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혼자 꾸는 꿈은 그저 꿈으로 남지만,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 존 레넌
수잔 보일(Susan Boyle)이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한국의 '슈퍼스타 K'와 같은 영국의 노래 경연 대회에 나온 사람인데 처음에 그녀가 무대에 섰을 때 심사위원들과 관객들은 약간 당황한 표정이었다. 얼굴도 못 생겼고 옷도 어울리지 않는 스코틀랜드 출신의 노처녀, 특별한 직업도 없이 아흔이 넘은 노모를 홀로 돌보며 동네 성가대에서 활동하는 열심한 가톨릭 신자인 그녀는 거친 억양으로 '남자에게 한번도 키스를 받아본 적이 없다.'라고 해서 다시 사람들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그런 그녀가 뮤지컬 레미제라블의 "I dreamed a dream(난 꿈을 꾸었죠)."이라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자 순식간에 모든 사람들이 넋을 놓고 놀라워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마치 천사처럼 우아하고 달콤했기 때문이다. 이제 수잔 보일은 엘리자베스 여왕 앞에서 노래하고 자신의 음반을 낸 세계적인 스타가 되었다.
그녀를 응원하는 수많은 사람들은 그녀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본 것은 아닐까. 외모와 말투에 따라 재능없고 볼품없게 보였던 그녀, 배우자나 직업, 사는 곳에 따라 사람을 판단하는 세상에서 그녀의 목소리는 우리 모두에게 자기다움은 계속 지켜야 하는 소중한 것임을 보여주었다. 그녀의 목소리를 통해서 우리가 보았던 것은 그녀 내면의 아름다움만이 아니라 우리 각자의 꿈 또한 아름답고 독특하고 가치있음이었다. 그녀의 성공은 바로 우리의 성공이다.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각자의 꿈을 함께 꾸게 될 때 그것은 현실이 된다. 살아있는 사람이 함께 꾸는 꿈은 현실에서 이렇게 자라난다. 매년 살아있는 사람이 달릴 마라톤 대회가 결정되면 4-5개월 전에 예전에 함께 했던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그해의 주제와 함께 초대의 이메일을 보낸다. 군위 성당 본당신부로 부임해서 처음으로 달렸던 2018년 군위 삼국유사 마라톤의 '살아있는 사람 14'의 주제는 김수환 추기경님의 말씀, '서로 밥이 되어주십시오.'였다. 김수환 추기경님 생가와 '김수환 추기경 사랑과 나눔 공원'이 있는 군위에 딱 어울리는 주제였다.
이렇듯 일년에 한번 살아있는 사람은 모여서 달리고 감사미사를 드리고 후원금을 봉헌한다. 봉헌된 후원금은 가난한 어린이들을 위해 미국에서는 마다가스카로 보냈고, 한국에서는 볼리비아와 중앙아프리카공화국으로 보낸다. 지금까지 십오년 동안 모금한 후원금은 모두 1억 4천 5백여 만원에 이른다. 그렇게 후원금을 보내면 선교지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제는 사진과 함께 감사의 편지를 보내오는데 그 가운데 하나를 소개하고 싶다.
"살아있는 사람들", 아니 "살아있기에 아름다운 사람들"께 드립니다.
