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함께 꾸는 꿈 2

살아있는 사람은 새로운 기부와 나눔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개인적으로 매년 달리기에 참석하는 사람들 뿐만 아니라 가족 모두가 5킬로미터를 함께 걷고 후원하며, 가톨릭 신자가 아닌 친구나 직장동료를 데리고 오는 사람들, 수녀님들, 시각장애인, 보좌 신부님과 본당 청년들, 여러 가톨릭 단체 사람들 등 수많은 사람들이 살아있는 사람으로 매년 달린다. 달리러 오지 못하는 사람들은 물적 후원으로 대신한다.


달리는 사람들 가운데에는 자신을 후원한 사람들의 이름을 번호표에 빼곡히 적고 달리는 사람, 아픈 가족을 위해 기도하면서 달리는 사람, 그저 시월의 어느 멋진 가을날을 가족과 친구와 즐기기 위해 달리는 사람들도 있다. 모두가 살아있음을 마라톤을 통해 체험하고 사랑과 도움이 필요한 어린이들을 위해 땀을 흘린다.


1589461484136.jpg?type=w966 후원 요청 포스터, 2016년


살아있는 사람은 세계적이다. 2011년 미국을 떠날 때 존 캐롤 대학에서 함께 달렸던 저렐(Jurell Sison)과 크레이그(Craig Sidol)라는 두 학생은 나에게 살아있는 사람을 발전시켜 '살아있는 사람 챌린지(The Living Person Challenge)'를 만들고 싶다고 했고 나는 그들을 격려하고 축복해 주었다. 그후 그들은 가톨릭 전통에 바탕을 두고 젊은이들 각자에게 영감을 주는 도전들을 통해 젊은이들이 영적으로 성장하도록 돕고 있다. 단순히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하느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최선의 자신을 발견하고 다른 사람을 위해 '살아있는 사람'이 되도록 격려하고 도와준다.


그들이 운영하고 있는 웹사이트 'thelivingperson.com'에는 누구나 쉽게 접속하여 파트너를 정하고 자신의 삶에서 바꾸고 싶은 자유로운 도전 주제를 정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스마트폰 사용 줄이기', '하루 30분 기도하기' 등과 같은 목표를 정하고 30일 동안 파트너와 함께 변화를 위해 노력하고 그들의 경험을 온라인으로 나눈다. 살아있는 사람 챌린지는 마라톤에서 확대된 살아있는 사람의 정신이 젊은이들에게 새롭게 해석되고 자라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유튜브를 통해 메시지를 공유하고 챌린지로 서로 격려하면서 동시에 영감을 주는 셔츠와 팔찌 등을 만들어 온라인으로 판매하는 이들을 보면서 살아있음의 신선함을 느낀다.


image.png?type=w1 www.thelinvingperson.com




2024년이면 살아있는 사람은 이십 주년을 맞이한다. 그래서 미국의 살아있는 사람과 한국의 살아있는 사람이 모여서 함께 달리는 마라톤을 준비하고 있다. 미국과 한국의 중간쯤이면 하와이가 최적의 장소가 될 것이며, 그곳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호놀루루 마라톤 대회(Honolulu Marathon)가 매년 12월 두번째 일요일에 열린다. 호놀루루 마라톤 대회는 원래 심장병 치료와 예방을 목적으로 시작된 대회로 누구나 참가할 수 있고 시간 제한도 없다. 기록보다는 조금이라도 많은 사람들에게 뛰는 즐거움을 주기 위해 시작되었다고 한다.


달리기를 즐기는 사람들 무리에서 우연히 무라카미 하루키를 만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는 꾸준히 호놀루루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기 때문이다. 아무런 근거도 없이 소설을 쓰기 시작했고 그 일을 잘하기 위한 체력을 유지하기 위해 계속 달리는 그와 함께 뛰면서 달리는 신부와 살아있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시간 제한 없이.


2023년 12월 10일, 하와이 호놀루루에서 살아있는 사람은 동서양이 함께 달릴 것이다.


지난 이십년의 시간을 함께 돌아보며 세상에 변화를 가져오기 위해 그동안 자신과 살아있는 사람 공동체가 먼저 변화가 되었던 이야기를 나눌 것이다. 언어와 문화는 다르지만 하느님의 사랑받는 살아있는 사람으로 하나가 되어 와이키키 해변에서 새벽 5시에 다 같이 '천국에서의 풀코스(26.2 miles in Paradise)'를 뛰기 시작해 태평양 한가운데에서 동이 터오는 것을 같이 볼 것이다. (다행히 10킬로미터 마라톤도 함께 열린다.)


살아있는 사람은 다시 한번 살아있음을 체험하며 국경을 초월하여 기쁘게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낼 것을 꿈꾸고 있다. 꿈은 때론 무모해 보이지만 그 때문에 용기를 필요로 한다. 뒤가 아니라 앞을 보며 꿈꿀 때 지금까지 없었던 새로운 방법을 찾고, 그것은 누구에게는 안전하지 않고 두려운 것이 되겠지만 꿈꾸는 사람은 스스로 만족한다. 꿈을 통해 참된 자신으로 살 수 있기에 성공과 실패는 중요하지 않다. 어쩌면 누군가의 농담처럼, '살아있다면 계속 뛰어야 할 무서운 조직(?)'이 이제 세계화되는 상상이 더 즐거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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