭포성 섬유증(Cystic Fibrosis)이라는 희귀성 난치병을 앓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지미는 조금만 뛰어도 얼굴이 붉어지며 숨이 찼고 가래가 자주 끓었다. "Fr. H.Paul, 한때는 서른 살도 못 넘길 것이라고 했다는데 지금은 마라톤을 뛰고 있다니 대단하지 않나요?“하며 나를 보며 이야기할 때는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1589609716282.jpg?type=w966 지미(Dr. Jimmy Menkhaus), 2011년


지미는 남보다 느렸지만 어떻게든 계속해서 달렸고 몇 번의 하프 마라톤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그러더니 2011년 '살아있는 사람 7'로 풀코스 마라톤에 도전했다. 모두의 걱정과 염려를 뒤로하고 지미는 풀코스를 남들처럼 완주하고는 말했다. "풀코스는 다시는 못 뛸 것 같아!" 지미는 나를 '달리는 신부'라는 뜻의 Running Father이라고 불렀고 나는 그를 '달리는 박사'인 Running Doc으로 불렀다.


지미는 이제 다른 곳에서 신학을 가르치면서 학생들과 함께 매년 디트로이트에서 열리는 'Rock CF(Cystic Fibrosis) Rivers Half Marathon'을 살아있는 사람으로 뛰고 있다. 이 대회는 낭포성 섬유증을 알리고 치료비를 모으기 위해 마련된 대회다. 자신도 난치병 환자이면서 다른 아픈 이를 위해 매년 죽을 힘을 다해 하프 마라톤을 뛰는 '달리는 박사 지미'(Jimmy the Running Doc)는 진정 살아있는 사람으로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있다.




한국에서 만난 살아있는 사람들 가운데 내가 같이 뛰리라고 상상한 해 본 적이 없었던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수녀님들이다. 처음에는 젊은이들과 함께 하는 뜻으로 참석한 수녀님들이 매년 늘어갔다. 2014년 7명, 2015년 17명으로 늘었고 그 가운데 세 분은 하프 마라톤을 완주했다. 수도복을 입고 마라톤을 뛴다는 것 자체가 놀라울 뿐인데 그것도 하프 마라톤까지 뛰는 것을 보며 참으로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부끄러워서’, ‘시간이 없어서’, ‘장비가 갖춰지지 않아서’ 뛰지 못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수녀님들의 달리는 모습은 놀라움과 영감을 불러일으킨다. 머리에 베일을 쓰고 전통적인 수도복을 그대로 입은 채 달리는 모습만이 아니다. 공동체 수도생활 가운데 따로 연습할 시간을 내기도 어렵고 시간이 있어도 마음대로 뛰러 나갈 수도 없다. 제대로 된 신발 하나라도 갖추면 그것이 전부인 수녀님들은 달리기는 능력이 아니라 마음의 문제이며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1591342363090.jpg?type=w1 하프마라톤을 완주하는 아눈시앗따 수녀님, 2015년 제주국제마라톤


그들 내면에 담긴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의 열정은 흔히 세속적인 방법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지만 달리는 수녀님들을 보며, '달리기 선수에게 마라톤은 종교가 아니다. 그것은 일과 놀이, 사랑과 종교를 함께 가져오는 종교적 행위'임을 깨달을 수 있었다. 수녀님들의 달리기에 대한 열정은 거룩한 종교적 행위로써 복음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쳐 뛰었던 바오로 사도를 떠올리게 만든다. 달리는 수녀님들은 복음의 선포자로서 모든 이의 모든 것이 되기 위해 자신을 바치고 시대의 징표를 읽고 거기에 발맞춰 뛰려는 창의성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가난한 어린이들과 하느님에 대한 사랑을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들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세상 끝까지 달려간 바오로 사도의 살아있는 제자들이다.


성경에 나오는 마리아와 마르타 이야기(루카 10,38-42 참조)가 생각난다. 예수님 발치에 앉아서 그분의 말씀을 듣는 마리아와는 달리 마르타는 시중드는 일로 분주했는데 아무것도 안하는 동생을 보다가 참다 못한 마르타가 예수님께 말한다. "주님, 제 동생이 저 혼자 시중들게 내버려 두는데도 보고만 계십니까? 저를 도우라고 동생에게 일러 주십시오." 그때 주님께서 마르타에게 말씀하신다. "마르타야, 마르타야! (두번이나 부르시며 아끼는 마음을 드러내신다)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가지 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했다. 마르타 역시 필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다만 마리아가 선택한 몫을 빼앗아서는 안되며 존중해 주어야 한다. 달리는 수녀님들을 보며 '마르타 같은 마리아'를 떠올린다. 열정으로 땀을 흘리지만 침묵의 아우라가 느껴지는 수녀님,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수도자다. 수녀원에 갇혀 세상과 담을 쌓은 마리아나 세상과 동떨어진 일에 늘 바쁜 마르타가 아니라 마리아와 마르타가 함께 녹아 든 수도자가 필요하다. 세상으로 나와 사람들과 함께 뛰는 마르타의 열정 안에서 고요하면서 깊은 마리아의 사랑이 느껴지는 수도자, 바로 내가 만난 달리는 수녀님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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