특별하고 아름다운 취지로 마음을 모아 준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 인사드립니다. 저는 볼리비아 산타크루스에서 선교 6년 차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허진혁 바오로 신부입니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볼리비아에 있는 저희 여덟 명의 대구대교구 사제들은 다시 한번 깜짝 놀랐습니다. 한 번의 아름다운 이벤트로 끝이 날 줄 알았던 '살아있는 사람' 프로젝트에 올해도 이렇게 많은 분들이 동참해 주셨습니다. 함께 하신 모든 분들이 이를 악물고 그 먼 길을 내달리셨을 텐데, 한 분 한 분 어떤 마음이었을까…생각하면 가슴이 뭉클합니다. (중략)
지난번에 보내주신 2017년 후원금 나눔의 주인공의 사연을 소개해 드리고 싶습니다. 저희 본당에는 작년에 첫 영성체를 받은 파브리시오라는 아이가 있는데, 그 가족 친지들이 본당에서 열심히 봉사하는 아름다운 성가정의 아이입니다. 그런데 며칠 전에 끔찍한 교통사고가 나서 병원 중환자실에 급하게 이송되었는데, 아마도 뇌를 크게 다쳤는지, 얼굴의 모든 구멍에서 피가 흘러나왔고, 얼굴 역시 심하게 다쳐서 뭐라 형언할 수없이 망가졌습니다. 병원 의사 역시 급한 조치를 취한 뒤에 하는 말이, 이 아이의 생사는 하느님만이 아시니 지금부터 모두가 하느님께 기도하는 수밖에 없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혼수상태로 생사를 가르는 며칠을 지내면서, 저는 아이의 어머니로부터 한 가지 가슴 찡한 일화를 듣게 되었습니다.
몇 달 전에 학교 행사가 있어서 파브리시오 역시 참여를 했는데, 개신교 재단의 학교여서 그런지, 학교 측에서 볼리비아 현지 개신교회 목사님을 초청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목사님이 그 아이가 입고 있던 티셔츠를 보더니 대뜸, '가톨릭 신자들은 모두 우상숭배자들'이라며 '당장 그 옷을 벗으라.'라고 사람들 앞에서 면박을 줬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파브리시오는 성모님 성화가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아이는 그 목사님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목사님, 저는 가톨릭 신자입니다. 우리는 우상숭배자들이 아닙니다. 성모님은 우리들의 공경의 대상이고, 저는 죽을 때까지 가톨릭 신자로 남겠습니다."
저는 그 이야기를 듣고는 속으로, 예수님께서 반드시 성모님의 전구를 통해 이 아이를 살려주시겠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에 병자성사를 거행하기 위해 병원으로 가는 도중에, 아이의 어머니에게서 전화 한 통을 받았습니다. '아이가 깨어나서 의식을 차렸다.'라고 말입니다.
이틀 뒤에, '허락해 주시면 주일 하루 동안이라도, 성당 입구에서 온 가족이 음식이라도 팔아서 병원비와 수술비를 마련하고 싶다.'라는 가족의 청을 듣고, 일단 음식 재료비를 사도록 도움을 주었습니다. 그간 병원비로 가진 돈을 다 써버려 재료비 살 돈마저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루 종일 땡볕에 온 가족이 열심히 음식을 팔았는데도, 모금은커녕 재료비 액수도 약간 모자라는 돈이 모였습니다. 그날 저녁에 가족 대표가 와서 시무룩한 얼굴로, "빠드레(신부님)...미안해요. 하루 종일 팔아도 도와주신 재료비도 못 건졌어요."
저는 그때, 이 가족이 '살아있는 사람' 프로젝트 나눔의 주인공이 되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는, 한국의 많은 신자들이 마라톤 참여를 통해 뜻을 모아서 마련한 돈이니, 첫 번째로 하느님께 감사하고, 두 번째로 이분들을 위해 기도 부탁한다고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덧붙여 우리는 혼자가 아니니 힘내라고 격려 인사를 해 주었습니다. 사실 모두가 행복하고 건강해서, 프로젝트의 도움을 받을 두 번째 주인공이 안 나타나기를 바라지만, 분명히 누군가는 절실한 도움을 필요로 할 것이고, 그때는 또 기쁘게 도움을 드릴 수 있겠지요. 저 역시 하느님께 가장 큰 감사를 드리고, 이런 도움을 줄 수 있도록 기회를 마련해 주신 '살아있는 사람' 프로젝트에 참여하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다가오는 성탄 기쁘게 보내시고, 2018년 새로운 한 해, 다시 한번 신발 끈 바짝 매는(?) 새 출발 되시길 기원합니다.
볼리비아 산타크루스에서 허진혁 바오로 신부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