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테라노 대성전 봉헌 축일
무엇이나 누구를 사랑해본 적이 있습니까? 그건 위험한 일입니다. 사랑하는 순간부터 자신의 가면과 체면을 내려놓고 한없이 약해질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가 하는 말, 그가 웃는 이유 때문에 자신이 흔들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이란 전쟁터 한가운데에서 갑옷을 벗고 심장이 훤히 보이는데도 발뒤꿈치를 세우는 일입니다. 이런 열정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입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덤덤하고 차갑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열정은 수난을 불러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를 파는 자들을 쫓아내시고 환전상들의 탁자를 엎어 버리신 것은 예수님을 십자가 죽음에 이르게 한 결정적 사건입니다.
"당신 집에 대한 열정이 저를 집어 삼킬 것입니다"(요한 2,17). 하느님 아버지 집에 대한 예수님의 열정(Passion)이 십자가의 수난(The Passion)을 가져왔습니다.
우리도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가 짓고자 하는 새성전을 향한 열정은 수난을 필연적으로 동반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뒤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말씀하셨습니다. "아, 어리석은 자들아! 예언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믿는 데에 마음이 어찌 이리 굼뜨냐? 그리스도는 그러한 고난을 겪고서 자기의 영광 속에 들어가야 하는 것이 아니냐?"(루카 24,25-26)
십자가없는 부활, 고난없는 영광, 죽음없는 생명이 없음을 안다면 우리 역시 하느님 아버지 집에 대한 열정으로 수난을 기꺼이 맞이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행정적인 일, 재정적인 일, 사람이 하는 모든 일에서 일어날 수 있으며, 때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사실이 진정한 수난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어둔 밤에도 하느님 아버지에 대한 신뢰와 인내만 있다면 '하느님께서 그 안에 계시니 흔들리지 않고, 하느님께서 동틀 녂에 구해 주실 것'(화답송 시편 46)입니다. 믿음을 가지고 견디는 것이 신앙인의 자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때로 중요한 것을 놓치곤 합니다. 새성전이라는 건물에 집중하다보니 우리가 잊은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하느님의 건물입니다...여러분이 하느님의 성전이고 하느님의 영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모릅니까?...여러분이 바로 하느님의 성전입니다"(1코린 3,9-17).
바오로 사도는 에페소서에서 더 자세하게 말합니다.
"여러분은 사도들과 예언자들의 기초 위에 세워진 건물이고, 그리스도 예수님께서는 바로 모퉁잇돌이십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전체가 잘 결합된 이 건물이 주님 안에서 거룩한 성전으로 자라납니다. 여러분도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거처로 함께 지어지고 있습니다"(에페 2,20-22).
저는 이 말씀이 참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하느님의 건물이면서 주님 안에서 거룩한 성전으로 자라나고,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거처로 지어지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거룩한 성전으로 자라나고 하느님의 거처로 지어지고 있습니까, 아니면 과거 그 자리에 그대로 매여 있습니까? 하느님의 영이 여러분 안에 있습니까, 아니면 세속적인 욕망, 시기와 미움으로 가득 차 있습니까?
1독서에 성전에서 나오는 물이 온갖 생물을 살리는 것처럼, 여러분에게서 나오는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을 살립니까, 아니면 죽입니까? 여러분에게 그리스도는 모통이의 머릿돌입니까, 버려진 돌입니까?
한가지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어떤 것이 자라나고 지어지고 있는 동안에는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완성된 결과가 나오지 않았으니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땅이 뒤흔들리고 산들이 바다 깊이 빠진다 해도'(화답송) 하느님께서 함께 하시니 흔들리지 말고 믿고 인내할 수 있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자신이 먼저 하느님의 영이 머무시는 거룩한 성전이 되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건물보다 우리 자신이 하느님의 거처로 자라나고 지어질 수 있도록 기도하면서 몸과 마음으로 애를 써야 할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화답송에서 노래하는 복음의 빛을 체험할 것입니다.
"만군의 주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네. 야곱의 하느님이 우리의 산성이시네. 와서 보아라, 주님의 업적을, 이 세상에 이루신 놀라운 일을!"