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나의 꿈 2

서브쓰리로 가는 길에 이루고 싶은 또 하나의 꿈이 있다.


세계에서 가장 크고 유명한 여섯 개의 '세계 메이저 마라톤 대회(World Marathon Majors)', 곧 보스턴, 뉴욕, 시카고, 도쿄, 런던, 베를린 대회를 모두 뛰는 것이다. 세계 메이저 마라톤 대회를 다 뛰면 특별히 제작된 기념메달, 식스 스타 피니셔(Six Star Finisher)를 받을 수 있다. 공식 등록을 하고 다섯 대회를 뛰고 마지막 여섯 번째 메이저 대회를 뛰면 그곳이 어디든 결승선에서 여섯 개의 메이저 마라톤 대회가 모두 새겨진 기념메달을 받게 된다. 보통 사람은 들어본 적도 없는 메달,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평생에 걸쳐 꿈꾸며 이루어내야 할 버킷 리스트다. 2020년 8월 20일 현재 등록된 세계 메이저 마라톤 대회 기념메달 수상자는 6,619명이다.


Six Star Finisher @google.com


나는 2009년 4월 제113회 보스턴마라톤을 3:07:35, 같은 해 11월 제40회 뉴욕 마라톤을 3:07:52, 그리고 2010년 10월 제33회 시카고 마라톤을 3:05:26의 기록으로 뛰었다. 그리고 귀국해서 2014년 살아있는 사람 10주년을 기념하여 나만을 위한 특별한 계획을 준비하고 실행했다. 세계 메이저 마라톤 대회 가운데 하나인 도쿄 마라톤에 참가한 것이다.


2007년에 시작된 도쿄 마라톤 대회는 2013년부터 아시아 유일의 세계 메이저 마라톤 대회가 되었다. 도쿄마라톤은 도쿄 시내 주요 관광 명소를 달리며 구경하는 것뿐만 아니라 슈퍼히어로, 만화 캐릭터, 닌자 등 특이한 의상을 입고 달리는 사람들 역시 볼거리 가운데 하나다. 달리기에 있어서는 우리나라에 뒤지지 않는 열정적인 일본 마라토너들을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2월 23일 쌀쌀한 주일 아침에 출발 대기선에 서 있는데 갑자기 화장실을 가야 했다. 3만 5천여 명의 러너들이 모두 그룹별로 서 있었으므로 도무지 밖으로 나갈 수가 없어 안절부절하고 있는데 누군가 내게 플라스틱 게토레이 병을 건네며, "지금은 이게 최고죠!"하고 말했다. 곧 그 말의 뜻을 알아차리고 긴급한 문제를 해결했다. 다만 나중에 누가 게토레이 음료와 내 것(?)을 혼동하지 않기를 바라면서.


도쿄 마라톤 대회는 한국에서 그동안 풀코스 기록에 있어서 부진을 면치 못했던 내게 희망을 발견하게 한 마라톤이었다.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3:12:01의 기록으로 달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동시에 세계 메이저 마라톤 대회 완주의 꿈에 한 발자국 더 다가갔다.


1589609721256.jpg?type=w966 도쿄마라톤대회 완주 후, 2014년


2019년 4월 말 런던마라톤 대회가 끝난 직후에 나는 2020년 제40회 런던마라톤 대회 신청을 했다. 하지만 추첨에서 탈락했다. 10대 1이 넘는 경쟁이었다. 그런데 2020년 들어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덮쳐 4월 런던마라톤 대회는 10월 초로 연기되었다. 사람 일은 알 수가 없다.


