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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원을 달리다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8년전 교구청에서 일할 때 동료 신부님들과 몽골 여행을 왔었다. 


몽골과의 첫 만남에서 잊혀지지 않는 충격적인 일이 있었다. 그때도 늘 그랬듯이 여행 중에 달리기를 할 요량으로 운동화를 들고 갔다. 


어느날 아침 신발끈을 매고 게르에서 초원으로 나왔는데 어디로 뛰어야할지 알 수가 없었다. 광대한 초원에서 어디를 향해서 뛴다는 일이 불가능한 일처럼 여겨졌고 한 발자국도 내디딜 수 없었다. 결국 뛰지 못했다.

2016년 7월 홉스골에서


이번에도 운동화를 들고 왔다. 지난번 여행과는 다른 해외봉사에서 과연 달릴 시간을 낼 수 있을지, 달릴 수는 있을지 알 수 없었지만 그래도 늘 그래왔으니까.


오늘은 지식에르뎀 학교 교장 글라라 수녀님의 제안으로 울란바토르에서 200여 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미니 고비 사막에 가기로 했다. 학생들이 간절히 원했던 몽골에서의 마지막 여행지였다.


새벽 6시 30분에 출발했다. 그런데 우리는 4시간동안 울란바토르를 벗어나지 못했다. 이번 주 금요일부터 시작되는 나담 축제 행렬에 갇혀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몽골인들은 날이 가장 좋은 7월 중순에 나담(몽골어로 '축제'라는 뜻) 축제를 시작하는데 짧게는 1-2주, 길게는 한달씩 시골이나 경치 좋은 곳으로 여행을 떠난다. 가족끼리 친구끼리 염소나 소고기를 차에 싣고 좋은 곳으로 떠나 게르를 빌리거나 때론 편한 곳 어디에서나 텐트를 치고 여름을 즐긴다고 한다.


우리는 몽골 민족 대이동의 한가운데에 끼여 옴짝달짝 할 수 없었다. 어떻게 미니 미니 고비 사막에는 도달했지만 잦은 비로 풀이 무성한 사막에 관심을 보이는 학생은 없었다. 


특단의 조치로 학생들에게 몽골 시내 자유투어를 저녁까지 허락하니 다들 기분이 좋아보였다. 그래서 나만 수녀님들과 함께 숙소로 돌아왔다.


전화위복일까, 나만의 시간이 생긴 것이다. 둘째날 올랐던 뒷동산에 올라 그 뒤에 있는 더 높은 산들을 차례로 올랐다. 어느새 내 눈이 닿을 때까지 펼쳐진 몽골의 산들과 도시가 펼쳐졌다.


왜 칭기스칸이 유럽까지 정복에 나섰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렇게 광활한 초원에서 그는 세상 끝까지 가보고 싶지 않았을까.


산에는 곳곳에 핀 야생화 냄새가 진동했다. 유채꽃만 알아 보았지만 이름없는 꽃들도 향기롭기는 매한가지여서 기분이 참 좋아졌다.


어제 테르지 국립공원에서 나오는 길에 30여분 자유시간이 있었는데 눈앞에 보이는 산을 오르고 싶었고 나를 따르는 학생 세명과 함께 올랐다. 

산 정상에 보이는 점들이 우리 일행


보이는 것과는 달리 그리 멀지 않았고 정상에서 바라본 풍경은 환상적이었다. 몽골인들은 초원을 달릴 때 산을 방향잡이로 삼는다는 말을 들었던 기억이 났다. 산 정상에는 돌무덤이 있는데 그것이 기준이 된다.

테르지 국립공원 입구 휴게소


내가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산 정상에서 영화 미션의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를 들으니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장대한 몽골을 바라보시는 하느님의 시선이 이렇지 않을까.


새로운 힘을 얻고 산을 내려오는데 몸과 마음이 가벼워 뛰어 내려왔다. 달리다가 갑자기 내가 몽골에서 뛰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8년전 끝없는 초원에서 방향을 잃고 뛰지 못했던 내게 산에서 내려가는 길은 목적지가 있는 즐거운 트레일 러닝 같았다. 


몽골의 초원을 달리고자 한다면 말을 타고 달리고, 뛰고자 한다면 산을 오르면 된다. 이로써 나는 끝없는 초원을 달릴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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