베를린 대회는 나의 세계 메이저 마라톤 대회의 마지막이 될 것이다. 그동안 베를린 마라톤 대회는 마라톤 세계기록의 산실이었다. 2003년 케냐의 폴 테가트가 2시간 4분 55초로 베를린 대회에서 세계기록을 세운 뒤 지금까지 세계기록을 계속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2014년 데니스 키메토(케냐)가 2시간 2분 57초로 세계기록을 경신한지 4년 만인 2018년에 케냐의 엘리우드 킵초게가 2시간 1분 39초로, 무려 1분 18초나 앞당겨 세계신기록을 세웠다. 베를린이 세계 마라톤의 성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높은 상금, 평평한 코스, 최적의 날씨와 무엇보다 마라톤 코스를 가득 채운 백만 명이 넘는 열광적인 관중들의 응원 때문이다. 그 세계 마라톤 역사의 중심에서 나 역시 브라덴부르크 문을 서브쓰리로 통과해 나의 두가지 꿈을 동시에 이루고 싶다.




꿈은 한 사람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좋은 꿈이란 다른 사람에게 영감을 불러일으키고 함께 기뻐하고 희망을 갖게 한다. 그래서 지난 십오년 동안 한번도 가보지 않았던 길을 가고 싶다. 누군가 차려놓은 상업적 마라톤 대회가 아니라 직접 마라톤 대회를 여는 것이다. 달리는 살아있는 몸으로 사라와 같은 어린이들을 돕고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낼 사람들을 군위로 초대해 ‘살아있는 사람 16 마라톤 대회'를 열고 싶다. (날짜는 10월 24일 토요일로 정해졌다.)


기존 마라톤 대회에서 빠지지 않던 비싼 참가비, 상업적 광고, 컴퓨터 장비, 일괄적인 기념품 등을 바꾸어 꼭 필요한 돈만 받고 군위 시골길을 달리며 군위성당 어린이와 어르신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을 얻으면 어떨까. 물론 손으로 시간도 측정하고 완주 메달도 준비하고 순위도 매길 것이다. 전체 레이스 우승자와 나이대별 우승자들에게는 지역 쌀과 돼지고기를 상품으로, 참가자 전원에게는 지역 농특산물을 기념품으로 준다.


특별히 '1000번째 살아있는 사람'에게는 잊지 못할 선물을 준비하고 싶다. (지금까지 943명의 살아있는 사람이 뛰었다.) 가족이 모두 참가하는 5킬로미터 걷기, 아름다운 군위 위천을 따라 뛰는 10킬로미터와 하프 마라톤은 조용한 군위의 토요일 오전에 색다른 풍경을 연출할 것이다.


그리고 마라톤 후에는 군위 성당에 모여 가난한 어린이들을 위해 몸과 마음으로 준비한 후원금을 봉헌하는 감사미사를 바칠 것이다. 젊은이들과 수녀님들로 구성된 성가대가 신나게 반주하는 미사에서 사제단이 같이 기도하면서 살아있는 몸을 주신 하느님을 찬양할 것이다. 돼지 바베큐에 막걸리, 수제 맥주는 덤이다.


5Y8A3537.JPG '살아있는 사람 14'의 군위성당 마당에서의 뒷풀이, 2018년


2022년 5월 8일(주일)은 김수환 추기경 탄생 100주년이 되는 날이다.


이때에는 전국의 모든 가톨릭 마라톤 동호회 사람들뿐만 아니라 가톨릭 신자, 성직자, 수도자, 그리고 추기경님을 기억하며 달리고 싶은 모든 사람들을 초대해 ‘김수환 추기경 탄생 100주년 기념 마라톤 대회’를 열고 싶다.


추기경님의 생가가 있는 군위 용대리 김수환 추기경 사랑과 나눔 공원에서 출발해서 어린 시절 추기경님께서 어머니가 언제 오실까 늘 바라보았던 ‘저 산 너머’를 뛰는 것이다. 여러 코스가 있겠지만 달리는 사람 모두는 군위읍을 거쳐 군위금성로에 들어서 뛰면 결승선이 보이는 저 멀리 사랑과 나눔공원에서 환하게 웃고 계신 추기경님을 바라보며 마지막 남은 땀과 숨을 기쁘게 바칠 것이다. 지금은 한 사람의 꿈이지만 하느님께 믿음을 가지고 달리는 모든 이에게 기쁘고 희망찬 꿈이 될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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